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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7일 목요일

[(백)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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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벳 성녀는 1207년 헝가리에서 공주로 태어났다. 남부럽지 않게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참회와 고행의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엘리사벳은 남편이 전쟁으로 사망하자 재속프란치스코회에 가입하여 기도 생활과 자선 활동에 전념하였다. 1231년 스물다섯의 이른 나이에 선종한 그녀는 자선 사업의 수호성인으로, 재속프란치스코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마태 25,34.36.4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오너라. 너희는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가장 작은 내 형제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하느님, 복된 엘리사벳에게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공경하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요한 사도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이 일곱번 봉인된 두루마리를 들고 계신 것을 보고, 살해된 어린양이신 주님께서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다고 노래하는 것을 듣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고,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하며 우신다(복음).
<어린양은 살해되시고, 자신의 피로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셨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5,1-10
나 요한은 1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2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큰 소리로,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러나 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4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5 그런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6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7 그 어린양이 나오시어,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 8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가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수금과, 또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살해되시고, 또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10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49,1ㄴㄷ-2.3-4.5-6ㄱ과 9ㄴ(◎ 묵시 5,10 참조)
◎ 주님은 우리가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
시편 95(94),7.8
◎ 알렐루야.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알렐루야.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성자의 무한하신 사랑의 업적을 기리며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복된 엘리사벳을 본받아, 주님과 이웃을 더욱 열심히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요한 15,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거룩한 신비로 힘을 얻고 비오니, 복된 엘리사벳을 본받아,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백성을 힘껏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십니다. 복음서 어디를 보아도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말은 없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대목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눈물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바로 하느님의 눈물입니다. 
예루살렘은 ‘평화(히브리어 살렘)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계약의 궤를 이곳에 모셔 온 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 곧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의 의미가 무색하게도 하느님에 대한 배반과 무관심은 계속 반복되고, 이 죄를 예언자들이 거듭 경고했지만, 기원전 6세기에 결국 이스라엘은 바빌론에 의해 함락되고 유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다시 이 도시에 예수님께서 평화와 구원을 가져오시려고 입성하시건만, 정작 예루살렘은 메시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에 대한 안타까움에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쏟아 내십니다.
나환우들의 섬인 소록도에 있는 성당 제대 뒷면에는 하느님의 눈물을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자그마한 섬 소록도 위에 온통 붕대로 칭칭 감은 십자가가 커다랗게 서 있고, 그 바다와 섬과 십자가 위로 주먹만 한 크기의 하느님의 눈물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나환우들의 아픔과 고통을 당사자들보다 더 처참하게 가슴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눈물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대가로 하느님께서 치르시는 처절한 고통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