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가톨릭생활 > 칼럼 > 십자가를 안테나로
제목 삶을 노래해! (원스)
   2012/10/11  23:0

주: 지난 추석명절에 잠시 귀향했다가 최근에 좀더 심해진 모친의 치매증세를 보고 몹시 안타까워하던 저희 형제들이 금주 KBS - 1TV 의 '인간극장'에서 중년인 아들과 함께 사는 치매 할머니의 모습(엄마, 고마워요 편)을 보고 제게 이런 전화를 하며 위로하였습니다.
   "형! 엄마의 엉뚱한 소리도 엄마의 노래이거니 하고 생각하고 힘내세요!..." 라고 말입니다. 아무튼 모든 치매 부모님의 쾌유와 그 가족들의 건강을 빌며 지난 2007년에 쓴 글을 올려봅니다.^^*

                                            삶을 노래해!

  십자가를 안테나로!
  언제부터인지 저의 모친이 갑자기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치매 초기증세인가 싶고 또 걱정이 되어 모친을 모시고 신경정신과 병원을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 살짝 그 증세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모친은 부끄러워하시며 “아니야, 그건 치매증세가 아니고 나는 젊어서부터 힘이 들 때 늘 노래를 부르곤 했단다...”라고 저의 말을 가로 막으셨고 또 의사 선생님도 아무 대답없이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하셨습니다.

  금주 KBS-1TV 생방송 다큐 ‘사미인곡’에서는 가수겸 작곡가인 데프콘과 그 가족들이 소개되었는데 이는 데프콘이 최근 발표한 그의 앨범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노래해 많은 이들에게 가족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록 그가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또 사고뭉치였지만 지금은 가족들에게 큰 기쁨이 되고 있고 또 지금 전주의 재래시장에서 쌀가게를 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도 무거운 쌀부대를 지고 배달을 할 때에 그의 아들이 부른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아버지 역시 삶을 노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동안 삶에 지쳐서인지 아니면 귀가 먹어서인지 자기 어머니의 노래에도 잘 듣지 못했던 제가 오히려 중병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앞으로는 테프콘이 자기 아버지를 노래한 것처럼 저도 어머니의 노래를 계승하며 또 어머니처럼 삶을 노래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유안진 시인의 글 ‘어머니의 노래’와 음악영화 ‘원스(Once)'를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어머니의 노래 / 유안진 시인>

  한창 문학소녀의 꿈이 싹트던 때였으리라.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헌책방 아저씨가 추천한 ‘소월시초’를 빌려 읽었다. 이튿날 아침 등굣길에 몇 구절이 생각났다. 특히 ‘산유화’ 중에 “가을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라는 구절이 계절 순서와 다른 점이 떠올랐다. 마침 특별활동 시간에 문예반에 들어가 선생님께 질문했더니, “그야 소월에게 물어봐야지”라고 무안당하고는, ‘산’이라는 시에서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라는 구절은 더 질문할 수가 없었다. 우리 고향마을 산의 오리나무는 시에 나올 만한 좋은 나무가 아니었는데, 소월은 왜 산새가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고 했을까? 하지만 이 의문은 어머니의 나무노래에서 단박에 풀렸다.

  누구나 가난했던 그 시절, 오후 하교 후 대문을 들어서니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또 그 촌티나는 옛날 노래였다. 아마 또 어린 동생이 ‘아이스케키’를 사달라고 떼쓰는 모양이다. 울며 떼쓰는 동생을 달래어 웃기는 사이, 아이스케키 소년이 멀리 가버리기를 바라시는 계산이었다.

  “가자 가자 감나무/ 오자 오자 옻나무/ 달 속에는 계수나무/ 물가에는 물푸레나무/ 아들 낳아라 추자나무/ 무덤 앞에 가시나무/ 무당 손에 복숭아나무/오리길에 시무나무/ 십리절반 오리나무/ 가다 보니 가닥나무/ 오다 보니 오동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양반동네 상나무/ 마당 쓸어 싸리나무/ 따끔따끔 가시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칼에 찔려 피나무/방귀 뽕뽕 뽕나무/ 댓기이눔 대나무/ 참거라 참나무/….”

  그렇다! 십리절반은 오리! 그래 오리나무다! 소월의 시 ‘산’의 오리나무는 거리 개념을 나타낸다고 본 것이다. 시란 이렇게 쓰나 보다. 나는 시 공부를 이렇게 혼자서 한 셈이다. 어머니는 우리말의 명수이셨다. 대상의 나이와 생김새 행동 자세는 물론 장소와 사건, 시간과 때 등에 참으로 절묘하게 알맞는 비유와 상징어를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잘도 만들어 말씀하셨다.

  도시에 오래 살게 되자, 찬송가를 즐겨 흥얼거리셨지만 오륜가, 사친가, 사우가, 화전가 등 내방가사와 나무노래, 못된 시누이, 시동생 등의 속요를 흥얼거리시며 아궁이 앞에서나, 등잔을 당겨 호롱불 심지를 돋우고 바느질을 하시며 중얼거리시며 치마꼬리 당겨 눈물 훔치시던 젊은 아낙 엄마와 까망 단발머리 내 모습이 더 그립다.

  어머니는 내 문학과 학문의 최초의 스승이셨다. 나무노래를 부르시는 단조로운 어머니 목소리가 새삼 그리운 이 가을, 고향집 툇마루까지 그리워 눈꼬리 젖는다. 

                                    <영화 ‘원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 노래 속에 숨겨진 사랑의 아픔을 한눈에 알아보는 ‘그녀’와의 만남. 그의 음악을 응원해주는 그녀 덕에 그는 용기를 얻게 되고, 런던에서의 오디션을 위해 앨범을 녹음하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피아노 선율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그녀가 만드는 음악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음악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앨범이 완성되는 만큼 서로의 매력에 빠져드는 두 사람.
  “그녀는 나의 노래를 완성시켜준다. 우리가 함께 하는 선율 속에서 나는, 나의 노래는 점점 그녀의 것이 되어간다.”


  한곡, 한곡 완성되는 그들의 음악처럼 그들의 삶과 사랑도 매일 완성되어간다...

                          <말씀에 접지하기; 루카 1, 46-47>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cafe.daum.net/ds0ym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00 아이들의 건강을 위하여...(로렌조 오일, 아들을 위하.. 이현철 12/10/29 8011
499 무서운 향기들 (향수) 이현철 12/10/28 8178
498 죽음과도 악수를 한 박중령 (호텔 르완다) 이현철 12/10/24 7712
497 하늘문이 열리는 시간은...(굿바이 만델라) 이현철 12/10/23 8003
496 하늘을 친구처럼? (트위스터) 이현철 12/10/18 7969
495 아이들의 자살을 막으려면...(지상의 별처럼) 이현철 12/10/12 6966
494 삶을 노래해! (원스) 이현철 12/10/11 7863
493 가족이라는 이름의 수호천사 (가족) 이현철 12/10/02 7333
492 돼지야, 미안해! (샬롯의 거미줄) 이현철 12/09/26 7502
491 우리는 이씨인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현철 12/09/24 8136
490 유기견들도 불쌍하지만...(도그빌) 이현철 12/09/23 8179
489 나무야, 미안해! (나무를 심은 사람들) 이현철 12/09/17 8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