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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한국전쟁 정전 70주년과 호국영령을 위한 미사 강론)
   2023/07/03  11:21

한국전쟁 정전 70주년과 호국영령을 위한 미사

 

2023. 06. 30. 다부동전적기념관

 

지난 주일이 6월 25일로서 73년 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전국의 천주교 성당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미사’를 드렸습니다.

6월이 교회 안에서는 ‘예수성심성월’이지만 국가적으로는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던 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보답하자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군종후원회 주관으로 6.25 한국전쟁 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의 하나인 ‘다부동 전투’가 벌어졌던 이곳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한국전쟁 정전 70주년과 호국영령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1950년 6월 25일, 그날도 주일이었습니다. 주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이 갑자기 남침을 감행하였습니다. 그 당시 남한은 전혀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되었습니다. 북한군은 그로부터 불과 한 달여 만에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김일성은 8월 15일까지 대구와 부산을 점령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없어지든지, 아니면 제주도만 남게 되든지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UN의 결의에 의해서 급하게 한국에 파병되었던 미8군의 사령관 워커 장군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며 마산, 왜관, 영덕을 잇는 낙동강 방어선, 일명 워커 라인을 긋고 결전의 의지를 다졌던 것입니다.

낙동강 방어선 중에서 칠곡 다부동 일대는 대구를 공격하려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백선엽 장군이 지휘하는 국군 제1사단이 맡았는데, 한국전쟁 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이곳이 무너지면 대구에 적의 포탄이 떨어지고 낙동강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장병들이 목숨을 바쳐 사수하였던 것입니다.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무려 55일간 다부동 일대의 몇몇 고지를 두고 빼앗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수없이 했던 것입니다. 영화 ‘고지전’이나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셨나요? 그 영화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다부동 전투를 비롯하여 낙동강 방어선에서 버티어주었기 때문에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고 서울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북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개입하게 되어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하게 되는데 이것을 ‘1.4후퇴’라고 합니다. 왜 ‘1.4후퇴’라고 합니까? 흥남철수작전이 언제였습니까?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12월 14일부터 한 열흘간 군인들을 철수시키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피난민들까지 배로 철수하였던 것입니다. 1951년 1월 4일은 서울을 다시 북한군과 중국군한테 내어준 날이기 때문에 1.4후퇴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이나 수도를 적군에게 내어줬던 것입니다. 평택, 오산까지 후퇴하였다가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밀고 올라가 지금의 휴전선 가까이에서 2년 동안 지루한 공방전을 벌이다가 결국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을 맺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칠곡 왜관에 있는 성 베네딕도 수도원이 1952년에 우리 교구의 최덕홍 요한 주교님의 도움으로 왜관에 자리를 잡기 전에는 북한의 함경남도 원산 근교의 덕원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베네딕도 수도원이 1909년에 독일에서 한국으로 진출하였는데, 처음에는 서울 백동(지금의 혜화동)에 있다가 서울교구에 물려주고 함경도 선교를 위해 덕원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함경도와 중국 연길까지 사목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 후에 중국과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6.25 한국전쟁 전후로 많은 신부님들과 수도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칠곡 왜관에 가면 ‘구상문학관’이 있습니다. 구상 선생님도 원래는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는데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교육사업에 종사하던 부친을 따라 원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시에 대한 공산당의 검열이 심해지자 1947년에 월남을 하였고 6.25 전쟁이 터지자 다시 대구로 피난 와서 살았습니다. 대구에 와서 낸 첫 시집 제목이 ‘구상’이었습니다. 시집 속표지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북한의 공산당들이 2년 전에 납치하였다가 이제는 그만 순교하였을 나의 오직 하나의 형 대준 신부의 이름으로 이 시집을 올리나이다.”

여기서 형 대준 신부는 구상 선생님의 형님인 구대준 가브리엘 신부님을 말하는데, 구상 선생님의 원래 이름도 ‘구상준’입니다. 구상은 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대준 신부님은 1942년부터 흥남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계셨는데 1949년 여름에 북한군 보위부에 끌려가 그 길로 행방불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구대준 신부님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 남한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성당이나 수도원을 지키고 계시다가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행불이 되거나 총살되었던 분들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베네딕토 수도원에서는 그 중의 38분을 시복 추진 중에 있습니다.

구상 선생님은 1955년부터 한 20여 년간은 왜관에서 살았습니다. 부인이 의사이신데 왜관에서 ‘순심의원’을 개원하고 있었습니다.

구상 시 중에 ‘焦土의 詩’라는 연작이 있는데 1956년에 시집으로 출판하였고 이중섭 화가가 표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두 사람이 한 때 원산사범학교 교사를 하였기 때문에 젊을 때부터 서로 잘 알고 있었고 친하게 지냈던 것입니다.

‘초토의 시 10’을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焦土’란 말은 ‘불에 검게 타버린 땅’이라는 말입니다. 지금도 ‘초토가 되었다’는 말을 쓰지요.

 

“조국아, 심청이 마냥 불쌍하기만 한 너로구나.

시인이 너의 이름을 부를 양이면 목이 멘다.

(중략)

조국아, 거리엔 희망도 절망도 못하는

백성들이 나날이 환장해만 가고

너의 원수와 그 원수를 기르는 벗들은

너를 또 다시 두 동강을 내려는데

너는 오직 생각하며 쓰러져가는 갈대더냐.

원혼의 나라 조국아,

너를 이제까지 지켜온 것은 비명뿐이었지.

여기 또 다시 너의 마지막 맥박인 듯

어리고 헐벗은 형제들만이 북으로 발을 구르는데

먼저 간 넋을 풀어줄 노래 하나 없구나.

조국아, 심청이 마냥 불쌍하기만 한 조국아!”

 

구상 선생님은 이 시에서, 전쟁으로 국토가 초토가 되었고 휴전으로 분단이 고착되는 조국을 ‘심청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바친 심청이처럼 조국도 전쟁을 끝내기 위해 국토를 남북으로 두 동강 내는 희생을 치르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올해로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동안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좋아진 것이 있습니까? 남과 북이라는 분단 상태는 더욱 고착되었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가 아니라 더욱 심한 대립과 갈등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의 제안으로 밤 9시가 되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주모경을 바치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잘 바치고 계십니까?

이번 주 교구 주보를 보니까, 우리 교구 민족화해위원장인 이기수 비오 신부님의 강론이 실려있었는데, 제목이 무엇이냐 하면, ‘기도하기 지겹다. 통일해라!’입니다. 왜 이런 제목을 달았는지 의도를 아시겠지요?

오늘 독서와 복음은 기도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내용들입니다. 성경 말씀처럼 우리는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남북한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머니가 같다는 뜻이라면서 희망을 가지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매일 저녁 묵주기도를 바치며 이 땅의 평화를 위한 지향을 늘 함께 가지고 기도합니다.

오늘 한국전쟁 정전 70주년과 호국영령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서 나라와 또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분들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다시는 6.25 한국전쟁과 같은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 살아있는 우리가 함께 잘 대비하고 기도하며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