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교구장/보좌주교 > 교구장 말씀
제목 다 함께 사는 길 (예수부활대축일 미사 강론)
   2014/04/22  14:56

예수부활대축일


2014. 04. 20. 충효성당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어떤 소식을 우리가 소리 높여 전할 수 있겠습니까!’(성 아우구스티노). 부활 축하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가능해졌고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으며 모든 가치 체계가 바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참으로 기뻐하고 축하드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길 빕니다. 특히 지난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침몰 참사로 희생된 수많은 사상자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깊은 위로와 참된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복음(마태 28,1-10)에 보면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올 무렵에 무덤으로 달려갔는데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천사의 말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천지개벽할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스승께서 맥없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3년 동안 따라다니며 꿈을 키웠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예언하신 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부활로써 우리 인간에 대한 구원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대축일은 모든 축일 중의 축일이요, 모든 주일 중의 주일입니다. 성탄절이 예수님의 지상 탄생일이라면 부활절은 주님의 영원한 탄생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허무하게 고통과 죽음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일 년 중 가장 기쁜 축일이 바로 부활절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쁜 부활절을 맞이했지만 우리는 오늘 그리 기쁘지 않습니다. 온 나라가 초상집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어처구니없는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하지만 이런 일들은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이게 죄 많은 인간세상인가 봅니다. 

 21년 전에 서해 바다에서 훼리호? 전복사고가 일어나 29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리하게 정원을 초과하여 탔다가 전복되었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11년 전에는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로 19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하철 내부에 들어가서 불을 질러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동차 안에서 가스에 질식해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기관사가 기관차 전원을 켜는 키를 뽑아서 먼저 빠져나와 버렸기 때문에 전동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문을 열 수 없어서 희생자가 더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오전 전라도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에는 4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오늘 현재 174명이 구조되었고 302명이 죽거나 실종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배에는 46개의 구명보트가 실려 있었고 승객 전원이 타도 남을 양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구명보트 중에 펼쳐져서 사용된 보트는 단 하나였고 그 보트에는 선장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니까, 선원들 24명 중에 선박과 관련된 선원, 즉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기관장, 기사, 조기장, 조수 등이 총 15명이라고 하는데 그들 15명 전원은 탈출하여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단 한 사람도 실종되거나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무원과 조리사 몇 사람만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안전 불감증을 넘어서서 인간성 상실이고 말세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해난사고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선장은 에드워드 스미스였습니다. 그는 침몰 당시 끝까지 승객 탈출을 돕고 자신은 배와 함께 마지막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그의 고향인 영국의 리치필드에는 그의 영웅적 행동을 기리기 위해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동상 앞에는 ‘Be British’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영국인다워라’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 ‘한국인답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우리들 중에는 자기 한 몸 희생하여 남을 구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지만, 이번 참사를 겪으면서, 그리고 요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보면서 느끼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도 없고, 공동체 의식이나 남을 위하는 의식이 거의 없이 극도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가 종교인으로서, 성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이라고 할까, 제 자신의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 한 몸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이기적으로 살고 이웃을 모른 체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죽음으로 가는 절망의 길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어디에 희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생명의 길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고,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벗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을 가르치셨고, 몸소 그 가르침대로 사셨습니다. 지극히 깨끗하신 분께서 죄인인 우리를 벗이라 부르시며, 우리 죄를 씻어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이고, 죽음을 이기는 길입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참 생명의 길을 가리켜주는 증거는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낙담하고 불안해하는 우리 이웃들에게 누가 희망을 전해 주겠습니까? 더 이상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이 세상에 누가 믿음을 심어줄 수 있겠습니까?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 결합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자기를 버릴 줄 알 때, 이웃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할 줄 알 때, 어둠에 싸인 세상에 빛이 되고, 살맛이 나지 않는 세상에 소금이 될 때 그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이고, 예수님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인 우리는 희망을 모르는 이들처럼 살지 말고 생명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고 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누군가에게로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부활의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