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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양원에서 걸려온 전화 (안경)
   2013/12/27  19:30

주: 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요양원에서 간호사 수녀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저희 모친의 새 안경이 없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며칠 만에 겨우 침대시트 속에 꼭꼭 감춰진 새 안경을 찾은 기억이 나, "또 새 안경이 없어졌는가요?"하고 수녀님께 물으니 이번엔 안경건이 아니고 양치질건이었습니다.

  "모친께서 저녁에 양치질을 하시고도 안했다고 계속 우기시며 지금 "방금 전에 양치질을 하는 것을 봤다"는 증인들 즉 옆 할머니들과 심하게 싸우고 있는데... 소장님이 제발 전화로 좀 달래주세요..."

  "어머니, 저예요. 아까 점심때 다녀간 큰 아들이예요..."

  "네가 여길 다녀갔어? 한달 째 오지 않았잖아?..."

  " ...  ... 아무튼 내일 제가 가서 양치질을 다시 해드릴테니 오늘은 제발 그만하시고

   주무세요...."

 

  최근 언론을 통해 요양원에 가신 어른신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학대를 받는다는 부정적인 뉴스가 많이 보도되고 있지만 저의 모친이 계시는  대구의 모 요양원에선 절대 그런 일이 없으며 오히려 그들이 다양한 중증 증세의 어르신들을 잘 돌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수년 전에 쓴 글 '어머니의 새 안경'을 다시 올려봅니다...

 

 

                                     어머니의 새 안경


  십자가를 안테나로!

  늘 “책을 그만 읽으시고 좀 쉬시라”며 엄마의 안경을 벗기려는 작은 누나와 “안경을 계속 쓰고 있겠다”고 아옹다옹 싸우시던 저의 모친이 이번에 새 안경을 가지시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친이 십여 년 쓰시던 금색 안경테가 얼마 전에 부러져 이번에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연보라색의 안경테로 바꾸게 되었는데 요양원의 모든 분들이 “어르신, 10년은 더 젊어져 보이십니다”라고 칭찬할 정도로 새 안경은 모친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칭찬 덕분에 모친은 “안경을 더 오래 쓰겠다”고 고집을 피우시고 또 식사하시는 중에도 제게 몇 번이나 안경을 닦아 달라고 말씀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저의 모친이 새 안경으로 10년은 더 젊어지신 것처럼 저도 좀더 새로운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지난 10년 전 저의 모친의 고운 모습과 지난 2008년에 쓴 저의 글 ‘안경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일본영화 ‘안경’을 차례로 소개해봅니다. 가브리엘통신

 

 

 

                      (10년 전 모친의 고운 모습: 당시 74세)

 


                          <안경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


   병원 병상에 누워계시는 모친의 손톱에 이어 발톱을 깎아드리고 있는데 모친이 갑자기 “이냐시오야, 갑자기 글씨가 잘 안보인다...”라고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놀라 올려다보니 모친이 제가 당신의 발톱을 깎아드리는 사이도 못 참으시고 제가 잠시 벗어 놓은 저의 안경을 당신의 안경인 줄 착각하여 쓰시고는 그동안 너무 읽어 책장이 너덜너덜한 기도서를 읽고 계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노안이 와서 신문을 읽거나 모친의 손, 발톱을 깎아드릴 때는 아예 안경을 벗는 게 더 잘 보이곤 합니다.


  그런데 이 병실에는 저의 모친을 비롯하여 7분의 할머니와 1명의 간병인, 그리고 가끔 환자를 방문하는 보호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각자 마음의 안경을 따로 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한지 1달이 지났지만 매일 모든 환자의 식사준비와 식대계산을 걱정하시는 저의 모친, 그리고 8순이 넘었지만 아직도 시어머니 제사준비를 한 달 전부터 걱정을 하시는 앞의 할머니, 병원의 영양식보다는 집에서 만든 죽이 더 좋다며 매일 죽을 해오는 착한 며느리 등...


  아무튼 앞에서 언급한 모든 분들이 지금 입원해 계시는 이 병실이 바로 피정의 집이요 멋진 휴양지라고 생각하시고 이제는 ‘온갖 세상걱정이라는 마음의 안경’마저 훌훌 벗어버리고 잘 요양하시길 바라면서 일본영화 ‘안경’을 소개합니다.


                                  <영화 ‘안경’>


  일본 남쪽의 아름답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의 공항에 한 대의 프로펠라 비행기가 착륙한다. 작은 가방을 손에 들고 트랩을 사뿐히 내려오는 안경 낀 여성 사쿠라(모타이 마사코 분)는 마중 나온 사람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건넨다. 역시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또 한 명의 안경 낀 여성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 분)는 사쿠라와 대조적으로 한 손에 커다란 여행용 트렁크를, 나머지 한 손에는 지도를 들고 하마다 민박집을 찾아 나선다.


  하마다 민박집의 주인인 유지와 멍멍이 코지가 사이좋게 살고 있는 그곳에서 다소 느긋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매일 아침 바닷가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기이한 아침체조와 사쿠라 아줌마가 갈아주는 팥빙수를 즐겨먹으면서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곳 사람들에게 본의아니게 휘말리던(?) 타에코는 결국 참지 못하고 민박집을 바꾸기로 짐을 챙켜 나선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그 민박집에 되돌아온다.


  그러나 그 여정 중에 타에코는 무거운 여행가방을 버리고서야 사쿠라의 자전거를 얻어탈 수 있었고 또 팥빙수의 값을 채소나 고사리손으로 접은 색종이, 음악연주로 대신하는 것과 감성으로 이해해야 하는 약도 등등의 새로운 체험을 하면서 그들을 좀더 이해할 수 있었고 그녀도 그들과 함께 사쿠라의 팥빙수를 먹으며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을 하면서 뜨개질을 시작한다. 그리고 멋진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에서 그녀의 안경이 바람결에 차창 밖으로 떨어졌지만 그녀는 결코 그 안경을 줍기 위해 되돌아가지 않는다....


                          <말씀에 접지하기; 마태 13, 22>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cafe.daum.net/ds0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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