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사제총회 위령미사 강론) |
2023/11/07 17:7 |
사제총회 위령미사
2023. 11. 07. 범어대성당
오늘 교구 사제총회에 앞서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 특히 돌아가신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위령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통상 교구청 성직자묘지에서 미사를 드렸었는데 교구 신청사 공사 관계로 올해는 이곳 범어대성당에서 미사와 총회를 갖기로 하였습니다.
지난해에는 세 분의 신부님들(구본식 안드레아, 유승열 바르톨로메오, 정순재 베드로)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올해는 지난 여름에 김용길 바오로 신부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미사 중에 기억하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29일은 ‘이태원 참사’ 1주기였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분들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치열합니다. 두 전쟁 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비롯하여 유엔 등이 나서서 중재하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전쟁과 폭력으로 무고하게 돌아가신 수많은 생명들, 수많은 영혼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마태 5,1-12)은 예수님의 산상설교 중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참된 행복’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일명 ‘진복팔단’이라고도 합니다만, 산상설교의 정신, 복음의 핵심이 이곳에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인 대축일’ 복음도 이 말씀이었고, ‘위령의 날’ 첫째 미사 복음도 이 말씀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어느 비구니 스님께서 ‘산상수훈’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시사회에 초대받아 갔던 일이 있습니다. 영화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에 대하여 청년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흥미롭게 봤었습니다만, 어떻게 불교 스님이 예수님의 복음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말씀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에까지 자주 오르내릴 만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애송되고 있지만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이 참된 행복의 길이라고 말씀하셨고, 우리 앞서 천국에 계시는 모든 성인들이 그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18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 권고’를 발표하셨습니다. 제목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였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입니다.
교황님께서는 권고 1항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러저러한 평범한 존재로 안주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 권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3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것이 곧 성덕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게 응대하는 것이 곧 성덕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슬퍼할 줄 아는 것이 곧 성덕입니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곧 성덕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고 행동하는 것이 곧 성덕입니다.”
“사랑을 더럽히는 온갖 것들에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 곧 성덕입니다.”
“우리 주변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곧 성덕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을 안겨줄지라도 날마다 복음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성덕입니다.”
‘참된 행복’을 사는 것이 곧 ‘성덕’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신자들에게 강론이나 훈화를 통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자신이 그 말씀을 그대로 다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직자들의 가장 큰 딜레마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난 주일 복음(마태 23,1-12)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말하는 것은 다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2-3)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행복을 사는 것이고, 성인들이 갔던 길이며, 우리 선배들이 갔던 길입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위령미사를 봉헌하면서 연옥 영혼들과 세상을 떠나신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도록 합시다.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