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한티순교자마을잔치 미사 강론) |
2023/07/27 16:58 |
한티순교자마을잔치 미사
2023. 07. 22.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최근 우리나라에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극한 호우’라고 했나요? 그 극한 호우 때문에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고, 물적 피해도 많았습니다. 이번 수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신 분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재민 분들이 하루빨리 일상의 삶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이 지구가 이상 기후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어떤 지역은 기온이 52도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지에서도 45도까지 치솟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더위를 유럽에서는 ‘피자 화덕’과 같은 더위라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가마솥더위’라고 하지요. 하여튼 지금 이 지구는 엄청난 폭염과 엄청난 폭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거의 원인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상 기후도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누가 제공했습니까? 사람이 제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후 위기는 장차 미래에 나타날 현상이 아니라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이 지금 바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기후협약에 가입한 나라들이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는데, 2050년이 되기 전에 지구의 생물들이 다 멸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 생태 위기를 막기 위해 기후협약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이나 단체는 석탄발전소 앞에서 시위를 하고 하는 것은 좋은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생활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덜 사고 덜 쓰고 덜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고 세계인들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음식이든, 옷이든, 에너지든 덜 사고 덜 쓰고 덜 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국가든, 기업이든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면서 이것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명품에 열을 올리는 현상을 저는 잘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명품도 문제이지만 오늘날 패스트 패션이 더 문제라고 합니다. 옷을 일회용처럼 쉽게 사서 한 두 번 쓰다가 버리는 것입니다. 한 해에 세계에서 생산되는 옷의 양이 천억 벌이 넘는다고 합니다. 청바지 하나만 하더라도 1년에 40억 벌이 생산된다고 합니다. 패스트 패션 대부분은 패트병을 만드는 재료와 같은 재료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1년에 생산되는 천억 벌의 옷 중에서 70%는 주인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몇 년 동안 쌓인 재고를 소각한다고 합니다.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나라마다 자국의 경제성장을 위하여, 그리고 사람들의 편의성 때문에 과잉 생산, 과잉 소비를 제한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프랑스가 이런 조치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차로 두 시간 반 내에 갈 수 있는 곳은 비행기를 타지 않도록 제한하겠다는 것이고, 재고 물품을 정부의 허락 없이 함부로 소각하거나 매립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개입하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여튼 우선 우리만이라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찬미받으소서’의 정신을 살아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한티마을순교자잔치’를 하는 자리인데 기후 위기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마을 잔치를 코로나19 때문에 몇 년 간 못 하다가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이 한 여름에 갖게 되었습니다.
‘왜 이때 잔치를 하느냐?’ 하고 여영환 오토 신부님한테 물었더니, 한티의 순교자들이 1868년 무진년 7월경에 대부분 순교하신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선조께서 돌아가신 기일이 되면 후손들이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추모를 하며 음식을 나누지 않습니까? 한티순교자마을잔치도 바로 그런 것이라 생각됩니다. 미사는 제사이기도 하고 잔치이기도 합니다. 오늘 의미 있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이름은 갈릴레아 호수 서쪽에 있는 막달라라는 마을 출신의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마리아라는 이름이 참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도 마리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갈릴레아에서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들리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 베타니아라는 동네의 그 집에도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그녀들의 오빠 라자로가 한 형제였습니다. 예전에는 7월 29일을 ‘성녀 마르타 기념일’로 지냈었는데 지금은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루카 7,36-50을 보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향유를 부어드린, 일명 ‘죄 많은 여인’이 나오는데, 이 여인의 이름도 ‘마리아’이지만 마리아 막달레나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누구냐? 루카 복음사가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루카 8,2) 여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에 나오듯이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나서 큰 치유의 은혜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온 마음과 온 정신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인 요한 20,1-2.11-18은 주님부활대축일 미사 때 늘 듣게 되는 복음입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1)
주간 첫날 그 꼭두새벽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왜 무덤에는 갔습니까? 예수님께서 진짜로 부활하셨는지를 확인하러 갔습니까?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러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고 시신이 없어진 것입니다.
11절에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고 하는데 왜 울고 있었습니까? 시신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가신 것도 슬픈데, 그분의 시신까지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비통하겠습니까!
그런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뵙는 영예를 갖게 됩니다. 요한복음만이 아니라 다른 복음서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처음 뵌 사람이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입니다.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렇고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신 것은 그녀가 보여준 사랑과 충실함에 대한 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잡혀가시자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받는 내내 그 곁을 지켰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18절)을 보면,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하고 말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사도들에게 알린 사람이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그래서 옛 교부들은 그녀를 ‘사도들의 사도’라고 칭송하였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런 의미에서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을 축일 급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우리 한티순교성지 후원회원들과 봉사자 여러분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할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알리는 사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