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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미야모토 가요코의 슬픈 가족사(사순 제5주일)
   2016/03/12  10:19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미야모토 가요코의 슬픈 가족사

(사순 제5주일)

 

 

요한복음 8,1-11

 

 

 

올해 74살인 고이즈미 준이치로(194218일 생)는 일본 제87대 총리였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일본 우익의 대표이자 망언 제조기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그는 파벌 정치 철폐, 과감한 인사 단행, 성역 없는 구조 조정으로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애쓴 정치 개혁의 기수, 자민당의 돈키호테, 괴짜 정치가로 불린다. 고이즈미 내각은 이런 인기와 정치 변혁에 대한 일본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2001년 발족된 직후 87.1퍼센트라는 높은 지지를 받으며 5년간 장기 집권했다. 고이즈미는 36살에 명문 재력가 딸인 22살 미야모토 가요코(올해 60)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 둘의 부부생활은 참담했다.일본 중년 여성지 이키이키(생기’) 4월호에 가요코씨가 두 아들과 생이별을 한 결혼생활에 대해 33년 만에 처음 입을 열었다.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에 다니고 있던 가요코는 1977년 당시 중의원 의원인 고이즈미와 맞선을 보고, 당일 고이즈미의 청혼을 받아 그 이듬해 스물두 살에 서른여섯 살인 고이즈미와 결혼했다. 가요코씨는 장남 고타로, 차남 신지로를 낳았지만 결혼 4년여 만인 1982년 두 아들을 두고 남편과 이혼했다. 그 당시 언론에서는 이 부부가 나이와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이즈미 전 총리의 어머니(2001년 93살에 죽음)가 며느리가 선거운동을 잘 못하고 아들의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이혼시켰다는 설도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어머니와 누나와 여동생들 덕분에 출세했다고 여기고 그들에게 맹종한단다. 가요코는 이혼했을 때 임신 6개월이었다. 이혼 한 다음 해 최악의 마음상태에서 막내아들 요시나가를 낳았다. 장남과 차남은 고이즈미, 막내는 가요코에게 친권이 돌아갔다. 가요코씨는

 

가장 괴롭고 슬플 때였다. 평생 흘릴 눈물을 그때 다 흘렸다.”

 

하고 회고했다. 가요코씨는 셋째를 낳은 뒤 반년도 안 돼 부동산 회사에 취직하여 막내를 홀로 키웠다. 그는 막내에게

 

아버지가 유명하든 아니든 너하곤 상관없다. 네 엄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착각하지 말고 살아라.”고 타일렀다.

 

올해 장남 고타로는 37살이고 꽃 미남 배우다. 1억엔이라는 고액의 전속료를 받고 연예계로 나가 활동하고 있다.  차남 신지로는 34살이고 현 자민당 중의원이다. 재력가의 곱게 자란 규수였던 부인 가요코씨와 4년 동안 짧은 결혼생활을 하고 이혼한 고이즈미 전 총리는 전 부인에게 30년 동안 이 두 아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가요코씨는 자기가 낳은 두 아들을 텔레비전에서밖에 볼 수 없었단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셋째가 중학생이 되면 만나겠다.”

 

고 약속했지만 결국 막내아들 요시나가가 33살이 될 때까지 만나지 않았다. 가요코씨는 다만 시어머니가 죽었을 때 문상을 가서 자기는 감금되고 셋째 아들만 분향을 했는데 그때 전 남편 고이즈미와 눈이 마주쳤단다. 가요코씨는 남편에 대해 좋게 말하지 절대로 비난하지 않는단다. 그를 용서한 것 같다. 셋째 아들 요시나가가 형들도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언젠가 아버지의 수석비서관에게 전화로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 수석비서관은

 

피는 이어져 있을지 몰라도 부자관계라 말할 수 없다.”

 

는 대답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또 어느 날 요시나가는 아버지가 하코네에서 휴가 중임을 알고 만나러 갔으나 아버지는 그를 문전박대해서 내쫓았단다. 핏줄조차 외면하는 고이즈미의 냉혈한 같은 면모가 드러난 장면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막내도 어머니처럼 아버지를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총리였던 아버지를 자랑하고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단다.

 

고이즈미 전 총리와 가요코씨는 30년 넘게 지금도 각각 독신으로 살고 있다.

 

2008년 고이즈미가 정계 은퇴하고 차남 신지로를 후계자로 세우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집안일은 모두 네게 맡긴다. 삼형제끼리 친하게 지내라.”고 말했다.

 

2013년 말 막내 요시나가의 결혼식 때 가족 다섯 명이 30년 만에 처음 만났다. 가요코씨는 말하기를,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만감이 교차했다... 30년간 두 아들의 얼굴을 한 번도 볼 수 없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사람과 인연을 소중히 여겨온 덕에 지금이 있는 것 같다.”

 

결혼, 출산, 육아, , 이혼은 모두 경험했는데 안 해본 것은 재혼뿐이라며 아들들에게 집안 문제나 일, 그 밖의 뭔가에 얽매이지 말고 한 번뿐인 인생이니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고이즈미 전 총리와 가요코씨 중에서 누구 편을 들거나 누구를 단죄할 수 있을까? 이 두 사람의 나이차이와 성격차이는 극복될 수 없는 것일까? 고이즈미가 아내에게 두 아들을 절대로 만나지 못하게 하고 자기 셋째 아들도 만나지 않을 만큼 아내를 냉혹하게 내쫓은 이유는 어머니에게 맹종해야 출세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그는 출세가 사랑과 자식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는 냉혈한이 아닐까? 36살인 고이즈미 전 총리가 22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의 아가씨와 교제도 해보지 않고 그를 만나자마자 청혼했을 만큼 사랑을 느꼈다면 끝까지 아내의 행복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이 부부는 스스로 이러한 행복을 버리고 서로와 자식들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혼당한 아내와 셋째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한단다.  부모가 서로 용서하고 가정을 지켰더라면 날마다 자식들과 함께 웃음이 그치지 않는 행복을 누리고 살았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기혼녀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분의 뜻을 물었다. 예수님이 그녀의 간음죄를 용서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면 그를 돌로 때려죽이라는 율법(신명 22,21-24)을 어기시게 된다. 또한 율법규정에 따라 그녀를 돌로 쳐 죽이라고 명하신다면 유다에서 사형집행권을 독점한 로마 총독과 알력관계를 자초하시게 된다. 예수님은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당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그녀를 볼모로 잡았음을 알고 계셨다. 그들은 간음한 그 여자가 회개했는지 회개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그를 단죄하기 위해 광분했던 것이다. 또한 그의 남편도 아내를 회개시켜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는커녕 그녀의 간음현장을 덮치게 하여 증인까지 확보한 것 같다.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시는 상징행동을 보이셨다그 뜻은 예레미야서에 제시된 대로 상징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희망이신 주님, 당신을 저버린 이는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당신에게서 돌아선 이는 땅에 새겨지리이다. 그들이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을 저버린 탓입니다.”(예레 17,13)

 

예수님은 간음한 여자를 단죄하려고 미처 날뛰는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이 성경 구절에서 말하는 이들과 같은 인간임을 위의 상징행동을 통해 드러내신 것이다.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상징행동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간음한 여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거듭 묻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각자 자기의 죄를 돌이켜보고 죄 없는 이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이르셨다.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 쓰셨는데, 이는 하느님이 심판주이시고 죄인의 죄를 먼지 속에 쓰신다는 뜻이다. 그러자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은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씩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리를 떴다.나이가 많을수록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여자를 용서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이르셨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을 미워하지 마라.”(세네카)

 

라는 식으로 간음녀의 죄와 그녀 자신을 구별하지 않으셨다. 세네카의 이 말은 죄의 지배를 받는 사회구조 속에서 불가피하게 이 구조의 희생이 되거나 죄를 짓는 경우에 적용될 것이다. 간음한 그 여자는 용서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어도 예수님이 무상으로 베푸시는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용서하기 위해 간음한 기혼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는 율법을 어겨 당대 집권층의 미움과 원한의 대상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웃을 용서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은(루카 6,27-36)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모욕하는 사형수와 당신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원수들을 용서하며 돌아가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당신 오른쪽에서 처형된 사형수가 회개하자 바로 그날 낙원으로 데려가셨다(루카 23,43).

 

예수님은 죄를 지어 하느님과 적대관계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과 화해시켜 그분을 다정스럽게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다가 영원한 기쁨의 세계에서 살게 되었다. 용서는 하느님의 생명을 누리기 위한 방법이다.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하느님께 회개하고 이웃을 용서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속죄 죽음이 보람있게 열매를 맺게 한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고맙다고 하며 하느님 아버지 대전에서 그들을  위해 변호해주신다. 이와 반대로 회개하지도 않고 이웃을 용서하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열매를 내지 못하고 무의미한 사건으로 전락시키려 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하느님 심판 대전에서 그들을 단죄하실 것이다.

 

 

우리는 고이즈미 전 총리 부부의 서글픈 가족사를 보고 출세보다 아내와 자식들이 더 중요함을 깨닫고 서로 용서해야 사람구실을 할 수 있음을 거듭 통감하게 된다. 이혼당한 가요코씨와 아버지에게서 내침을 받은 막내가 아버지를 용서한 것은 아직까지 출세를 위해 이 둘을 무시하는 이 아버지와 대조된다.

 

우리가 용서를 잘 못하는 이유는 성장과정에서 애정결핍이나 상처를 받아 원한이 무의식 층 속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웃을 미워할 경우 그것은 우리 자신 속에 있는 그의 모습을 미워하는 것이다.

 

자신 속에 없는 것은 절대로 자신을 흥분시키지 않는다.”(H. 헤세)

 

마음의 상처나 결점을 찾아내어 고치면 쉽게 용서할 힘을 얻는다.

 

상처받은 자존심은 용서할 줄 모른다.”(L. 뷔제)

 

우리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 자를 용서하기가 퍽 어렵다. 따라서 이웃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많은 이들 앞에서 그에게 창피를 주지 않도록 애써야 하겠다.

 

용서할 힘은 십자가 위에서 용서하며 돌아가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다. 그분을 본받아 원수들이 회개하기 전에도 그들을 용서함으로써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증언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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