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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녹)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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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8(67),6-7.36 참조
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한마음으로 모인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며, 성령의 힘으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친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다고 분개하는 군중에게,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며, 위선자들이라고 질책하신다(복음).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2-17
12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68(67),2와 4.6-7ㄱㄴ.20-21(◎ 21ㄱㄴ)
◎ 우리 하느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
○ 하느님이 일어나시니, 그분의 적들은 흩어지고, 원수들은 그 앞에서 도망치네. 의인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리라. 하느님 앞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
○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 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외로운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사로잡힌 이들을 행복으로 이끄시네. ◎
○ 주님은 날마다 찬미받으소서. 우리 짐을 지시는 하느님은 우리 구원이시다. 우리 하느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 주 하느님께 있네. ◎
요한 17,1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
◎ 알렐루야.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안식일일지라도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10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12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15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17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 주신 예물을 바치오니, 이 거룩한 제사를 받아들이시고,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힘으로, 저희가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 마침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시편 103(102),2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성체를 받아 모시며 언제나 성자의 수난을 기념하오니, 성자께서 극진한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이 선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히 병을 고치는 치료의 의미를 넘어,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허리가 굽어 병고에 시달리던 여인은, 예수님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가진 장애는 단순한 육체적 어려움만이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회당에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데도 늘 소외를 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가까이 부르시고, 손을 얹어 치유해 주시고,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불러 그녀의 육체뿐만 아니라 인격까지도 온전히 되돌려 주십니다.
반면 회당장은 사회적 종교적 명성이 높았음에도 마음이 굽어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의 굽은 마음은 여인의 굽은 허리보다 더 딱딱해서 예수님의 치유를 오히려 율법의 잣대로 판단합니다. 겉은 멀쩡한 그가 오히려 예수님께 “위선자”라는 질책을 받는 이유입니다.
인간의 고통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른 이가 고통을 겪을 때는 단순한 하나의 현상으로 보이지만, 내가 고통을 겪을 때는 그 고통이 내 인격 전체를 위협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예수님의 눈은 바로 우리 존재 자체를 괴롭히는 그 고통을 꿰뚫어 보시며, 우리가 온전히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연민과 공감의 마음입니다. 허리가 굽은 외적인 고통은 예수님의 치유의 대상이 되지만, 마음이 딱딱하게 굽은 것은 하느님의 자비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