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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3년 교구장 성탄 담화문
   2023/12/25  9:36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마태 1,23)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참된 메시아로 오신 오늘을 교구민 모두와 함께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올 한 해 ‘친교의 해’를 살아간 우리 교구는 저 하늘의 하느님과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하나 되는 성탄의 신비를 친교의 절정이자 핵심으로 맞이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친교는 예수님 안에 우리 모두가 한 몸이 되는 ‘그리스도의 신비체’(1코린 10,16; 콜로 1,18)를 향해 꾸준히,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성탄의 시간에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 안에 어떻게 육화하고 있는지 자문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의 자리를 당신의 자리로 여기시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보다 가난하고 보다 소외된 이들의 삶을 형제적 사랑과 친교로써 함께 어루만지고 보듬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세상은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소홀히 여겨 관계의 단절과 극한 대립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한 해는 국내외적으로 전쟁과 대립으로 어려운 해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뉴스는 이른바 거대 담론의 이야기만 흘러나옵니다. 세상 지도자들의 권력욕과 정치적 야심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 속에 일상을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과 작은 이들은 늘 소외되고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의 전쟁과 다툼으로 죽어가고 상처받는 서민들은 역사 속에 묻혀 그 존재의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베들레헴의 외진 곳에 오신 이유는 세상을 호령하던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총독들의 권력 다툼과 야심 뒤편에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었던 소시민의 상처와 슬픔에 함께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한줌 권력과 욕심으로 얼룩지게 만드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오늘도 우리 삶 곳곳에 횡행합니다. 작은 이들을 귀히 여기고(마태 18,10), 가난한 이들을 업신여기지 않으며(야고 2,1-5), 보잘것없는 이들을 하느님처럼 여기는 우리의 마음(마태 25,31-46)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그리스도인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비단 인간을 향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피조물을 향한 회개의 마음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기후 위기에 따른 생태적 회개는 시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너무 더디게 진행됩니다. 삶의 여유를 지닌 이들에게 기후 위기는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지만, 가난으로 생계의 어려움 속에 갇힌 이들이나, 생태계 사슬의 최하층에 존재하는 생명들에게 기후 위기는 생존 위기로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수없이 생산되는 물건들과, 그것을 허투루 사용하거나 사용하지도 않고 버려지는 수많은 생산품들, 그리고 성장과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난개발 등이 자연 생태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리로 직접 선택하신 이 세상의 뭇 생명들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짓밟는 안타까운 일임을 우리 모두는 자각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은, 뭇 생명들이 각자 제 종류대로 서로를 향해, 서로를 위해, 서로 함께 조화를 이루기 때문입니다(창세 1,25).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11월 19일 ‘제7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그분 사랑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위한 선물이 되라고 부름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오늘, 우리 모두는 세상 모든 생명체 안에서 서로를 위한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앞두고 다시 맞는 성탄의 시간은 대립과 갈등의 세상을 친교와 화해의 자리로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숙제를 남깁니다. 세상이 서로를 미워하고 다투며 그것으로 아파할수록 우리의 친교와 화해는 더욱 간절하고 위대합니다. 오늘 우리 삶 한가운데 오신 하느님을 믿고 따르며 세상의 모든 아픔을 함께 나누는 친교의 삶을 더욱 열심히 살아가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큰 기쁨과 축복이 우리 교구민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2023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