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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 강론)
   2020/12/28  16:12

주님성탄대축일 밤 미사

 

2020. 12. 24. 계산 주교좌성당

 

찬미예수님!

주님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오늘밤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시길 빕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이 놀라운 신비는 이천 년을 넘게 이어온 우리 신앙의 핵심이며 기쁜 소식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여 이 기쁨을 여러분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런데 올해의 성탄은 마냥 기쁨을 나누기에는 마음이 너무 무겁습니다. 정말 사방이 어둡고 뒤숭숭합니다. 무엇보다 1년 가까이 끌어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내년에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봄 사순절과 부활절에도 신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또 다시 ‘주님 성탄 대축일’마저 신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유투브 동영상을 찍기 위한 카메라 앞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정부에서는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코로나19의 창궐을 막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이는 기회를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차단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TV방송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아니라 “고요한 밤, 차분한 밤..”이라는 캠페인 노래가 들려오는 것을 보고 저는 슬펐습니다. 성탄절이 가까이 오면 예전에는 사람들이 성당에 모여 구유와 츄리를 만들고 성탄예술제를 준비하면서 모두가 설레고 기뻐하였는데 올해 성탄절은 집에서 차분하게 보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우 여러분들과 국민 여러분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으니 이렇게나마 주님 성탄의 기쁨과 축복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더욱 추운 겨울을 맞이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어려운 사람은 더 어려워졌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졌다고 합니다.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문을 닫아야 하는 가게들, 손님이 끊긴 식당들, 임차료도 내지 못하는 자영업자들, 그리고 다니던 직장마저 잃은 사람들의 이번 겨울은 더욱 혹독할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 대한 지원과 돌봄이 더욱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이들에 대한 기도와 관심과 배려가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한 해는 코로나에다가 정치적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여 온 나라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수들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였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내로남불’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말입니다. 정치권의 성숙하지 못한 이런 일들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더욱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협력과 상생과 평화의 길을 언제 우리 같이 걸어갈 수 있을까요?

 

그러나 희망을 잃지 맙시다.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이 오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이사야 9,1.5)

2020년 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도 상황이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고,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 황제의 명에 의하여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하여 살던 곳을 떠나 그 먼 베들레헴이라는 동네로 가야 했었습니다. 심지어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머무를 방이 없어 남의 집 헛간에 들어가 예수님을 낳고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나라에 오셨는데 누울 자리가 없어 구유에 누우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기막힌 일이 있을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 이 날을 기뻐하고 축하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밤새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0-12)

그렇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최근에 교서 <아버지의 마음>을 발표하시고 지난 12월 8일부터 내년 12월 8일까지를 ‘성 요셉의 해’로 선포하셨습니다. 비오 9세 교황님께서 1870년에 성 요셉을 보편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셨는데 올해 150주년을 맞이하여 현 교황님께서 ‘성 요셉의 해’를 정하고 기념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교황님의 말씀처럼 성 요셉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해주시고 지지하며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요셉 성인께서 또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 당시 성가정의 가장으로서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헤로데 왕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니까 요셉 성인은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을 모시고 그 먼 이집트에까지 피난을 가야만 했었습니다. 그래도 성인께서는 그 모든 난관들을 이겨내었던 것입니다.

저는 작년에 ‘잠자는 성 요셉’ 상 몇 개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 침대 머리맡과 책상 위에 두고 있습니다. ‘잠자는 성 요셉’ 상은 큰 보따리 하나를 베게 삼아 누워 잠자는 성 요셉의 모습입니다. 그 보따리는 아마 걱정보따리일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을 보면 잠자는 요셉의 꿈에 여러 번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걱정거리를 해결해주고 나아갈 길을 안내해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려움과 걱정거리가 많겠지만 우리 주님을 굳게 믿고 요셉 성인의 도움을 청하면 잘 해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기쁜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도 천사들과 함께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합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