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내가 치매에 걸려도 약속을 지키는 남편(민족들의 복음화 주일) |
2014/10/18 19:53 |
아내가 치매에 걸려도 약속을 지키는 남편
(민족들의 복음화 주일)
마태오복음 28,16-20
무척 바쁜 어느 날 아침 팔순이 넘은 노신사가 엄지손가락을 꿰맨 실밥을 제거하려고 일찍 병원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마침 내가 평소보다 일찍 병원에 와 있었다. 이 노신사는 9시에 약속이 있어서 매우 바쁘다고 하며 나에게 빨리 실밥을 빼내달라고 다그쳤다. 나는 그에게 의자에 앉으시라고 권했다. 담당 의사가 아직 출근하지 않아 그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노신사는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해 했다. 그의 모습이 안타까워 내가 직접 실밥을 빼내기로 했다. 다행히 노신사의 상처는 잘 아물고 있었다. 나는 노신사의 상처를 치료하며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서두르시는 걸 보니, 다른 병원에 진료를 예약해 놓으셨는가 보죠?” 하고 물었다. 노신사는 “요양원에 수용되어 있는 아내와 아침 식사를 해야 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부인의 건강상태를 물으니 그는 “아내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부인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르신이 약속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시면, 부인께서 언짢아하시나 보죠?”라고 물었다. 노신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니오. 아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지 5년이나 됐는걸요.”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부인이 선생님을 알아보시지 못하는데도 매일 아침마다 요양원에 가신다는 말씀입니까?” 노신사는 미소 지으며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몰라보지만, 난 아직 그녀를 알아본다오.” 노신사가 치료를 받고 병원을 떠난 뒤, 나는 감동하여 아침부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 인생을 걸고 찾아 왔던 사랑의 본보기를 드디어 찾아냈다는 기쁨에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던 것이다. 참사랑이란 있는 이웃을 있는 그대로 오롯이 받아들이고 약속대로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며 세상 끝나는 날까지 늘 당신 제자들과 함께 있다고 이르시며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하셨다. 예수님은 일찍이 이사악, 모세,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사명을 맡겨 파견하며 보호와 성공을 보장하신 하느님을 닮으셨다. 예수님은 우리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고 세상이라는 밭에 하느님 왕국의 좋은 씨를 뿌리라고 명하셨다(마태 13,37-38). 예수님은 하느님을 대신하여 제자들의 복음선포가 많은 열매를 맺도록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런 뜻에서 예수님은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다(1,23; 28,20). 당신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함께 있는 곳에 계시며(18,20) 세상종말까지 늘 당신 백성인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사시는 영원하신 분, ‘알파요 오메가’이다. 이처럼 영속적으로 제자들을 돕고 계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교회와 7성사를 창조하고 죄인들을 거룩하게 하며 그들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세례 때 당신과 함께 살자고 우리를 부르신 예수께 그러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매 순간 말씀과 성사로 우리를 부르시지만 그분의 말씀이 메아리 없는 울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잊거나 당신의 존재마저 무시하는 동안에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가 그분의 현존을 의식하지 않을 따름이다.
사랑은 사람들이 스스로 성취해야 하는 덕이 아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은인과 원수를 다 포함한 전 인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제2그리스도가 되는 사람만이 참사랑을 한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사랑하여 그들의 생명에 필요한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하느님을 본받아 원수를 사랑해야 참사랑을 할 수 있다. 서로 닮는 것은 사랑의 본질이다. 친구들은 서로 신뢰하고 서로 닮듯,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간디를 닮듯, 오랫동안 꿈을 품은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우리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사물은 마침내 언젠가 우리 자신의 한 부분이 된다.”(H. 켈러)
비록 아내가 치매환자가 되어 자기의 방문을 전혀 깨닫지 못해도 자기에게 충실하려고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 약속을 지키는 그 노신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는 이웃의 행복이 나 자신의 행복에 필수 조건이 될 때 비로소 참사랑이 시작됨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우리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의식하기 위해 늘 마음속에 하느님의 말씀을 품자. 가장 순수한 마음의 열정을 가져야 하느님의 사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 계신다. 그래야 이웃이 나의 헌신적인 사랑을 짓밟아도 그를 향한 사랑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 제2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
“주님, 당신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내 마음속에 참사랑이 샘처럼 솟아오릅니다.
사랑은 나와 이웃의 둘레를 밝혀주는 당신의 현존입니다.”
잘 읽히는 책
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 해설(가해). 가톨릭출판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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