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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성유 축성 미사 강론)
   2024/04/02  9:22

성유 축성 미사

 

2024. 03. 28. 범어대성당

 

오늘 성주간 목요일에 교구 내 거의 모든 사제들이 모여 ‘성유축성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 미사 중에 교회가 앞으로 일 년 동안 사용할 ‘병자 성유’와 ‘예비신자 성유’, 그리고 ‘축성 성유’를 축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유 축성 전에 특별히 신부님들의 서약 갱신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신부님들은 자신이 예전에 사제품을 받았던 때를 기억하며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제 직무에 더욱 충실할 것을 다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우분들은 오늘 서약 갱신을 하시는 신부님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올해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시는 박성대 세례자 요한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또한 올해 사제서품 60주년 회경축을 맞이하시는 허연구 모이세 신부님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은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제자로 불러주시고 사제로 세워주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성경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일찍이 신부님들을 선택하시어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또한 당신의 영을 보내 주시어 천상 능력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하시던 일을 우리 신부님들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님들을 ‘주님의 사제들’이라 불리고, ‘우리 하느님의 시종들’이라 불릴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 저를 포함하여 저희 사제들이 더욱 예수님을 닮은 사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전에 어떤 신부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교님, 신부들에게 칭찬을 좀 해주세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신부님들에게 칭찬은 하지 않고 맨날 꾸중만 했었나?’하고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꾸중보다는 칭찬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가끔 수녀님들한테서 우리 교구 신자들이 다른 교구에 비해서 열심하고, 또 우리 교구 신부님들도 다른 교구에 비해서 열심하고 좋은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수녀님들은 여러 교구에서 소임을 하시는 전국구 출신이라서 신빙성이 좀 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저도 기분이 좋고 어깨가 올라가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현역 운동선수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아마도 축구선수 손흥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손흥민은 현재 영국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이라는 프로축구팀에서 뛰고 있는데 주장을 맡고 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쉴 틈이 없습니다. 그저께 태국과의 경기가 있어 보셨겠습니다만, 교체도 시켜주지 않습니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장을 맡는다는 것은 실력만이 아니라 그만큼 책임성이 강하고 리더십이 있다는 것입니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솔선수범을 해야 하고 판단력과 분별력,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와 포용성과 겸손함까지 겸비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손흥민 선수를 보고 ‘저런 선수를 키운 아버지가 누구냐’하고 최근에 아버지까지 소환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손웅정’이라는 사람으로 역시 축구선수 출신으로서 지금은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손웅정 씨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들 손흥민이가 초등학생 때 하도 축구를 하고 싶어해서 직접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부터 축구 기술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돌멩이와 병 쪼가리 등을 줍는 일을 시켰다고 하였습니다. 그다음에는 매일 달리기를 엄청나게 시켰다고 합니다. 이 손웅정이라는 사람이 쓴 책 제목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입니다.

사실 운동이든 공부든 기본이 중요하고 기본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 기도 잘 바치고 미사참례 잘하고 성사 잘 보고 하는 기본적인 것부터 충실해야 하지, 그런 것을 등한시하고 무슨 은혜 받겠다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는 것은 좀 불안정한 신앙생활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제생활도 그렇습니다. 매일, 미사를 정성 들여 바치고, 성사를 잘 주고, 강론 준비 잘하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친밀하게 대하는 것이 사제생활의 기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만 잘하면 본당 분위기가 좋아질 것입니다.

대구 외곽지에 지난 10여 년 동안 본당 신부님들이 자주 바뀌었었고 분위기가 별로였던 본당이 있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분위기가 아주 좋아진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강론을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특별한 사목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미사 잘 드리고, 성사 잘 주고, 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친절하게 대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늘 잘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늘 성찰하고 돌아보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에 어느 소년이 미사 복사를 서다가 실수로 그만 주수병을 떨어뜨려 포도주와 물을 바닥에 엎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본당 신부님한테 엄청나게 혼이 나고, 미사 후에 벌을 받았습니다. 그 소년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공산당에 가입하였고 나중엔 공산당 제1서기가 되고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티도(Tito) 대통령입니다. 그는 88세로 사망할 때까지 28년간 유고연방을 다스렸으며 수많은 반대자들을 처형했습니다. 그는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가톨릭 신자였지만 바티칸과 갈등을 빚었고 무신론자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후 10년 후에 유고연방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등으로 분리 독립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비슷한 시기에 어떤 소년이 미사 복사를 서다가 실수로 그만 주수병을 떨어뜨려 제단 바닥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소년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고 있는데, 신부님이 “괜찮아. 다시 가져오면 돼.”하고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 소년이 성인이 되어 사제가 되고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미국의 뛰어난 설교가로 유명한 풀톤 쉰 대주교님(Archbishop Fulton Sheen, 1895년 5월 8일-1979년 12월 9일)입니다. 미국 천주교회에서 이분을 지금 시복 추진 중에 있습니다.

두 소년이 같은 실수를 하였지만 당시 사제가 어떻게 대하였는가에 따라 한 소년은 독재자 되었고, 한 소년은 성직자가 되고 곧 시복될 하느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당시 본당 신부님의 행동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성장과 삶에 어떤 영향을 분명히 주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교구와 세계의 모든 성당에서 주님 만찬 성목요일을 지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하시며 당신의 몸을 우리의 양식으로 주신 참뜻을 되새기며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할 수 있기를 다짐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