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뒷담화 하지 말라 (제5차 교구 사제 연중피정 파견미사 강론) |
2024/09/19 11:32 |
제5차 교구 사제 연중피정 파견미사
2024. 09. 13.(금) 한티 피정의 집
마태오복음 5장에서 7장을 ‘산상설교’, 혹은 ‘산상수훈’이라고 부르는데, 루카복음 6장을 ‘평지설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6장 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그 중의 한 부분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6,39-42)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39)
여기에서 ‘눈먼 이’는 누구이겠습니까? 성서 주석 학자들은 바리사이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율법의 규정들을 강조하고 자신도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율법 속에 담긴 하느님의 참뜻을 저버리는 바리사이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눈먼 소경인데도 소경임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지도한답시고 행세하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그렇게 비판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주님의 사제들인 우리는 어떠한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41-42)
다른 사람의 허물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바로 보지 못하는 우리들을 질타하시는 말씀으로 들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부터 바로 보고 고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의 허물을 고쳐줄 수 있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뒷담화하지 말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신한테는 관대하고 남한테는 엄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상식적인 것도 사람들은 잘 지키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루카복음 6장 31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마태오 복음에도 이 말씀이 나옵니다만, 이 말씀을 우리는 ‘황금률’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주 귀중한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황금률이라는 이 말씀도 지극히 상식적인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이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크리소스토모’라는 말은 ‘황금의 입’이라는 뜻으로 성인께서 설교를 잘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성인의 이름을 ‘요한 금구(金口)’라고 불렸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로 임명되어 성직자와 신자들의 관습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은 황실과 주위의 몇몇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와 모함으로 주교직에서 물러나셨습니다. 그리고 유배 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뒷담화와 시기와 질투가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주교님을 교회는 성인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지금 보편교회가 시노드 중에 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께서 말씀하시길, ‘교회는 시노드와 동의어’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시노드의 핵심 단어는 ‘시노달리타스’입니다. 새로 나온 신조어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되어왔던 것입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교회 뒤뜰에 묻혀있다가 다시 꺼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노드는 같이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온갖 피조물과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혼자 이야기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함께 대화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구가 올해 ‘친교의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는 ‘전례의 해’를 살 것입니다. 친교의 해나 전례의 해도 같은 기조라고 생각됩니다. 성령 안에서 함께 하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 9,19.22)
참으로 바오로 사도께서는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우리도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은총 주시고 성모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