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측은지심 (농민주일 미사 강론) |
2024/07/25 13:30 |
농민주일 미사
2024. 07. 21. 봉곡본당 아포공소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이며 ‘농민주일’입니다. 한국천주교회는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지내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감사를 드리며, 도시와 농촌이 함께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맞게 살아가도록 하자는 뜻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5년 전부터 농민주일에 공소를 방문하여 농장 한두 개를 축복하고 공소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2020년 영천 자천공소, 2021년 청도 동곡공소, 2022년 경산 와촌공소, 작년에 고령 백산공소, 그리고 올해는 봉곡본당 아포공소를 방문하였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까,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원의 이석진 그레고리오 신부님께서 원평본당 주임(1965년-1970년)으로 계실 때인 1965년에 아포 지역을 전교하기 위해 지역 유지분들과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교리반을 개설하였다고 합니다. 그 다음 해인 1966년에 공소를 만들었는데 1968년에 경부고속도로에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해에 현재의 이 땅을 매입하여 공소 건물을 새로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포공소는 당시 왜관 감목대리구 시절에 지은 많은 성당과 공소들이 그렇듯이 분도 수도원의 알빈 신부님이 설계하셨습니다. 알빈 신부님께서는 한국에 들어오셔서 평생을 수도자로 사시면서 수많은 성당과 공소들을 설계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구미 원평성당, 칠곡 왜관성당, 김천 평화성당 등입니다.
대구 가톨릭 사진가회의 최현호 형제님이 지난 4월에 범어대성당의 드망즈 갤러리에서 ‘앙드레 부통 신부와 공소’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그 전시회에 제가 잠시 들렸었는데, 아포공소의 부통 신부님 그림이 표지에 실려있었습니다. 부통 신부님은 1964년부터 77년까지 왜관수도원에 계시면서 당시 왜관 감목대리구의 많은 공소에 그림을 남겼습니다. 그 그림들이 다시 조명되고 있는데, 우리가 잘 보존해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지난 봄에 성주 선남본당 용암공소를 우연히 들렸었는데, 군에서 공원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용암공소도 알빈 신부님이 설계했었고, 공소 안에는 부통 신부님의 그림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석진 그레고리오 신부님, 알빈 신부님, 부통 신부님 같은 분들, 그리고 이 지역의 선교를 위해 노력해 왔던 여러 교우들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분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복음화를 위한 그분들의 열정과 헌신을 본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마르 6,30-34)을 보면, 제자들이 선교하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그 결과를 보고하였더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외딴곳에 갔더니 사람들이 먼저 그곳에 와서 예수님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았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쉬지도 못하시고 그들에게 또다시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고 하는데, 그 마음이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너무나 험악하고 살벌합니다.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터지고 국제 질서가 신냉전 시대에 돌입한 것 같습니다. 우리 한반도의 남북 관계도 강 대 강으로 가기 때문에 매우 불안합니다. 국내 정치도 극한으로 치닫고 있고, 일반 사회도 폭력과 험담과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참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측은지심입니다. 이것은 농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나만 먹는 것이 아니라 남도 잘 먹도록 정성껏 농사를 짓고 지구를 건강하게 가꾸는 마음입니다.
측은지심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비이며 사랑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가질 뿐만 아니라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