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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태풍 속에 별을 찾아서...(태풍)
   2013/06/21  19:51

주: 당초 일본 남해안으로 우회전할 줄 알았던 제 4 호 태풍 리피(라오스말로 폭포라는 뜻)가 좀더 북상하였지만 제주도 밑에서 다행히 소멸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근데 이번 태풍의 이름이 라오스말이라고 해서 그런지 갑자기 최근 라오스에서 강제북송된 탈북청소년들이 생각났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지금 북한 방송에 나와서 남한 선교사에게 납치되어 인신매매될 뻔 했다는 강요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지만 우리는 단 한 명의 탈북자라도 마치 태풍 속에 별을 찾는 마음으로 찾아 구조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2005년에 쓴 글을 올려봅니다...


                                            태풍 속에 별을 찾아서...


  십자가를 안테나로!

  ‘한겨울에 태풍이 분다’고 해서 금년 성탄절 문화행사로 탈북자의 아픔과 한을 그린 영화 ‘태풍’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간 수많은 탈북자들의 아픈 사연을 매스컴을 통해 익혀 보고들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탈북자들의 아픔과 고통과 한이 한겨울에 태풍이 되어 한반도로 북상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특히 금년에는 서해의 수증기가 눈구름을 만들어 호남지방에 눈폭탄이라고 할 수 있는 유래없는 폭설을 퍼부었는데, 북상하는 탈북자들의 한이 서린 태풍이 만약 거기에 합세한다면 우리나라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정치상황에 그야말로 시베리아나 북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태풍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마치 동방박사들처럼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찾아나서는 마음을 그린 한 6. 25 전쟁 포로의 그림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고 또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초대형 태풍속에서도 그 별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그 성화를 그린 한 포로에 관한 고 민요셉 신부님의 글과 영화 ‘태풍’을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한 포로의 꿈 / 민요셉신부>


  안치환 선생님의 글과 노래에 <슬럼프>가 있습니다. 우리는 ‘슬럼프’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 어려움 그 고통, 때론 약한 인간이기에 자포자기하여 비관에 빠지기도 하지만 고통을 부여안고 아우르며 울부짖고 몸무림치면서 일어서는 친구들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희망의 꽃, 희망의 향기를 찾아내며 살아가는 친구들이 참 멋있습니다. 그래서 서곡으로 함께 불렀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와 같이 툭툭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들어도 눈물겹고 아름답습니다. 그래 먼저 <슬럼프>를 부르며 내가 앉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내 남은 인생의 첫 날인 오늘을 기점으로 새로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래 다시 시작입니다.


                            슬럼프 / 안치환 사. 곡


사막에 마른풀처럼 살아가다 가다 보면

때론 지치고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어져

마시고 떠들고 취해서 껄껄 웃고 울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 나를 목마르게 해

워~ 힘을 내야해 워~ 힘을 내야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나를 지킬 수 있게

더 이상 꿈꾸지 않는 나를 견딜 수 없어 난, 벗어나고 싶어


길 잃은 어린 새처럼 기댈 곳 찾아 보다

무거운 날개짓 퍼덕거려도 하늘은 멀어지고

그러나 쓰러지지 않아 서두르지 않아

온 몸 웅크리고 바닥에 닿으면 박차고 오를꺼야

워~ 힘을 내야 해 워~ 힘을 내야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나를 지킬 수 있게

더 이상 꿈꾸지 않는 나를 견딜 수 없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나를 지킬 수 있게

더 이상 꿈꾸지 않는 나를 견딜 수 없어 난, 벗어나고 싶어


워~ 새로운 나를 찾아 워~

거치른  대지를 달려간다


  제주 한림에서 이시돌 목장이 있는 금악의 성 글라라 관상 수녀회로 가는 길에 어느 약국 진열장에 있는 잡지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잡지 속에서 나는 한 편의 시를 만났습니다.


   김춘수 선생님의 시 <유토피아는>입니다. 길을 묻기 위해 들었던 약국에서 만났던 한 편의 시, 이 시가 내가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 시에서 힘을 얻어 다시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바로 이 시각에 길을 잃고 헤매는 벗들,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벗들, 그리고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많은 벗들에게 선생님의 시 <유토피아는>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벗들 모두가 이 시에서 힘을 얻어 슬럼프의 어려움에서, 역경에서 일어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토피아는 / 김춘수


유토피아는 아직도

꽃밭에서 자고 있다.

파란 눈의 땅벌레와 함께

까만 눈의 여치와 함께

아직도 꽃밭에서 자고 있다.

자고 있는 것은 그러나 언젠가는

눈을 뜬다. 지금은 아직도

눈보라가 으루나무숲을 휘몰아친다.


유토피아는 아직도

풀밭에서 자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눈을 뜬다.

저 파란 눈의 땅벌레처럼

저 까만 눈의 여치처럼

때가 오면 언젠가는

반드시 눈을 뜬다.


  김춘수 선생님은 자신의 시작노트에서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유토피아를 머리에 그리고 있어야 한다. 시베리아와 같은 혹한의 볼모지에 있다 하더라도, 아니 그럴수록 그러해야 한다. 그 꿈(유토피아)을 버리지 않는 한 인류는 어떤 나쁜 조건도 견뎌낸다. 꿈을 잃은 시대에 꿈을 가진 진지한 사람들을 위하여 이 시를 바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시 <유토피아는>에 나오는 상황과 너무나 똑같은 이야기를 나는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한 편의 그림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고 너무나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이에 그 그림을 그렸던 당시의 한 젊은이를 오늘의 상황에서 지극히 그리워하며 이 글을 바치고 싶어 소개하렵니다.


   그 포로는 수용소에 살면서 한 편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의 내용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보기 위하여 베들레헴을 향하여 떠나는 동방박사 세 사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마주친 이 그림 때문에 참 많이 고민하였습니다. 나의 신원이며 내가 살아가는 삶의 양식에 관하여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엘리어트의 시집을 읽어나가다가 <동방박사들의 여행>이라는 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시를 읽어나가면서 나는 ‘그 포로의 마음이 바로 동방박사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고 결국 ‘동방박사들의 마음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느낀 감정을 혼자 삭일 수 없어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먼저 엘리어트의 시 영어말본과 우리말 번역본, 그리고 해설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그 포로의 마음이 되어 그가 그린 그림 <동방박사 세 사람>을 살펴보고 그림에 관한 분위기를 영화 <타이타닉>과 비교하여 영화 속의 등장인물 묘사와 배 안에서 일어나는 극한 상황, 그리고 영화 속에서 불려지던 노래와 영화의 주제가를 소개했으면 합니다.


   엘리어트가 쓴 시집 『에어리얼』에 수록되어 있는 네 편의 시 가운데 하나가 <동방박사들의 여행>입니다. 에어리얼은 세익스피어의 <폭풍우>에 나오는 공기의 요정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하여 공중을 날아다니며 주인 프로스페로를 도왔습니다. 이 시집 『에어리얼』은 작가 자신의 말에 의하면 성탄 카드용으로 쓴 것이라 합니다.


동방박사들의 여행


"추운 길을 왔더니라.

여행을 하기에는, 그런 먼 여행을 하기에는

일 년 중에서도 마침 가장 나쁜 때에,

길은 깊이 빠지고 날씨는 맵고,

때는 바로 한겨울."


게다가 낙타들은 擦傷(찰상)나고, 발은 까지고, 꾀부리며

녹는 눈 속에 드러누웠느니라.

언덕 위의 여름 別邸(별저)와 露臺(노대)와

果汁(과즙)을 나르는 비단 옷 처녀들을

못내 아쉬워한 때도 있었느니라.


그때 낙타꾼들은 욕질하고 투덜대고

달아나고, 술과 계집을 원하고,

밤불은 꺼졌는데 잠잘 곳은 없고,

都市(도시)는 적의를 품고 小邑(소읍)은 불친절하고

村落(촌락)은 더럽고 비싼 값을 요구하고,

실로 우리는 밤을 세워 가기로 하고

토막잠을 잤건만,

우리 귓전에서 노래하듯

이건 모두 어리석은 짓이라고 일러주는 말소리가

떠나지 않았느니라.


이윽고 우리는 새벽에 雪線(설선) 아래 물기가 있고

냄새가 풍기는 따스한 어느 골짜기로 내려갔느니라.


그곳엔 시내가 흐르고 물레방아가 어둠을 치고

나직한 하늘엔 세 그루의 나무가 서 있고

한 늙은 白馬(백마)가 풀밭을 뛰어갔더니라.


그리곤 우리는 문방 위에 포도넝쿨이 덮여 있고,

여섯 사내들이 열린 문간에서 銀錢(은전)을 걸고 주사위를 던지며

발로는 빈 가죽 술부대를 치고 있는 어느 주막에 이르렀느니라.


하나 거기서도 알 길이 없어 다시 길을 떠나

저녁에 때 맞춰 그곳을 찾아 도착했으니

그것은 만족스러운 일이라 말할 수도 있으리라.


회상컨데 이 모든 것은 오래 전 일이어만,

나는 그런 일을 다시 한 번 하고 싶노라.

하지만 이것만은 규정짓고 싶노라, 이것만은.


우리가 그토록 그 길을 간 것은

탄생을 보기 위함이었던가 죽음을 보기 위함이었던가?


확실히 거기엔 탄생이 있었다.

증거도 있고 의심도 없다.

나는 탄생과 죽음을 보았건만,

그 둘은 다른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탄생은

우리에겐 괴롭고 쓰라린 고뇌였다,

'죽음'처럼, 우리의 죽음처럼.


우리는 우리의 고장, 이 왕국으로 돌아왔건만,

낯설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들을 붙들고 있는,

여기 이 낡은 律法(율법)가운데서는 이 이상 편안함이 없다.


나는 또한번 죽고 싶노라...


  1927년에 쓰여진 이 시는,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을 찾아갔던 세 사람의 동방박사 가운데 한 사람이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제1절 첫머리는 17세기 영국의 성직자 앤드루즈⑻의 <성탄 강론>내용에서 인용하였는데, 여행의 배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때는 바로 한 겨울, 여행을 하기에는 일 년 중에서도 가장 나쁜 때'. 동방박사들은 낙타를 타고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길은 깊이 빠지고 날씨는 맵고, 게다가 낙타들은 찰상이 나서 녹는 눈 속에 드러눕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겪은 시련과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자연적 악조건도 악조건이려니와 그들의 마음속에는 불안감과 회의가 뒤따랐습니다. 여름 별장, 비단 옷 입은 처녀들, 술과 계집 따위 등을 그리워한 것을 보면 베들레헴 여행의 의의를 때로는 잊기도 하고 의심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더욱 낙타꾼들은 욕질하고 달아나고, 밤불은 꺼졌는데 잘 곳은 없고, 도시는 적의를 품고 소읍은 불친절한 것을 볼 때, 그들은 불안하고 이 여행이 '모두 어리석은 짓'처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든 시련과 장해, 마음 속의 불안과 회의를 극복하고, 그래도 그들로 하여금 여행을 계속케 한 것은 그들의 신앙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행을 회고하는 동방박사의 표현에 피로와 회의의 빛은 나타나지만, 불평과 반역의 빛은 엿보이지 않습니다.


   1절의 내용을 가만히 묵상해 봅니다. 가정생활을 하거나 수도생활이나 사제생활을 하거나 관계없이 처음 첫발을 내딛으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의 결심이나 희망은 그렇게 오래 가질 않습니다. 지극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처음 시작할 때의 드높은 이상이나 포부, 그리고 삶의 의의는 어느 사이에 사라지고 앞날의 불투명과 막막함으로 인하여 의기소침하게 되고 그저 시작한 일이라 운명이려니 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을 출발하여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갈 때 사막에서의 그 길고도 힘든 길을 걸어갈 때 끊임없이 그래도 배불렀던 애굽으로 다시금 돌아가고픈 마음이 일었던 것 처럼 그렇게 동방박사는 첫 출발에서 오는 회의와 어려움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제2절의 풍경은 설선雪線 아래 물기가 있고 초목 냄새가 풍기는 따스한 어느 골짜기이며, 또한 그 시간은 새벽입니다. 제1절의 이미지는 대부분이 고뇌와 장해와 피로를 보여주는 것들이지만, 제2절의 이미지는 새벽, 따스한 골짜기, 초목 냄새, 시냇물 소리 등에서 볼 수 있듯 물레방아가 어둠을 치는 것 같이 모두가 회의와 불안을 몰아내는 희망적인 것들입니다. 나직한 하늘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는 예수님이 못 박힌 골고타의 십자가와 그의 양쪽으로 매달린 두 강도의 십자가를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한 늙은 백마'는 묵시록 6, 2 : 19, 11에 나타나는 '백마 탄 자'를 연상시킵니다. 이 '세 그루의 나무'나 '백마'는 새로운 탄생과 희망의 이미지들입니다. 엘리어트의 시 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탄생은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새로운 탄생을 추구하는 동방박사들이 십자가의 죽음과 백마 탄 자의 승리를 보았다고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새로운 탄생의 희망을 보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탄생의 길은 좁습니다. 거기엔 수많은 유혹과 시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여인숙과 여섯 사내들이 주사위를 던지고 있는 장면은 부패와 탐욕과 불신을 상징합니다. 이런 황무지적인 상황에서는 '복된 소식', 즉 복음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끊임없이 여행을 계속하여 마침내 '그곳'을 찾았습니다. 회고하건데 모든 것이 오래 전 일이지만, 만족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확실히 탄생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당황했을까요? 그것은 탄생인 동시에 죽음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황무지의 세계에 살면서 탄생과 죽음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니, 삶이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황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식했을 때, 그 체험은 환희라기보다 고뇌였습니다. 실로 우리의 죽음처럼 괴로운 체험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자신들의 '왕국'으로 돌아온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그 고장은 낡은 율법이 지배하는, 즉 복음의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곳, 하느님의 은총이 없는 나라입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자신들의 우상에 매달리는 이교인들이었습니다. 이런 곳엔 마음의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한번 죽고 싶노라'고 합니다. 죽음은 구원의 전제입니다. 이제 늙은 주인공은 죽음으로써 완전한 구원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광명과 은총의 나라는 들여다보지 못한 감이 듭니다...


   타이타닉호 선상에서 연주된 아름다운 곡은 창세기 28장 10~22절의 야곱의 꿈, 야곱의 사다리를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개신교 찬송가 364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가톨릭 성가 151장 <주여 임하소서>에는 가사 내용은 틀리지만 같은 곡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의 꿈, 야곱의 사다리를 이야기하는 창세기의 내용을 만날 때면 도망자로서 쫓기고 쫓기던 야곱이 처한 어둡고 두려운 상황에 접하게 되고, 그렇게 두려움에 떨다 지친 야곱처럼 침몰 위기에 처한 그 극한 상황, 아수라장이 된 타이타닉 선상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진지하고도 숙연하게 연주하던 악사들의 표정 위로 겹쳐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살았던 한 젊은이가 오버랩 되어 떠오릅니다.

 


   (판쵸 우의에 그려진 동방박사들)

 

    그는 포로였습니다. 공산포로인지 반공포로인지 유엔군포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6 · 25 전쟁 당시 거제 제 76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포로 134,031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포로의 몸으로 몸이 아파 수용소 내의 야전 병원에 입원하였고, 그때 자신의 판쵸 우의에 한 폭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을 그린 날짜도 없고 그린 사람의 이름이나 싸인조차 없는 동방박사 세 사람을 그려놓은 그림이 경남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에 위치한 거제 포로수용소 터에, 수용소의 잔해가 남아 있는 유적관 입구에 걸려 있었습니다. 별의 인도로 낙타를 타고 베들레헴을 향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가는 동방박사 세 사람. 낙타의 목에 두른 붉은 목도리와 낙타 머리에 장식한 붉은 꽃이 인상적이면서 판쵸 우의의 부드러운 결마저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 듯한 인상적인 그림 <동방박사 세 사람>...

  (출처: 고 민요셉 신부님의 ‘하느님의 결혼식 1권’에서 일부 발췌)

 


                               <영화 '태풍'>


  타이완 지룽항 북동쪽 220km 지점 해상에서 운항 중이던 한 선박이 해적에게 탈취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국 국정원은 탈취당한 배에 미국 정보국의 핵 위성유도장치인 ‘리시버 키트’가 실려있었다는 사실과 그 선박을 탈취한 해적이 북한 출신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비밀요원을 급파한다.

 

  한반도를 날려버리겠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온 해적 ‘씬’(장동건 분)은 ‘리시버 키트’를 손에 넣고 이제는 그의 오랜 계획을 실행하려 한다. 20여년 전,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귀순하려 했으나 중국과의 관계를 우려한 한국 정부의 외면으로 북으로 다시 돌려보내지던 과정에서 온가족이 북한군에게 눈앞에서 몰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씬’은 그 때부터 한국에 대한 증오를 키우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의 가슴엔 오직 이 뿌리깊은 분노와 어릴 적 헤어진 누나 ‘최명주’(이미연 분)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만이 살아있다.

 

  한편 국정원으로부터 비밀리에 파견된 해군 대위 ‘강세종’(이정재 분)은 방콕 등지에서 씬의 흔적을 뒤쫓다 러시아까지 추적망을 좁혀간다. 암시장에서 매춘부로 살아가고 있는 ‘씬’의 누나 ‘최명주’를 만난 ‘세종’은 그들의 기구한 가족사를 알게 되고, 추격을 거듭할수록 ‘세종’의 마음에는 ‘씬’에 대한 연민이 자리잡는다. 하지만 삼척 대간첩 작전 중 조국을 위해 전사한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세종’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말씀에 접지하기; 마태 2, 9.12>


         (마르코니 문화영성연구소; http://cafe.daum.net/ds0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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