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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당성당을 복원하며 (내당본당 성전 복원 봉헌미사 강론)
   2024/06/14  11:13

내당본당 성전 복원 봉헌미사

 

2024. 06. 08.

 

내당본당은 1962년에 계산본당에서 분가하여 준본당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준본당 신부가 오스트리아 사람인 서기호 루디 신부님이었습니다. 루디 신부님은 우리 교구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내당성당이 아닌가 싶습니다. 루디 신부님의 중재로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와 잘츠부르크 대교구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1966년 초대 본당 신부인 박창수 요한 몬시뇰께서 계실 때 이 성당을 완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성당은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건축가인 ‘오토카 울(Ottokar Uhl)’이란 사람이 설계하였습니다. 기존의 익숙한 성당 모양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입니다. 성당 외부부터 다릅니다. 보통 성당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종탑이나 뾰족탑도 없고, 하늘에서 보면 성당 모양이 평평한 지붕 위에 커다란 십자가 세 개가 올려져 있는 형태입니다.

성당 내부도 구 교우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제대가 성당 중앙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제대를 중심으로 ‘ㅁ’자 형태로 둘러서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설계자인 오토카 울 교수님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담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2년에 시작해서 1965년에 폐막하였습니다. 근현대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와 쇄신을 가져왔던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려지는 것이, 교회를 ‘하느님 백성’이라고 규정하고 전례를 개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의회 전에는 신자들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사제가 미사를 라틴어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강론이나 공지사항을 말할 때 말고는 신자를 등지고 미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현대 세계에 맞게 전례를 개혁하게 되어 오늘날과 같이 각 나라 자국 말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고, 사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신자들과 마주 보고 미사를 드리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불과 6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내당성당을 지을 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막 끝나갈 즈음이었는데, 울 교수님이 이런 형태의 성당을 설계했다는 것은 참으로 새롭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불편한 점들도 몇 가지 있기는 있었습니다. 내부가 어두웠고 계단이 있기 때문에 넘어질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단점을 보완하면서 유지를 했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1988년에 성당을 리모델링하면서 내부 형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35년을 살았습니다. 중간에 박성대 신부님 계실 때 복원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지만 실행하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박장근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성전 노후화로 인하여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것과, 이 기회에 원 형태로 복원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현장을 한 번 봐야 할 것 같아 제가 교구 관리국장 신부님과 함께 ‘상지유치원’도 둘러볼 겸 내당성당을 방문하여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성전 복원 공사비는 교구에서 지원하기로 하고 복원 공사를 시행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드디어 내당성당 건립 58년 만에, 리모델링 36년 만에 성전을 복원하여 오늘 다시 하느님께 봉헌하는 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제대를 가운데 두게 되었고, 제대 위 십자가도 옛날 그 십자가를 달았습니다. 옛날 성당 바닥은 어두운 색깔의 타일이었고 천장의 불이 밝지 않았는데, 지금은 밝은색의 바닥과 천장의 밝은 등으로 성당 안이 많이 밝아졌고, 계단이 예전처럼 가운데 제대를 향하여 있지만 큰 불편함은 없는 것 같습니다. 거의 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박장근 신부님과 박재현 신부님, 그리고 손술영 도밍고 총회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강복이 있기를 빕니다.

 

오늘 제2독서(1코린 3,9-11.16-17)에서 사도 성 바오로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보았듯이 바오로 사도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전에서 기도드리고 신앙을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이 성전과 함께 여러분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기를 축원합니다.

 

내당본당의 주보 성인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6세기에 성 이냐시오 로욜라와 함께 ‘예수회’라는 수도 단체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이 수도회 초대 총장을 맡아 내부를 다졌다고 하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하느님을 모르는 세계 곳곳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했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전교 지방의 수호성인이십니다.

오늘 이 미사 중에 성인의 유해를 다시 안치하게 되는데, 유해 확인서를 보니까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추기경님께서 확인하신 것으로 되어있고, 잉애 여사 앞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잉애 여사께서는 독일 사람으로서 1962년 서정길 대주교님의 초대로 우리 교구에 들어오셔서 ‘소화어린이집’을 세우고 운영하는 등 우리 교구의 사회복지와 육아 사업에 50여 년을 봉사하신 ‘사도직 협조자’였습니다. 8년 전에 선종하셔서 제가 복자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집전했었는데, 군위 묘원에 묻혀 계십니다.

잉애 여사는 우리말로도 ‘옥잉애’라고 불렸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전교 지방인 우리나라에 사도직 협조자로 오는 옥잉애 여사를 통하여 성인의 유해가 내당성당에 전달되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내당성당에는 귀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는 것을 아시고, 성인의 유지에 따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성당으로 많이 찾아오도록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