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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로병사의 비밀 (병원사목부 주최 성모의 밤 미사 강론)
   2024/05/30  16:29

병원사목부 주최 성모의 밤

 

2024. 05. 27. 성모당

 

이 성모당이 우리 교구의 보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교구 초대 교구장이셨던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 루르드의 성모 동굴을 닮은 성모당을 지어 1918년 10월 13일에 봉헌하였습니다. 그 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성모당을 찾아 순례하고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5월 성모성월이 되면 각 단체와 본당에서 매일 성모의 밤 행사를 하였습니다.  

 

오늘은 병원사목부 주최로 성모의 밤 행사와 성모 신심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질병이나 사고나 노환 등으로 치료 중에 있거나 고통 중에 있는 환자분들이 하루빨리 회복하여 건강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방문하고 기도해 주며 치료해 주는 원목 봉사자들과 의료진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이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구 주보이시며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의 주보이신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루카 2,27-35)을 보면,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아기에 대한 율법의 관례를 지키기 위해 성전에 들어갔더니, 시메온이라는 예언자가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시메온의 이 말처럼 성모님의 생애는 고통과 시련의 생애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칠고(聖母七苦)’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겪으셨던 일곱 가지의 고통과 슬픔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시고 기르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엄청난 은총을 받으신 분이시지만, 그 반대로 인간적으로는 엄청난 고통을 받으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성모님을 생각하면 아름답고 순종적이고 여성적인 이미지만을 생각할 때가 많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생애를 볼 때, 성모님은 ‘강인한 여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녀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당황스럽고 불안하고 두려웠겠습니까!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따라올 뒷감당을 생각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과 순종의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용기와 강인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요셉 성인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에 마리아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의 가장 큰 고통은 아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아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강인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모님께도 그런 엄청난 고통이 있었던 것처럼 사람은 누구에게도 고통이 있습니다. 크고 작음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가끔 보게 되는 TV 프로가 KBS의 ‘생로병사의 비밀’입니다. 여러 의사와 환자들이 나와서 병이 생기게 된 원인과 그 병을 이겨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에 건강 관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생로병사의 비밀을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료진이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과정을 더디게, 그리고 완화할 뿐이라 생각됩니다.

병원 사목이라는 것도 환자들을 방문하여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며 어떤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가는 길을 잘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월요일(5월 20일)에 최영배 비오 신부님께서 선종하셔서 지난 수요일에 장례를 지냈습니다. 아시다시피 최 비오 신부님은 들꽃마을을 만든 분입니다. 최 신부님이 한 35년 전에 고령성당에서 첫 본당신부를 하였는데, 어느 날 성당 성모상 앞에 어떤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사제관에 데려다가 씻어주고 재워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들꽃마을이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사랑, 측은지심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요청에 늘 귀를 기울이고 가까이하셨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예리코라는 도시를 방문하셨는데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그 사람은 더 큰 소리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저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지 마라.’ 하시고는, 그 사람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더니 ‘주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되어라. 너의 믿음이 너를 살렸다.’하고 치유해 주셨던 것입니다. 

성모님도 사람들의 필요를 잘 알아차리시고 채워주시는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가나라는 동네에서 어떤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술이 떨어진 것을 성모님이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아들 예수님께 부탁하였고,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성모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시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 모두의 어머니이십니다. 성모님은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하여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고 오늘처럼 ‘성모의 밤’을 지내는 근본적인 목적은, 성모님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잘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라 생각됩니다.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