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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와 말씀을 함께 모셔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체험을 한다(성체 성혈 대축일)
   2015/06/06  8:49

성체와 말씀을 함께 모셔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체험을 한다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마르코복음 14,12-16.22-26

 

말 속에는 무한한 창조력과 힘과 놀라운 신비가 숨겨져 있다. 우리는 이러한 말의 열매를 먹고 산다. 선한 말에는 선한 힘이 작용하고 악한 말에는 악성 바이러스가 침투한다. 말의 파동은 전자파보다 3,300배나 더 강력하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나는 행복해.” 하고 말하면 진짜 행복해진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로 인생을 역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말에는 약도 있고 독도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계속 자기가 아프다는 말을 하면 병이 든다는 것이다. 지금 병이 든 사람도 자기가 건강하다는 말을 자주 하면 건강해진다. 자기가 한 말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말에 맛이 있어서 우리는 밥맛 나게 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밥맛 떨어지는 말을 하기도 한다. 감칠맛 나는 말을 하는 이는 감칠맛 나는 사람이 되어 어디서나 환대와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입맛 떨어지는 말을 하는 이는 입맛 떨어지는 인간이 되어 어디서나 불청객이 되고 만다. 이처럼 남을 향해 쏘아올린 비난의 화살이 자신의 가슴에 명중된다. 누군가를 욕하는 것은 제 몸과 마음속에 오물을 담는 것과 비슷하다. 말에는 메아리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메아리는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자기에게 되돌아온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말이, 나쁜 말을 하면 나쁜 말이 되돌아온다.

욕설은 한꺼번에 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욕을 먹는 사람, 욕을 전하는 사람, 그러나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는 사람은 욕설을 퍼부은 그 사람 자신이다.”(M. 고르키)

법의 단죄보다 더 무거운 형벌은 욕 때문에 이미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그 사람의 인간성이다. 불행은 불평 때문에 생겨난다. 불평이 많은 사람은 원인 모를 병으로 빨리 죽어버린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보고 싶어요.”

하는 말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힘과 용기와 의욕을 심어주고 살맛나게 해준다. 오래 전부터 당신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는 고백, 이 말을 수시로 되새기면 고달픈 삶도 기쁨으로 넘쳐난다. 우리는 말 한 마디로 이웃을 따뜻하게 감싸주기도 하고 이웃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한다. 말에 온도가 있어서 화끈한 말로 분위기를 화끈하게, 썰렁한 말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유머는 이혼율을 반으로, 노사관계를 3분의 1, 자살률을 5분의 1로 줄여준다고 한다. 말은 칼을 한번 휘두르는 것 보다 더 깊이 찌르고,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 간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칼이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혀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

우리가 하는 말이 이처럼 크나큰 힘이 있다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인간의 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힘이 있고 반드시 실현된다. 예수님은 언행일치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피조물이 만들어지기 전 영원으로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말씀이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립되거나 자신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말씀으로서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시는 분이다.

말씀은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요한 1,2)

하느님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말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이 있다.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 1,3)

이러한 말씀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다. 말씀은 불사불멸하시는 하느님이신 말씀이 사멸하고 마는 연약한 이 지상의 인간조건을 가지고 우리와 함께 사신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베푸신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그리스도의 말씀은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한다. 예컨대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송장냄새가 물신 나는 라자로의 시체를 한 마디 말씀으로 일으켜 세우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오너라.”(요한 11,43)

이 말씀을 무덤 속에 누워 있는 라자로에게 듣게 하시어 그를 일으켜 세우셨다. 예수님의 목소리에는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힘이 실렸던 것이다.

, 그것으로 말미암아 죽은 이가 무덤에서 불려 나오고, 산 이가 묻힐 수도 있다.”(H. 하이네)

이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분의 영원불변하는 본성을 드러낸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말지만 그분의 말씀은 영원히 유효한 진리다. 그리스도께서 최후만찬 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계약의 피다.”

하신 말씀도 성령의 힘으로 밀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하게 한다. 예수님이 빵과 포도주 안에 현존하신다는 근거는 그분의 말씀이 영원불변의 진리로서 반드시 실현된다는 데 있다. 빵과 포도주 안에 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은 거룩하게 되어 그분을 닮는다. 말씀이 우리를 제2그리스도로 만든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당신 목숨을 희생하셨다는 말씀을 들으면, 우리 마음은 그분의 사랑으로 가득 찬다. 하느님이 오늘 이 순간까지 우리를 보살펴주고 계신다는 말씀을 들으면, 우리 마음속에 감사의 정이 솟아오른다.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서 나쁜 생각과 갈등과 미움과 불의와 불신을 없애고 착한 생각과 조화와 사랑과 정의와 믿음을 만들어낸다. 마음이 비좁은 사람은 모순과 불의를 소화시키지 못해 병들고 만다.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은 온갖 모순을 조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같고 작은 우주라고 하는 것이다. “바다보다도 큰 것은 하늘이요, 하늘보다도 큰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V. 위고) 이처럼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실 때 받는 엄청난 선물은 하느님과 모든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마음이다. 말씀을 들으면 사랑의 불꽃이 우리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른다.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작은 씨앗을 하나 받아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고 예수님을 닮는다(루카 4, 20).

영성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에 열을 올리지 않고 남의 말을 먼저 듣는다. 그는 같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한다. 영성체 때 말씀이신 예수님을 모시는 사람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나 죽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죽는 소리를 하면 천하장사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는 활기 있게, 솔직하게 진실하게 말한다. 영성체를 잘 하는 사람은 남을 칭찬하고 사랑하는 말을 자주 하여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

들은 귀는 천년이요 말한 입은 사흘이다. 들은 귀는 들은 것을 천년동안 기억하지만 말한 입은 사흘도 못가 말한 것을 잊어버리고 만다는 뜻이다. 나는 바닷가 모래위에 글씨를 쓰듯 말하지만 듣는 사람은 쇠 철판에 글씨를 새기듯 들을 때가 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며 성체를 받아 모셔야 이 말씀이 무에서 유를,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하고 우리를 제2그리스도로 만들어준다. 매 순간 숨을 쉬듯이, 언제나 어디서나 말씀을 모시고 다니자. 그러면 우리가 말씀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고 말할 만큼 우리의 존재이유를 충만하게 실현하게 된다. 신분이 높은 사람을 만나려면 한 시간만 있으면 되고,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하루만 지나면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우리가 잊기 위해 평생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평생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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