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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록도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마리안느 수녀가 다시 오다(부할 제5주일)
   2016/04/23  13:46

소록도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마리안느 수녀가 다시 오다

(부활 제5주일)

 

 

요한복음 13,31-33.34-35

 

 

 

1962년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소록도에 와서 20051121까지 헌신적인 사랑으로 한센인을 돌본 오스트리아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82)가 지난 41311년 만에 다시 소록도에 왔다. 소록도는 의사와 간호사조차 문둥병자로 부르며 접촉을 꺼리던 한센인들의 땅이요 가난하고 척박하고 소외되고 고독한 죽음의 땅이었다. 한 하운의 보리피리가 들려온다.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人? 인간의 세계)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산하가 그 몇 해인가)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일제는 씨를 말리겠다.”고 소록도의 한센인들에게 낙태와 정관수술을 강요했다.또 그들에게 중노동을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강제노동을 시켰고, 죽은 이들 시신은 해부 실험에 썼다. 강제 정관수술과 임신중절 수술은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에도 재개돼 1990년 후까지 이어졌다. 80세가 넘은 피해자들은 최근 국가배상 소송 2심까지 모두 이겼다. 강제 단종斷種을 용케 피한 환자 부모와 건강한 아이는 생이별을 해야 했다.현재 소록도에서 균 양성자는 아홉 명 뿐이다. 신규 감염환자는 거의 없다. 혹시 걸려도 간단한 치료만 받으면 완치된다.

 

마리안느 수녀(1934)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그리스도왕국 시녀회' 재속회회원으로 1962년 2월 24일 소록도로 왔다. 1966년에는 이 대학에 다닐 때 같은 방을 썼든 친구 마가렛 피사렛(81)수녀도 뒤따라 왔다. 마리안느 수녀는 키가 178센티미터쯤이고, 마가렛 수녀는 호리호리했다. 두 사람은 섬에 발을 디딘 후 하루도 빠짐없이 마리안느 & 마가레트라는 명찰이 붙은 방에서 환자를 보살폈다. 금발의 20대 후반 수녀들은 썩어가고 피부가 문드러진 환자들의 상처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맨손으로 약을 발라줬다.

 

저런, 맨손으로 상처를 만지면 어떡혀? 전염되버러.”

 

두 수녀는 들은 척 만척하며 맨손으로 한센인들의 피고름을 짜내고 상처를 소독해주며 한센인 6천여 명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의료진과 주변사람들이 말렸다. 그 당시 병원장이었던 조 창원 씨는 고백하기를

 

나는 명색이 의사인데 너무 부끄러웠다. 그전까지 우리 병원 사람들은 마스크에 고무장갑을 끼고, 고무장화 신고 완전무장하고 나서야 환자들을 치료하곤 했거든...”

 

그 의사는 수녀들이 맨손으로 치료하는 것을 본 다음에도 병원사람들의 치료방법은 바뀌지 않았다며 부끄러워했다.

 

이 두 수녀는 3평 남짓의 단칸방에서 작은 옷장 하나만 가지고 살았다.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전라도 할매가 되기까지 간호에 전념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오늘 아프리카처럼 너무나 가난해 굶어죽는 이들이 많았을 때였다. 고국에 수천 통의 편지를 써서 약품과 필요한 것들을 지원받고 병원을 현대식으로 짓는 데 보탰다. 더럽고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에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손을 내미는 한센인들의 손을 잡아주며 청춘을 다 보낸 그 긴 세월 필요한 모든 돈을 오스트리아 본원수녀원에서 가져다 쓰고,수고비라곤 한 푼도 받지 않고 헌신했다. 설상가상 마리안느 수녀는 대장암으로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다. 그렇게 439개월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일흔이 넘어 20051122일에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떠납니다. 이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왔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습니다.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이 편지 한 장을 남겨두고 안개가 자욱한 첫 새벽에 노를 저어 군산으로 와서 완행열차를 타고 고국으로 떠났다. 소리 없이 떠나는 길에는 439개월 전에 들고 왔던 작은 가죽가방만 하나, 세월의 풍상 속에 헤어지고 달아빠져 걸레처럼 된 그 가죽가방만 달랑 손에 쥐어 있었다. 두 수녀는 떠나는 날 멀어지는 소록도와 집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귀국 후에도 수녀원에서 3평 남짓한 방에 살면서 소록도가 그리워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밤마다 소록도의 꿈을 꾼단다.소록도 할매수녀들이 머물렀던 사택 앞에는 그들이 평생 새겼던 문구가 지금도 남아 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라.”

 

국립소록도병원과 소록도성당과 고흥군청은 올해 517일 병원 개원 100주년 행사에 두 수녀를 초청했다. 그러나 마가렛 수녀는 치매 치료를 위해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어 오지 못했다. 마리안느 수녀만 82세의 고령에 지난 41311년 만에 다시 소록도로 왔다. 마리안느 수녀는 옛날처럼 성당 옆 낡은 숙소에 있는 작은 방에서 아침저녁으로 묵상을 하고, 낮에는 한센인 120여 명의 손을 꼭 잡으며 보고 싶었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한센인들은 백발이 성성한 할매를 끌어안고 꿈만 같다며 할매 보고 싶었어.”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마리안느 수녀가

 

자기 무릎에다 (상처부위를) 올려놓고 치료를 다해 주고, 입으로까지 빨아서 피고름을 짜내며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고 옛 날 헌신적인 마리안느 수녀의 모습을 기억했다.

 

사단법인 마리안느마가렛은 두 수녀의 삶을 재조명하는 12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말쯤 상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두 수녀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마리안느 수녀는 다음 달 소록도병원 100주년 행사를 지켜본 뒤 다시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간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렛 수녀는 이 예수님의 명을 충실히 지키려 혼신의 힘을 다 기울인 것 같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의 사랑을 소록도에서 유감없이 베풀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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