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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콩 심은 데 팥이 나고, 팥 심은 데 콩이 나는 수가 있다.
   2016/03/05  8:30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콩 심은 데 팥이 나고,  팥 심은 데 콩이 나는 수가 있다

(사순 제4주일 다해)

 

 

루카복음 15,1-3.11-32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완전무결하시기 때문에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사시는 분이다. 사람들이 그분을 배신하거나 욕을 해도 그분의 품성에는 아무런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의 본성은 사랑이다. 하느님은 사랑으로 넘쳐흐르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필요하다고 이르신다. 우리 없이는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면 배신과 모함과 비난을 받아도 끝까지 사랑을 철회하지 않고 이웃과 원수를 한결같이 사랑할 힘을 받는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그들이 우리에게 필요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삶과 운동의 원동력이다.

 

작은아들이 회개하기 전에도 변함없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달려와서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 그를 용서하고 기꺼이 아들로 다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탕아에게는 뜻밖의 사랑이었다. 이는 바로 바오로 사도가 가르친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동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것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하십니다.”(로마 5,8)

 

또한 요한 1서의 저자도 그렇게 가르쳤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여 당신의 아드님이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도록 보내주신 것입니다.”(1요한 4,8.10)

 

하느님은 우리가 죄를 짓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다. 죄인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야 회개할 수 있다. 죄 중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양심, 인간의 도리를 배척하는 상태에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객지에서 방탕하게 살면서 유산을 탕진하고 타락한 생활을 한 작은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이러한 사랑에 힘입어 제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의 품속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탕아의 죄의식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체험이요 구원의 시작이다. 자기의 죄를 알지 못하는 이는 진실로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 없다. 죄의식을 가지기 위해 십계명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랑의 이중계명을 지켰는지 성찰해야 한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서로 순종함으로써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고백할 수 없으면 그들은 모두 사랑에 빚진 죄인들이다.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는 반대로, 집에 남아 아버지께 순종한 형은 동생을 가엾게 여겨 기꺼이 품에 안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형은 아버지의 사랑을 맹목적인 감정이요 아버지가 동생의 버릇을 더럽게 만드는 바보스러운 짓이라고 여겼다. 형의 사고방식은 잘못을 저지른 자는 그 잘못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타락한 동생은 가문의 수치요 고생을 해야 싸다는 것이다. 형은 아버지가 동생에게,

 

네가 나의 품을 떠났으니 내 주위에서 얼씬거리지도 마라.”

 

하고 말씀하거나 동생의 간청대로 날품팔이꾼으로 삼아 고생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은 자기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극진히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동생을 자애롭게 맞이하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형의 사고방식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야 한다는 것이고 합리적이다. 맏아들은 타락한 자기 동생을 받아들여 기뻐하시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이러한 처사가 불공평하고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하느님의 품을 저버리고 나간 작은아들은 이 품속으로 돌아온 반면, 그분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지 않는 큰아들은 그분의 품속을 박차고 나가서 다시 안기지 않으려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작은아들이 돌아오자 이젠 큰아들을 집 안으로 들어오도록 거듭 타이르셨다. 하느님은 자기에게 불평하는 큰아들과 같은 사람들을 배척하시기는커녕 자기와 함께 죄인들의 회개를 기뻐하자고 부르신다.

 

하느님의 자비는 큰아들이 생각하는 정의, 즉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인간적 정의를 능가한다. 그의 사고방식과는 달리, 하느님은 작은아들이 자기의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던 것이다. 하느님의 사고방식은 죄인의 죄상을 파헤쳐 내고 그의 죄상을 인정하게 하시며 그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아흔아홉의 의인들보다 한 사람의 죄인의 회개를 반기시는 하느님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공평과 원리원칙에 집착하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우리는 하느님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배워야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기 위해 몇 가지 명심하자.

 

첫째,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과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 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

 

둘째,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는 50센티미터쯤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머릿속에 든 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거나 평생이 다 가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하느님의 인식으로부터 하느님을 사랑하기까지는 얼마나 먼 것인가?”(B. Pascal)

 

셋째, 날마다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하면 그분을 닮아 그분과 이웃에게 사랑을 줬다 빼앗았다 하며 변덕을 부리지 않게 된다. 한결같은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타오르게 될 것이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다.

 

넷째,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더라도 사랑과 공동선을 위해서 끊임없이 타협하지 않으면 착각 속에 빠지고 자아를 상실하며 온전한 인간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면 온갖 악습에 빠지고 만다. 타협은 위대한 사랑의 시작이다.

 

사랑이 충분하면 뉘우치게 하지 못할 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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