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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탄생과 순교 (제3차 교구 사제 연중피정 파견미사 강론)
   2024/07/08  16:21

제3차 교구 사제 연중피정 파견미사

 

2024 07 05.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대축일, 한티피정의 집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입니다만, 한국교회는 종전대로 대축일 급으로 지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로는 늘 역대기 하권 4,18-22을 듣게 됩니다. 요아스 임금의 명에 따라 즈카르야 사제가 성전 뜰에서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 죽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구절인 22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열왕기 하권 11장을 보면, 그 악명높은 아합 왕과 이제벨 왕비 사이에 난 딸인 아탈야가 왕인 자기 아들이 죽자 실성하여 왕족들을 죽이고 자신이 정권을 잡습니다. 그때 여호야다 사제가 아탈야의 손에서 어린 아기 요아스 왕자를 구하여 성전에서 6년 동안 숨겨서 키우다가 칠 년째 되던 해에 백인대장들을 모아 쿠데타를 일으켜 아탈야를 죽이고 어린 요아스를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요아스 왕은 여오야다 사제가 죽은 뒤에는 우상숭배에 빠지고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꾸 지적하는 즈카리야 사제를 죽였던 것입니다. 갓난아기였던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주었던 분의 아들을 돌로 쳐 죽였던 것입니다. 결국 얼마 안 가서 요아스 왕 본인도 왕궁에서 신하들 손에 죽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이 이렇습니다. 권력욕과 명예욕과 물욕 때문에, 그리고 어떤 이념이나 잘못된 판단 등으로 개인 간이나 나라 사이에 얼마나 참혹한 일이 벌어지는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기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하여 그 많은 순교자들도 당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었고, 얼마나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여야 했겠습니까! 열다섯 살에 그 먼 마카오로 가서 어렵게 공부를 하고, 어렵게 사제 서품을 받고, 또 어렵게 고국에 돌아와서는 얼마 되지 않아 체포되어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같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교회가 있는 것이고, 김 안드레아 신부님의 뒤를 이어 사제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김 안드레아 신부님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에 들어왔던 그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엄연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에 숨어 들어와서 기쁘게 복음을 전했고 순교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0)

 

몇 년 전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탄생’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그러나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니까 런닝타임 2시간 반짜리 영화가 되었고, 그래서 좀 지루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여튼 그 영화를 만드는 데 수백억 원이 투자되었다고 합니다. 제작비의 90%가량을 투자했던 남상원 회장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원래 불교신자였는데, 김수환 추기경님의 생애에 감동을 받아 영세하신 분입니다. ‘탄생’이란 영화 전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을 다룬, 고 정채봉 작가의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저 산 너머’라는 영화를 만든 적도 있습니다. 영화 시사회에 가서 봤는데 괜찮았습니다.

작년에 이분과 이분의 영세 대부인 소설가 김홍신 작가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상원 회장님께 물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적자가 났는데, 괜찮습니까?” 했더니, 그분 대답이 “하느님께서 벌써 다 채워주셨습니다.” 하였습니다.

영화 ‘탄생’을 보면 역관이었던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도 나오지만, ‘이상적’이라는 역관도 나옵니다. 영화에서 ‘이상적’은 김대건 신부님과는 말을 섞지 않지만, 멀찌감치에서 지켜만 보는 장면이 한두 번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사람이 왜 나왔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동시대에 활동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도 대정읍에 가면 순교자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 마리아 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지가 있습니다.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에서 보낸 긴 유배 생활 동안 친지들과 친구들의 연락은 끊어졌지만, 제자 이상적만은 스승을 잊지 않고 중국을 드나들 때마다 귀한 책을 구하여 보내주곤 하였던 것입니다. 김정희 선생은 그 책으로 그 긴 유배 생활을 견딜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마운 제자 이상적에게 1844년에 그려준 것이 그 유명한 ‘세한도’라는 그림입니다.

그 세한도를 5년 전에 국가에 기부하신 ‘손창근’ 옹께서 지난달 11일에 9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신문 기사를 지난주에 뒤늦게 읽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주위에 알리지 말라’는 손창근 씨의 유언을 자식들이 지켰기 때문에 장례가 다 끝나고 나서 이분의 별세를 세상이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손창근 씨는 생전에 조부와 부친 손세기 씨 때부터 수집했던 300점이 넘는, 보물급의 고미술품과 1,000억 원 상당의 토지 등을 공익단체와 국가에 기부하였고, 5년 전에는 국보 세한도까지 기부하였던 것입니다. 그분은 생전에 KAIST에서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제안했지만 사양하였고, 국가 공로자로서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지만, 본인의 유언대로 가족 선산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일대기를 다룬 ‘탄생’이란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신앙과 관계가 없는 이상적 역관과 손창근 씨, 그리고 남상원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참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산 분들이라 여겨지기에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영화 제목은 ‘탄생’이지만 김대건 신부님의 육신의 탄생이 아니라, 이 땅에 첫 사제가 탄생했다는 것이고, 마지막에 순교로써 이룬 천상의 탄생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후배들인 우리들은 사제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고, 또 어떤 탄생을 그리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