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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피조물과의 친교 (2023년 농민주일 미사 강론)
   2023/07/18  17:33

2023년 농민주일 미사

 

2023. 07. 16. 연중 제15주일, 고령 백산공소

 

 

지난 며칠 동안 우리나라에 많은 비가 내려 곳곳에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비가 며칠 더 온다고 하니까 걱정이 됩니다만, 더 이상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은 연중 제15주일이며 ‘농민주일’입니다. 한국천주교회는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지내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감사를 드리며 도시와 농촌이 함께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맞게 살아가도록 하자는 뜻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3년 전에는 영천 자천공소를 방문하였고 재작년에는 청도 동곡공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경산 와촌공소를 방문하였고 올해는 드디어 고령 백산공소를 방문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고령군에 공소가 10개 넘었는데 지금은 박곡공소, 백산공소, 덕곡공소, 운수공소 정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쌍림면에 있는 이 백산공소가 가장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이 공소 건물은 이찬현 신부님과 이종현 신부님의 모친께서 희사하셔서 지은 건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후 몇 번 수리하여 잘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용민 본당 신부님이 계실 때 이종흥 크리산도 몬시뇰께서 은퇴 후에 수년 간 매 주일 이곳에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그 후 강택규 신부님께서 몇 년 간 오셨고, 그 다음으로 현재 정인용 신부님께서 매 주일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시고 계십니다. 지난 세월 동안 공소 발전과 유지를 위해 힘쓰신 신부님들과 회장님들과 여러 교우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저도 공소 출신이며 농부의 아들입니다. 제 고향은 달성군 옥포면 강림2동인데 동네 어귀에 ‘강림공소’라는 공소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늘 부모님을 따라 그 공소에 다녔습니다. 일제 강점기 어느 때부터 외할아버님이 초대 공소회장을 하셨는데, 해방 후 한 때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호열자, 즉 콜레라 때문에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저희 아버님께서 공소회장을 이어받아서 1988년 논공본당이 설립될 때까지 40여 년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마다 형들과 동생들과 함께 공소에 가서 아버님이 이끄시는 공소예절에 참여했으며 아버님의 강론을 들으며 자랐던 것입니다.

우리 집은 농사가 많았습니다. 농사는 주로 논농사였지만 사과 과수원도 하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년 내내 바빴습니다.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이 되면 학교 다니던 자식들도 일찍 나와서 거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바쁜 농사철이라도 온 식구가 큰방에 모여서 아침저녁으로 바치던 조과, 만과를 한 번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23년 전에 86세로 하느님 나라에 가셨고 어머님은 10년 전에 96세로 하느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농사를 지으셨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러면서 농사가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땅을 잘 가꾸고 잘 지켜서 우리들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 잘 물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생명의 가치, 자연 생태의 가치를 살리고 지속 가능하고 더욱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자신이 하시는 일에 긍지와 소중함을 가지시고 더욱 기쁘고 보람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 교구주보에 우리 교구 생태환경 및 농어민사목부를 맡고 계시는 임성호 신부님께서 쓰신 강론이 실려있는데 제목이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예수님의 원래 직업이 무엇이었느냐고 굳이 묻는다면, 양부이신 요셉 성인의 직업에 따라 목수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목수 일보다는 양 치는 목자나, 씨를 뿌리고 농사 일을 하는 농부에 대한 비유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농사 일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셨고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었던 복음말씀(마태 13,1-23)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졌고, 어떤 것들은 돌밭에 떨어졌고,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씨 뿌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씨는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땅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네 종류의 땅이 나오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내지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몸소 비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씨가 길에 떨어졌다는 것은 새들이나 짐승이 와서 주워 먹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돌밭에 떨어진 씨는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넘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시덥불에 떨어진 씨는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많아 숨이 막혀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이것이 제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 나라보다는 세상 재물이 먼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혼인잔치에 비유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어떤 임금이 당신 아들의 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밭으로 일하러 갔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오늘 이 미사에 안 나오고 밭으로 일하러 가신 분 안 계십니까?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겠지만 어느 때 무엇이 중요한지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초대하신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을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구는 ‘친교의 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친교, 이웃과의 친교, 피조물과의 친교를 살고 있습니다. 오늘 농민주일을 지내면서 피조물과의 친교를 가장 잘 살고 계시는 농민들의 수고를 기억하면서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잘 살고 우리 공동의 집인 이 지구를 잘 가꾸어 나가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