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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부제 사제 서품미사 강론)
   2022/12/22  16:39

부제 사제 서품미사

 

2022. 12. 21.(수) 주교좌 범어대성당

 

오늘 이 미사 중에 일곱 명의 신학생들이 부제품을 받고, 일곱 명의 부제님들이 사제품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강복하시어 많은 은총 내려 주시길 빕니다.

 

오늘 제2독서(사도 6,1-7)는, 초대교회의 신자 공동체가 커지자 열두 사도들이 자신들과 공동체를 도울 일곱 사람들을 뽑아서 기도하고 안수하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뽑힌 일곱 사람들이 최초의 부제들입니다. 마침 오늘 부제품을 받는 사람들도 일곱 사람입니다.

부제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 안에서 사람들에게 식량 배급을 하는 데 문제들이 생기고 그때마다 사도들이 그 일에 매달리다 보니 정작 중요한 기도와 말씀 봉사에는 소홀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념을 하고, 식탁 봉사와 식량 배급 일은 일곱 명의 조력자를 뽑아서 맡기도록 한 것이 오늘 들은 사도행전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스테파노와 필리포스는 단순히 식탁 봉사만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설파했으며, 스테파노는 그러다가 유다인들의 미움을 사서 돌에 맞아 죽는, 초대교회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부제도 단순히 장차 사제가 되기 위한 전 단계로서 신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사제나 주교를 도와 제대 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하느님 백성 속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사야서 61,1-3 말씀을 봉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예언서의 이 구절을 읽으시고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그 예언을 예수님 당신께서 실행하러 왔다, 다시 말해서 성부께서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이 사제 서품식 때 독서 구절로 잘 선택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사제들도 예수님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여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여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12,24-26)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

이 말씀은 사람들 입에 많이 회자되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나 여러분들이나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잘 알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말씀을 잘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년에 영화를 한두 편 보기도 힘든데, 최근 한 달 사이에 무려 세 편의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돈도 안 내고, 시사회를 통해서 공짜로 보게 되었습니다. ‘탄생’, ‘이태석’, ‘영웅’이 그것입니다.

‘탄생’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일대기입니다. 1년 전 겨울에 남산동에 있는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서 며칠 동안 찍었던 영화입니다. 많은 분들이 보셨을 텐데, 런닝타임이 두 시간 반이라 좀 길다고 느껴지는 분들이 더러 계시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화 ‘이태석’은 사제가 되자마자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라는 곳으로 가서 9년 동안 사제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봉사를 하다가 돌아가신 이태석 요한 신부님의 이야기를 수단어린이장학회와 살레시오 수도원이 공동 제작한 다큐영화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다큐 영화와 책들이 나왔습니다만, 새로운 감동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영화 ‘영웅’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년 전 가을에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 교구 평신도 임원들과 함께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벌였던 중국 하얼빈과, 5개월 동안 마지막 생을 보냈던 여순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저께 영화 ‘영웅’을 보면서 그때의 비장함과 감동이 밀려왔었습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편지가 가슴을 울렸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다 아시겠지만, 항소하지 말고 조국을 위해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어머니가 자식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이 세 영화의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짧은 생애를 불꽃처럼 살았다는 것이고, 하나의 밀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은 하나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서품을 받는 신학생들과 부제님들, 그리고 우리 모든 신부님들이 이분들의 후예인 것입니다.

영화 ‘울지 마, 톤즈’였던 것 같은데, 그 영화를 보면, 이태석 신부님이 아프리카에서 우리나라에 와서 수술을 하고 투병생활을 하면서 어느 날 후원회원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번에 또 다른 ‘이태석’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 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성 김대건 신부님이나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 그리고 이태석 신부님이나 안중근 의사도 이 ‘열애’라는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자신의 생명이 다하도록 불꽃을 태웠던 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12월 8일에 충남 솔뫼성지에서 유흥식 추기경님 서임 감사미사가 있어서 갔다 왔습니다. 추기경께서 강론 때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작년 여름에 교황청 성직자성의 장관을 맡으면 좋겠다는 교황님의 부르심을 받고 로마에 가셨는데, 그때 유추기경께서 교황님께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하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교황께서 “십자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십자가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지요? 십자가는 죽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과 같이 땅에 묻혀서 썩는 것입니다. 서품식 때 안수하기 전에 성인호칭기도를 바치는데, 서품 받을 당사자들은 땅에 완전히 엎드립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가장 낮은 사람으로서 하느님과 백성을 섬기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니까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것이며, 성모님과 모든 성인성녀들께서 도와주시도록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10월 24일에 로마에서 유학하는 신학생들과 사제들이 ‘바오로 6세 홀’에 모여 교황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교황님께서는 일부 사제들이 추구하는 안락함과 출세주의에 대하여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결국 봉사자가 아니라 배신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도 교황님께서는 세속주의의 위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만, 이것은 성직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학교와 교구에서 거의 10여 년 동안 양성을 받고 부제가 되고 사제가 되지만, 우리 모두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세상의 온갖 유혹을 떨쳐버리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여러 교우들께서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사제와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 성녀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