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결같은 마음으로 (2023년 성유축성미사 강론) |
2023/04/07 14:31 |
성유축성미사
2023. 04. 06. 범어대성당
오늘 우리 교회는 오랜 전통에 따라 보편교회와 지역교회별로 주교와 사제단이 함께 미사를 드리고 한 해 동안 사용할 성유들을 축복하고 축성합니다. 우리 교구도 성주간 목요일인 오늘 오전에 이곳 주교좌범어대성당에 모여 성유축성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미사 중에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은 각자 수품 때 했던 서약을 새롭게 하며 자신의 직무에 더욱 충실할 것을 다짐할 것입니다. 서약을 갱신하는 우리 신부님들과 저희 주교들을 위해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강택규 예로니모 신부님과 이정추 바오로 신부님께서 올해로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셨습니다. 두 분께서 연세도 올해로 만 80세가 되셨는데 지금처럼 늘 영육으로 건강하시고 주님 사랑 안에서 기쁘게 사시도록 특별히 두 분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빕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기며 사는 일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요즘 세상을 돌아보면 알 것 같습니다.
한 8년 전에 교구 평신도 임원들과 함께 중국 북경을 방문하고 산서성에 있는 면산에 들린 적이 있습니다. 그 면산에서 가이드로부터 개자추와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나 드라마틱하여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중국 춘추시대 때 진나라에 ‘중이’라는 왕자가 있었는데 내란이 일어나 부하 몇 사람을 데리고 나라 밖으로 망명을 가서 유랑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러 날 동안 제대로 먹지를 못해 왕자가 기진맥진해 있을 때 ‘개자추’라는 부하가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요리를 해서 주군을 살려내었던 것입니다. 몇 년 후 나라가 안정을 되찾고 그 왕자가 귀국하여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가 진나라의 ‘문공’이라는 왕입니다.
그런데 문공이 왕위에 오르고 난 뒤에 옛날 어려운 시절을 같이 지냈던 충신들을 불러서 한 자리씩 주었는데, 개자추는 부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개자추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면산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공이 뒤늦게 개자추를 생각하고 찾았지만 개자추는 면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산 한쪽에 불을 지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면 개자추가 반대쪽으로 내려오지 않겠나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개자추는 내려오지 않았고 군사들이 올라가 보니 개자추는 홀어머니를 껴안은 채 버드나무 아래에서 그대로 타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보고를 듣고 왕은 너무나 애통해하면서 온 나라 백성들에게 이 날만은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찬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식’이라는 명절이 생겼고, 오늘이 바로 그 한식날입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에 속했는데 오늘날에는 단오와 한식은 잘 지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제가 24절기로 청명이었고 식목일이기도 합니다.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 한식이니까 통상 4월 5일이나 6일이 한식이 됩니다. 그런데 예전에 4월 5일 식목일에 나무를 심으라고 공휴일로 지냈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식목일이며 한식날인 그날 우리나라에 산불이 제일 많이 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3월과 4월 주말에 산불이 제일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 하루에 전국의 36군데에 산불이 났었습니다. 90% 이상이 실화요 방화라고 합니다. 논두렁 밭두렁을 태우지 말라고 하는데도, 쓰레기나 낙엽을 태우지 말라고 하는데도, 산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는데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8년 전 면산에서 개자추 이야기에 대하여 가이드가 말한 또 한 가지의 설이 있는데 무엇이냐 하면, 그 당시 몇몇 간신들이 개자추가 산에서 내려와서 조정에 들어오면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산에 불을 지를 때 한쪽만이 아니라 반대쪽도 다 질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고 죄 많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목요일 저녁에 열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다.”(루카 22,28)
그런데 지난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복음말씀(마태 26,14-27,66)으로 들으셨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에서 한 사람이 당신을 팔아넘길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하고 말합니다. 유다도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하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는 아주 가까운 사람, 아주 친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시편 41,10에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믿어 온 친한 벗마저, 제 빵을 먹던 그마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듭니다.”
이 시편은 다윗왕이 자기 측근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아히토펠 장군이 자신을 배반하자 비통해하며 읊은 것이라고 합니다. 사무엘 2서 15장을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반란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자 아히토펠이 압살롬 편에 붙어버렸던 것입니다.
인간이 이렇습니다. 아무리 오래 쌓았던 우정도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당에 잘 다니던 사람도 자신의 이익이나 잘못된 자기 계산에 빠져 하느님에 대한 신앙마저 져버리는 모습을 우리는 가끔 보게 됩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유다는 은전 서른 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사실 유다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강도만 약할 뿐이지 수제자 베드로도 스승님을 모른다고 배반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26,33)
조금 있다가 베드로가 다시 말합니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마태 26,34-35)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배반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찬을 마치시고 난 뒤 올리브 동산에 올라가셔서 피땀을 흘리시며 성부께 기도하셨습니다. 그 괴롭고 심각한 시간에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자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제자들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결같은 사랑, 한결같은 믿음, 한결같은 순종이 요구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고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희를 위하여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마태 26, 40.45)
결국 예수님께서 뽑으신 열두 제자들 중에서 한 사람을 잃었지만, 나머지 제자들은 모두 주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저와 우리 신부님들도 주님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신자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한결같은 마음과 자세를 가질 수 있게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으로 채워주시고 성모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시기를 청합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