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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예수성심시녀회 종신서원 미사 강론)
   2023/12/12  13:29

종신서원 미사

 

2023. 12. 08. 예수성심시녀회

 

먼저 오늘 종신서원을 하시는 다섯 분의 수녀님들(전수진 데레사, 윤세연 에디타, 정민덕 미카엘라, 이은지 은지글로리아, 허펑단 데레사)에게 미리 축하를 드리며,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1831년 조선교회를 북경교구에서 독립시켜서 ‘조선교구’로 설정해주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께서 1841년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성 요셉’과 함께 조선교회의 수호자로 선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 주보 축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예수성심시녀회’ 설립일이기도 합니다. 수도회 설립일을 맞이한 예수성심시녀회의 모든 회원들에게 축하를 드리며, 주님 은총 속에 더욱 큰 성장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3월에 서울대교구에서 김수환 추기경님과 방유룡 신부님과 함께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시복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은 1831년 9월 9일부로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받으셨지만, 조선에 입국하지 못 하시고 1835년 10월에 중국 마가자 교우촌에서 선종하셨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은 주교가 되기 전부터 지금의 태국 지역에서 사목하고 계셨는데, 당시 조선에는 성직자가 한 사람도 없으며, 그래서 신자들이 성직자를 보내달라고 교황님께 편지까지 보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제일 먼저 조선 선교를 지원했던 파리외방전교회의 사제였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같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 남대영 루이 델랑드 신부님께서 한국에 도착한 지 100년이 되는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 남 신부님께서 포항을 빛낸 인물로 선정되어 제가 포항 모원에 가서 기념 미사를 드렸었습니다. 올해는 남 신부님 동상을 포항시에서 대잠동 철길 숲에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온 생애를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봉헌하신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의 한국 교회가 있는 것이고 우리들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모범과 영성을 우리들이 배우고 따르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창세 3,9-15.20)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와 실낙원에 대한 내용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느님께서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하고 찾으십니다. 그래서 아담이 대답합니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하고 물으시자, 아담이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하고 물으시자 여자는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하여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실낙원입니다. ‘낙원’을 영어로 ‘파라다이스(Paradise)’라고 합니다. ‘파라다이스(Paradise)’의 원래 뜻이 ‘울타리가 있는 정원’이라고 합니다. 울타리가 없으면 무엇이 들어옵니까? 도둑이 들어오고 늑대나 이리가 찾아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최소한의 울타리였습니다. 하나의 경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교만과 욕망은 그 울타리를 넘고 맙니다. 울타리 밖에는 온갖 위험과 유혹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낙원입니다. 오날날 이 세상이 실낙원의 세상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이 죄입니다. 교만이 불순종을 낳고 불순종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은 것입니다.

죄는 모든 관계의 단절을 가져옵니다. 아담은 죄를 짓고 난 뒤에 하느님이 두려워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아담도 하와도, 어느 누구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탓을 돌립니다. 세상의 수많은 분쟁과 싸움과 전쟁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탓을 돌리기 때문에 끝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000년 전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시어 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습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가 들려주는 말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말이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갖게 되다니!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에, 가브리엘 천사가 전하는 말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 그래서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은 끊어진 관계를 회복합니다. 믿음을 회복하고 사랑을 회복합니다. 실낙원을 낙원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성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를 실낙원에서 낙원의 세계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시노드적인 교회가 되고자 하고, 우리 교구가 친교의 삶을 살자고 하는 것도 이런 차원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길을 가야 하고 친교를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순종하고 장상에게 순종하며 함께 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가진 것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생명까지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주의와 자기 편의주의가 너무나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삶이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수도 생활을 하고자 기꺼이 응답하였기 때문에 작은 것부터 함께 하고 함께 나누는 삶을 살도록 노력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종신서원 하시는 수녀님들과 우리 모두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시 한번 하느님의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서 도와주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