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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치와 친교를 가져오시는 성령 (성령 강림 대축제 미사 강론)
   2024/05/23  10:36

성령 강림 대축제

 

2024. 05. 18.(토) 성김대건기념관 

 

오늘 ‘2024년 대구 성령강림 대축제’에 참가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오전부터 모여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강의를 듣고 기도하는 좋은 시간을 보냈을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 미사를 통하여 오늘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고, 성령을 받아 예수님으로부터 다시 세상에 파견되는 사람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우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부활 시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성령강림 대축일’을 지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전날로서 전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은 부활 축제의 완성을 뜻하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으로 예수님의 인류 구원의 사명이 완성되었고,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교회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은 늘 성령께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창세기 11,1-9 말씀입니다. 바로 구약의 바벨탑 사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벨탑은 인간의 욕망과 교만이 쌓아 올린 탑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노하셔서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시고, 언어를 뒤섞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내일 성령강림 대축일 제1독서에서 봉독할 사도행전 2,1-11을 보면,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밖에 나가 말하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자기 나라, 자기 지방 말로 알아들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신다는 것, 하나 되게 하신다는 것, 일치와 소통을 가져온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시고,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시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요한 7,37-39)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37-38) 이어서 성경은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39)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목마른 사람’은 단순히 물이 없어서 목마른 사람이겠습니까?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육적으로 목마른 사람도 필요시에 채워주시지만,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조의금 얼마 들어왔더냐?’가 아니라,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였습니다. 성령강림 대축일 복음을 보면 두 번이나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난 뒤에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도 ‘성령을 받아라.’ 하시고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 칠은이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도 그렇지만, 성령의 은혜는 무엇보다도 영적인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 말씀하시길,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성령께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자신의 욕심이나 원의로만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들어오실 자리도 없고, 들어오셔도 활동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곳 ‘성 김대건 기념관’이 있는 자리는 신학교입니다. 신학교 들어오는 입구에 큰 돌이 하나 있고, 그 돌에는 이런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를 따라라.”(마르 2,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라.”고 하신 것이, ‘내가 너희에게 부귀영화를 주겠다.’ ‘내가 너희의 병을 고쳐 주겠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나와 동고동락하자.’ ‘내가 지게 될 십자가를 지자.’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지고 따랐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참으로 알아듣게 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참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첫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너라.” 하시고는 이어서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하셨습니다. 

주교는 오른 손가락에 반지를 끼는데, 교황님도 반지를 끼십니다. 교황님이 끼신 반지를 ‘어부의 반지’라고도 부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도가 어부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강림 사건이 있고 난 뒤에 이어서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입니다. 그 오순절 설교의 요점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요 메시아’(사도 2,36)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린 사람들이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더니 베드로 사도가 “회개하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하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어 초대교회가 출범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하느님의 백성의 모습이고 교회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시노드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구는 ‘친교의 해’를 살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가득 받고 더욱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친교, 참여, 사명이라는 시노드적인 삶을 삶으로써 이 세상에 구원의 표지가 되고 성령의 증인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럼, 저를 따라서 합니다.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