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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적중이지 (3대리구 3지역 친교의 해 지역방문 미사 강론)
   2024/05/10  17:38

3대리구 3지역 친교의 해 지역방문 미사

 

2024. 05. 08.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성주성당

 

우리 교구는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10년 장기사목계획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친교의 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교가 작년부터 매월 첫 목요일에 대리구의 한 지역을 방문하여 신부님들과, 그리고 총회장님들과 간담회를 가지고,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3대리구 3지역 차례로 이곳 성주성당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미사 전에 신부님들과의 간담회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본당 신자의 고령화와 주일학교 및 청년 사목 문제, 그리고 공소의 관리 문제 등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나왔습니다. 다들 어려운 가운데서도 본당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친교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고 공동체이기 때문에 친교를 이루지 않는 교회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가톨릭교회는 시노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시노드’란 말은 ‘함께 길을 가는 여정, 즉 함께 길을 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가 현재 ‘친교의 해’를 살고 있는데, 지금 진행되는 시노드의 주제와 잘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시노드적인 교회가 되고 친교적인 교회가 되지 않고서는 미래에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모두가 먼저 시노드적이고 친교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우리 공동체가 시노드적인 공동체가 되고 친교적인 공동체가 되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런 ‘시노드’라든가, ‘친교의 해’라든가 하는 것이 한때 논의되었던 하나의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교회의 일상이 되어야 하고, 우리 삶의 일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단체, 모든 공동체, 즉 하나의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친교를 잘 이루지 못하면 그 공동체는 언젠가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조류가 결혼도 잘 하지 않고 출산도 잘 하지 않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부부도 이혼하는 사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위태로운 가정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서로 간에 친교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5월이 무슨 달이지요? 성모님의 달이고 가정의 달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친교를 잘 이루고 계시지요? 지난 5일이 어린이날이었고,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하는 첫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에 ‘자녀를 사랑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의 자녀 사랑을 저절로 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부모 공경은 좀 다릅니다.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부모 공경에 대해서는 여러 번 나옵니다. 부모 공경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아주 기본적인 예의이며 덕행인 것입니다.

5월 21일은 부부의날입니다. 왜 21일을 부부의날로 정했습니까? ‘둘이 하나가 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까? 노력 중입니까?

스승의날은 5월 15일입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가면 커다란 동상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세종대왕이고, 또 하나는 이순신 장군입니다. 아마 우리 민족이 가장 존경하는 두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5월 15일은 세종대왕의 탄신 일입니다. 세종 임금님은 1397년 5월 15일에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성주 월항에 세종대왕자 태실이 있지요? 지난 주에 태봉안 의식 재현 행사가 있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원래 세종은 셋째 아들이고 세자가 아니었습니다. 세자는 첫째 아들 양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태종은 세자가 술을 너무 좋아하고 심지어 기생을 궁에 들이는 등의 비행을 너무 많이 저질러 폐세자시켰습니다. 그리고 둘째인 효령군과 셋째인 충녕군을 두고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립니다.

태종 18년(1418년) 6월 3일 자 태종실록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의 사신을 대하여 주인으로서 한 모금도 능히 마실 수 없다면 어찌 손님을 권하여서 그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느냐?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 그런데 효령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니, 이것 또한 불가하다. 따라서 충녕이 대위를 맡을 만하니, 나는 충녕으로 세자를 정하겠다.”

이리하여 태종은 셋째 충녕군을 세자로 세우고 그해에 양위합니다. 즉 임금 자리를 세자에게 물려주었으니, 그가 바로 세종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양녕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왕이 되지 못했고, 둘째 효령은 전혀 술을 마실 줄 몰라서 왕이 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난 충녕은 술을 적당히 마실 줄 알아서 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건배사에서 가끔 쓰기도 하는, 태종 이방원이 충녕군에 대하여 말했다는 ‘적중이지(適中而止)’라는, 즉 ‘적당한 가운데 그칠 줄 아는 것’이 중용의 덕이고 친교의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종 임금은 과학 기술과 문화와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신하들과 늘 의논하고 연구하며 협치를 이루었습니다. 무엇보다 애민 정신이 뛰어나시어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백성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여 조세정책을 세웠고, 무엇보다 백성들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게 훈민정음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금의 한글이 나왔는데 우리 한글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세종 임금께서 가졌던 이런 중용 정신, 애민 정신이 바로 친교를 이루는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의 아테네에 가서 어느 신전 제단에 적힌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글을 보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문화와 학문을 존중하면서 하느님의 진리를 설명하는 바오로 사도의 열정과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바오로 사도의 모습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친교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복음(요한 16,12-15)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12-13)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령 강림을 예고하시면서 지금은 당신의 말씀을 다 알아듣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오시면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나 어떤 모임이나 회의를 시작할 때 성령께 귀를 기울이고 성령께서 모임을 잘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친교의 모델입니다. 서로를 향하고, 서로 함께하며, 서로를 위하는 친교의 신비를 잘 드러내십니다. 우리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따라 서로를 향하고, 서로 함께하며, 서로를 위하는 친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늘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