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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베트의 만찬 (4대리구 한마음 축제 미사 강론)
   2023/07/10  10:49

4대리구 한마음 축제 미사

 

2023. 07. 08.(토) 10:30 포항실내체육관

 

찬미 예수님!

제가 한 10여 년 만에 ‘4대리구 한마음 축제 미사’를 집전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지난 몇 년간은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이었는데, 다들 살아남으셔서 축하드립니다.

 

우리 교구는 10년 장기 사목 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말씀, 친교, 전례, 이웃사랑, 선교라는 교회의 다섯 가지 핵심 가치를 매 2년씩 중점적으로 살아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2년간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라는 슬로건 아래 ‘말씀의 해’를 살았고, 올해부터 2년간은 ‘친교로 하나 되어’라는 슬로건으로 ‘친교의 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과의 친교, 이웃과의 친교, 피조물과의 친교를 잘 이룰 수 있도록 친교의 가치를 더욱 깊이 깨닫고 친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오늘 개최하는 ‘4대리구 한마음 축제’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위축되었던 신앙생활을 다시 활성화하고, 우리 모두가 친교의 삶을 삶으로써 이 세상의 구원의 표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축제의 주제를 ‘친교로 하나 되는 신앙 공동체’로 지은 것 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로 사도행전 2,42-47을 봉독하였는데 이렇게 시작합니다. “형제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42)

이 말씀처럼 오늘 제1독서 내용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쇄신이나 이상적인 교회 모습을 이야기할 때, 초대교회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 그 모습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한마음 축제도 그런 노력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돌아오는 7월 27일은 ‘6.25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지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구 군종후원회 주관으로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지 올해로 78년이 되었으며,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휴전협정을 한 지가 또한 7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북 관계나 한반도 정세가 나아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남북의 분단 상황은 더욱 고착화되는 것 같고, 대립과 갈등 구조는 더욱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2주 전 교구 주보 강론을 보니까 우리 교구 민족화해위원장인 이기수 신부님이 쓴 강론이 실렸었는데, 제목이 무엇이냐 하면, ‘기도하기 지겹다. 통일해라.’였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70년 동안 기도했는데 통일은 안 되고 맨날 싸우니까 나올 법한 말이라 생각됩니다.

하여튼 우리는 언제 하나가 될까요? 아득하게만 느껴지지만, 그래도 우리는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라도 하나 되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17,20-26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드렸던 마지막 기도 중의 일부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20-21)

예수님의 이 기도처럼 우리는 하나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 부부, 우리 가정은 하나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가 속한 단체, 우리 본당은 하나가 되고 있습니까? 되돌아보고 하나가 잘 되지 않는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자매님이 말하기를, 자기 남편이 하도 반찬 투정을 해서 학원에 다닌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이 ‘요리학원 다니냐?’고 물었더니, ‘아니요. 유도학원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남편이 반찬 투정을 하면 요리학원에 다녀야지, 유도학원에는 왜 다닙니까?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양보하고 내어놓고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친교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대림1주일에 발표했던 ‘친교의 해’ 사목교서에 ‘서로를 향해, 서로 함께, 서로를 위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진정한 친교는 ‘서로를 향해, 서로 함께, 서로를 위해’ 존재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여 받아 모시는데, 그것을 ‘영성체’라고 합니다. 영성체를 라틴어로 ‘Communio’라고 합니다. 그런데 친교도 라틴어로 ‘Communio’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성체, 즉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주님과 친교를 이루고 하나가 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성체성사, 즉 영성체야말로 친교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96년에 나온 덴마크 영화인데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 영화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바베트라는 여성이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해 덴마크의 어느 조그만 해변 마을에 도착하였는데, 마을 교회에서 평생 동안 목회하다가 세상을 떠난 루터교 목사님의 딸로서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경건하게 살면서 마을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이끌던 두 자매의 집에 들어가 10년이 넘도록 무보수로 밥하고 청소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에 바베트는 파리에 있는 친구를 통해 매달 복권을 샀는데, 어느 날 그것이 당첨이 되어 큰 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돈을 어디에 썼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이 세상에서 최고의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베트는 식재료를 프랑스에서 배로 싣고 와서 온갖 요리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하였습니다. 그녀는 원래 파리에서 제일 잘 나가는 유명한 레스토랑의 수석 요리사였던 것입니다.

10여 년 전에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두 딸의 노력과 모범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서로 흉을 보고 비난하고 갈라져서 서로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바베트가 내놓은 최상의 요리를 먹으면서 서로 말을 하고 용서를 빌며 서로를 쳐다보고 웃고 화해하는 모습들을 보였던 것입니다. 바베트의 헌신과 나눔이 친교를 이룬 것입니다.

 

군위에 가면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에 추기경님의 어릴 적 시절을 보냈던 생가가 있고,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공원 입구에 추기경님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고, ‘서로 밥이 되어 주십시오’ 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밥이 안 되려고 합니다. 오히려 ‘네가 내 밥이다.’하며 남의 밥그릇까지 빼앗으려 합니다. 우리는 서로 밥이 되어주고 서로 밥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친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한 아버지를 모신 같은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