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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과 제단의 봉사자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부제서품미사 강론)
   2020/01/16  17:44

부제서품미사

 

2020. 01. 15. 성 마오로와 성 플라치도 대축일.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찬미예수님.

오늘 이 미사 중에 김석주 에제키엘 수사님과 이종원 다니엘 수사님, 그리고 박진수 후밀리스 수사님이 부제품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이 수사님들에게 큰 은총을 내리시어 부제품을 받고 장차 훌륭한 성직자가 되고 수도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정성을 다하여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의 주보성인이신 성 마오로와 성 플라치도께서 우리 수사님들을 위해 하느님께 전구해 주시시를 청합니다.

 

부제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부제서품예식서에 나오는 주교 훈시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은사로 힘을 얻어 주교와 신부를 도와주고, 말씀 선포와 제대 봉사와 자선 활동의 직무를 수행하며 모든 이의 종임을 드러낼 것입니다. 특히 제대의 봉사자로서 복음을 선포하고 성찬의 희생 제사를 준비하며 신자들에게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그 밖에도 주교의 위임에 따라 신자들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을 인도하여 교리를 가르치며, 기도를 이끌고 세례를 집전하며, 혼인을 주례하고 축복하며, 죽음이 가까운 이들에게 노자 성체를 모셔가고 장례식을 주례할 것입니다.”

예식서에 나와 있듯이 부제의 직무는 한마디로 봉사하는 일입니다. 부제를 뜻하는, ‘Diaconus’ 라는 라틴말의 원 뜻이 ‘봉사’를 뜻하는 말입니다. 어디에 봉사하느냐 하면, 말씀과 제단과 애덕에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미사성제를 도우며 애덕실천에 앞장서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제품을 받으면 그 사람은 성직자가 됩니다. ‘성직자’란 말 그대로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직자란 모름지기 매일 기도에 충실하고 말씀을 선포하며 하느님과 백성에게 봉사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봉사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하느님과 그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어제가 이태석 신부님 선종 10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10년 전 48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하느님께 가셨습니다만, 이 신부님이 우리들에게 던져준 감동은 참으로 컸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봉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제가 될 사람은 봉사를 더욱 효과적이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기 위해 특별히 독신과 순명을 서약합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 것을 서약하고, 그리고 자기 주교와 장상에게 순명할 것을 서약하는 것입니다.

수도자들은 수도원에 입회한 지 일정기간이 되고 수련을 마치면 종신토록 하느님께 축성되고 봉헌된 삶을 살 것을 서원하는 종신서원을 합니다. 그래서 이 세 분의 수사님들도 이미 종신서원을 할 때 서약을 하셨지만 오늘은 부제품을 받고 성직자가 되는 것이기에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들 앞에서 공적으로 다시 독신과 순명을 서약하는 것입니다.

독신과 순명을 서약하는 이유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하느님과 교회와 백성들에게 더욱 효과적이고 온전한 마음으로 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바오로 사도께서 코린토 1서 17장에서 말씀하셨듯이 ‘사람을 속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답게 살며 딴 생각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그리고 일편단심으로 하느님과 사람을 섬기는, 봉사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난달 초에 있었던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그동안 사용해오던 ‘봉헌생활’이란 용어를 ‘축성생활’이라는 말로 변경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라틴어 ‘Vita consecrata’ 라는 말을 지금까지 ‘봉헌생활’이란 말로 번역하여 사용하여 왔는데, 전국남녀수도장상연합회에서 이 말의 정확한 번역이 ‘봉헌생활’보다는 ‘축성생활’로 해야 맞는다고 하며 용어를 변경하여 줄 것을 주교회의에 건의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교회의 총회에서 몇 차례에 걸쳐서 논의를 하였지만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가 그 결정을 상임위원회에 위임하였었는데 불과 한 달 반 전에 결정을 한 것입니다. 박현동 아빠스님께서 한국수도장상연합회 회장님을 맡고 계셔서 이 건에 대하여 준비를 많이 하셨고 애를 많이 쓰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축성(祝聖), 즉 Consecratio는 사람이나 물건을 하느님의 일에 쓰기위해 성별(聖別)하여 거룩하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수도생활을 축성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업에 쓰시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세상 사람들 속에서 뽑아 거룩하게 하시는 데에 강점을 두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주도권을 인간의 의지보다는 하느님께 두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셨고 우리는 거기에 응답할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

오늘 제2독서(1코린 1,26-31)에서도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축성된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감사드리며 사랑의 응답으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바친 삶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청빈이요 정결이며 순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상 조류와는 정반대의 삶이기 때문에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마태 14,28-33)에 나오는 베드로처럼 믿음이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주님의 손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베르골리오 추기경께서 교구장 사직서를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 제출하였는데 답이 없다가 로마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교황청에 갔다가 두 분이 이틀 동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주된 내용인 영화입니다. 두 분의 대화 중에도 나옵니다만, 1978년에는 세 교황이 계셨습니다.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입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교황님이 두 분 동시에 계시는 것은 70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합니다.

하여튼 영화는 감동적이었습니다. 두 분의 교황님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생각이나 사상과 취미까지 다 다르지만, 변함없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교회를 위해 노심초사하시고 교회에 봉사하려는 자세는 똑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 수사님들이 부제품을 받을 수 있도록 불러주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사람들이 진정으로 하느님과 백성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 봉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