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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삶, 선종의 은혜 (교구 사제 총회 위령미사 강론)
   2019/11/07  9:29

교구 사제 총회 위령미사

 

2019. 11. 05. 성직자묘지

 

우리는 지금 교구성직자묘지에서 위령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난 분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는, 신경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영원한 삶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인들의 통공 교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 후반부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앞서 세상을 떠나신 분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이미 천국에 계신 모든 성인들로 하여금 지상에서 수많은 유혹과 시련 속에 살고 있는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올해는 돌아가신 분들을 특별히 많이 기억하는 해가 되었습니다. 지난 2월 16일에는 계산성당에서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 선종 10주기 미사를 드렸고, 지난 8월 31일에는 최영수(요한) 대주교님 선종 10주기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부터 지금까지 두 달 동안에 다섯 분의 신부님들의 부모님 장례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지난 10월 12일에는 이찬현(야고보) 신부님이 하느님 나라에 가셨습니다. 이찬현 신부님이 떠나신 날 신부님의 유언서를 읽어 보았습니다. 우리 신부님들은 매년 사제피정 중에 유언서를 새로 작성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찬현 신부님은 두 장 빼곡하게 유언을 자필로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몇 번 방문하여 함께 기도드리곤 했지만, 그 유언서를 읽으면서 새삼 신부님의 마음과 신앙과 교회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60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지만 신부님이 하느님 앞에 가시기에 나름으로 잘 준비하였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2010년 3월에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안 의사의 유묵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박물관장님이 마침 신자분이라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미사를 드릴 수 있느냐는 건의를 해서 제가 대구박물관 강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안 의사께서 돌아가신 당일인 3월 26일 10시에 추모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강론 준비를 위해 안 의사께서 뤼순감옥에서 쓴 ‘안응칠 역사’라는 자서전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서전에는 안 의사 집안이 어떻게 하여 천주교를 믿게 되었는지, 천주교 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에게 세례를 준 빌헴 신부님과 전교하러 다니면서 했던 연설 등 자신의 신앙과 관련된 내용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좋은 분이 있는가 하고 새삼 놀랐습니다. 

그래서 안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를 한 번 직접 가 봐야 하겠다는 마음을 그때부터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달 전에 비로소 3박4일 일정으로 중국 하얼빈과 뤼순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미뤄놓은 숙제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안 의사께서는 한 5개월 간 뤼순감옥에 계시면서 자서전도 쓰고 ‘동양평화론’도 썼지만 유묵도 많이 남겼습니다. 사형집행 이틀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묵(遺墨)이 ‘청초당(靑草塘)’이라는 글입니다. 글자 그대로의 뜻은 ‘푸른 풀밭으로 덮인 언덕’을 말합니다. 지금은 옥에 갇혀있고 곧 죽게 될 것이지만 언젠가 봄이 오면 황량한 언덕이 푸른 풀밭으로 덮이게 될 그 날을 안 의사께서는 소망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이 죽어서 곧 가게 될 하느님 나라를 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1910년 3월 9일에 안 의사의 동생 정근과 공근 형제와 빌헴 신부님이 면회를 갔었는데 그 자리에서 안 의사께서는 동생들에게 유언을 하기를, 자신이 죽으면 육신을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하얼빈 역에 갔다가 하얼빈 공원에 들렸었는데, 안 의사의 유해는 없고 ‘靑草塘’이라는 안 의사의 글이 적혀있는 비석만 서있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그동안 한국과 중국이 안 의사의 유해를 찾는다고 했지만 아직 찾지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안 의사의 영혼은 이미 천국에 가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여기 신부님들의 무덤 위 돌판에 돌아가신 날짜 앞에 ‘선종’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한 때는 ‘別世’라고 적혀있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善終’은 글자 그대로 선하게 마쳤다는 말입니다. ‘善終’은 또한 ‘善生福終’의 준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착하게 살다가 복되고 거룩한 죽음을 맞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선종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은혜가 그냥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신학교 운동장에 언제 누가 그랬는지 모릅니다만, 나태주 시인의 ‘들꽃’이란 시가 적힌 돌판 두 개가 놓여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11월’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낮이 많이 짧아졌지요?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것이 선종의 은혜를 입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엄연한 진리인데,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런 기도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