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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응답하라, 1998 (은경축 사제 축하 미사 강론)
   2023/12/13  16:47

은경축 사제 축하 미사

 

2023 12 13.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교구청 사제관 경당

 

사제 서품 25주년 은경축을 맞이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보통 나이 30에 사제가 되어서 평균적으로 80세까지 산다고 한다면 사제생활을 50년 금경축까지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올해 25년 은경축을 맞이하신 여러분들은 사제생활의 반환점을 돈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98년 8월 25일 그 뜨거운 여름날에 품을 받았던데, 그날도 수고하셨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후 25년 동안 사제로 살아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사제생활에도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응답하라, 1998’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나요? 최근 우리 신학교 학생회지에 올해 은경축 맞이하신 두 분 신부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서 봤습니다. 그 기사 타이틀이 ‘응답하라, 1998’였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으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요즘 신조어나 준말들이 너무 많아서 미디어를 접하다 보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난, 대중문화에 대한 어떤 칼럼을 읽다가 두 단어에 막혔습니다. ‘2049’라는 말과 ‘존버시대’라는 말이었습니다.

찾아보니까 ‘2049 시청률’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20세에서 49세까지를 말하는데, 이 사람들의 시청률이 높아야 광고가 많이 붙는다고 합니다. 2049세대가 구매력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50대 이상의 사람들이 많이 보았자 구매력이 높지 않기 때문에 광고 수익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존버’라는 말은 ‘엄청나게 버틴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존버’이냐? 하면 ‘존’은 비속어였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단어를 줄여놓은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여튼 지금 이 시대가 엄청나게 버티어야 살아남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는데, 왜 이렇게 삭막한 존버시대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옛날처럼 귀족과 평민, 우리나라 같으면 양반, 상민, 천민이라는 신분과 계급이 따로 있었던 시대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살기가 어렵게 되었는지요.

사실 옛날에도 일반 백성이 살아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려느니 하고 살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생존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래서 자기 한 몸 부지하기도 어려운 세상입니다. 대학 정원보다 학령인구가 더 적어졌는데도 여전히 입시경쟁은 치열합니다.

우리나라에 현재 아무 사회 활동을 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이 6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년 세대 반 이상이 앞으로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38개 OECD 국가 중에서 제일 낮습니다. 그것은 세계에서 제일 낮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신 자살률은 제일 높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는 1인 가구가 35%이고 2인 가구가 29%라고 합니다. 비정상적으로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 이런 나라에 우리가 사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11,28-30)은 예수성심대축일이며 사제성화의 날에 자주 듣게 되는 말씀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성경 주석을 보면, 여기서 말하는 ‘짐’은 그 당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율법 규정들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것만이 아니라 백성들이 겪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과 난관들이기도 합니다. 2000년 전 그 시대에 예수님의 존재와 말씀과 삶이 그 사람들에게 참으로 복음,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존재와 우리가 선포하는 말씀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고 위로와 격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당에 나와서 미사와 성사와 친교로 힘을 받고 기쁨을 가지고 다시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을 누가 할 것입니까? 우리가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