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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된 목자를 따라서 구원의 길로!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미사 강론)
   2020/05/02  15:48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미사

 

2020. 05. 03.

 

찬미예수님! 
잘 계시는지요? 꽃피는 4월이 지나고 신록이 아름다운 5월의 첫 주일이 되었는데도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재개하지 못하고, 이렇게 유투브를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또 다시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코로나 19가 안정세에 들어감으로써 우리 교구도 미사를 재개하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많은 교구가 이미 미사를 재개하였습니다만, 그동안 대구 경북이 ‘코로나 19’ 피해가 가장 심하였기 때문에 우리 교구는 미사를 재개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계속되어온 ‘사회적 거리두기’가 5월 5일까지 다시 연장되었고, 그 이후에는 ‘생활 속 거리두기’로 넘어간다고 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우리 교구는 5월 7일부터 각 성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재개하려고 합니다. 미사를 재개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수칙들을 지키면서 하게 될 것입니다. 불편하더라도 우리 모두의 건강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하여 교우 여러분들이 배려와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코로나 19가 우리나라와 세계에 끼친 영향이 참으로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시대를 코로나 19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누기도 하고, ‘코로나 이전의 세계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어쨌든 코로나 19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인류에게 큰 충격과 위기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위기(危機)’에는 ‘위험’과 함께 ‘기회’도 있는 것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인류 사회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과 회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면밀한 대비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이기적인 무관심과 탐욕과 혐오와 차별이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3월 27일 저녁,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텅 빈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예식’을 거행하시면서 하셨던 교황님의 말씀처럼, 이 시기가 ‘선택의 시간’, ‘식별의 시간’이 되어 우리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것인지를 깨닫고, 새롭게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며 ‘성소주일’이고 ‘생명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부활 제4주일을 성소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성소(聖召)’는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말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성소, 즉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에 감사를 드리며, 거기에 합당한 삶을 자신이 살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 그렇지 않다면 다시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스스로 다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지내는 성소주일의 특별한 의미는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선교사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대로 기쁘게, 그리고 열심히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응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많은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응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하느님을 모르고, 하느님을 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이 안 계시는 듯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진정한 하느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요한복음 10,1-10로서 목자와 양들의 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비가 잘 오지 않아 땅이 거칠고 메마르기 때문에 농사보다는 목축업이 주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아는 목자와 양들의 비유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통 안에서 ‘목자’는 구원자를 가리켰습니다. 오늘 화답송으로 노래한 시편 23장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라는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자주 낭송되는 시편인데, 참으로 아름다운 시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목자의 일반적인 모습을 들려주시고, 거짓 목자와 참된 목자를 대비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짓 목자는 원래 양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만을 쫓아 살 뿐입니다. 
사실 그 당시 목자 노릇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목자들은 풀이 있는 곳을 찾아 양들을 몰고 다녀야 하는데, 한시도 양들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에는 위험이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깊은 낭떠러지가 있고, 늑대가 노리고 있으며, 그리고 양 도둑이 길 잃은 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자의 첫째 의무는 제대로 자지도, 쉬지도 못하고 양떼를 지키며 그런 침략자들과 용감히 싸워서 양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당신을 두고 “나는 문이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9) 
당시 유다에는 두 가지의 양 우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동네에 속한 양떼들이 들에서 돌아오면 다 한 우리에서 재웁니다. 그 우리의 문은 견고하고 그 열쇠는 문지기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양 우리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따뜻하거나 양떼를 동네로 몰아올 시간이 없을 때는 산기슭에서 노숙시키는데 양 우리는 돌담으로 둘렀을 뿐 지붕도 없고 출입구에는 문도 없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목자가 출입구를 가로막고 누워서 문 노릇을 합니다. 목자의 몸을 밟지 않고는 양들이 밤에 우리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문’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 10,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거치지 않고는 하느님 아버지께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느님께로 가는 유일한 문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옛날 군대에서 전방 생활을 할 때, 길을 가다보면 길가에 ‘길이 아니면 들어가지 마라.’라는 팻말이 가끔 눈에 띄었습니다. ‘길이 아니면 들어가지 마라.’ 맞는 말입니다. 길이 아닌데 들어갔다가 자칫하면 지뢰를 밟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성지를 여행하다보면, 저 멀리 들판에 목자가 앞장서 가고 그 뒤를 수많은 양들이 졸졸 따라가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됩니다. 양들이 목자의 뒤를 따르지 않고 한 눈 팔다 다른 길로 빠지게 되면 그 양은 정말 큰 위험에 처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목자는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2000년 동안 변함없는 주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참된 목자와 거짓 목자를 구별할 줄 모르며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에 양으로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잘 따랐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한 눈 팔지 말고 참된 목자이신 그 분만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