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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베를린의 장벽은 무너졌건만...(베를린)
   2013/02/13  1:1


                                베를린의 장벽은 무너졌건만...

 

 십자가를 안테나로!
  지난 설명절 문화행사로 독일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남북 첩보원들의 액션을 그린 한국영화 ‘베를린’을 보면서 ‘제발 북한의 3차 핵실험만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면...’하고 간절히 기도했었는데...‘오늘 12시경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였고 우리나라 지질자원연구원은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규모 4.9의 인공 지진을 감지했으며, TNT 6kt~7kt을 폭파시킨 것과 같은 위력이라고 밝혔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영화‘베를린’에서 남북한 첩보원들이 서로 총격을 하며 피가 터지도록 싸우고 있을 때 그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평화로운 베를린의 시가지 모습과 시민들의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더 이상 북한이 핵무기나 미사일로 남한과 동북아를 위협하는 민족공멸의 길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통일독일의 베를린이 걸어간 평화의 길을 우리와 함께 걸을 것을 기원하면서 고 민요셉신부님의 묵상글‘브란덴부르크문’과 영화 ‘베를린’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브란덴부르크문 / 민요셉신부>

 

   저는 지난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 남쪽 LA에서 가까운 토렌스에 있는 성 보나벤뚜라 수도원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해 8월 6일자 LA 타임즈에 <만일 일본이 한국처럼 되었더라면?>이라는 제목으로 핵물리학자인 피터 짐머만의 논설이 소개되었습니다. 8월 6일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여된 날입니다. 바로 그 날을 기념하여 이 글이 소개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 사람으로서 위의 제목의 기사를 대했을 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 솔깃하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그 신문에 소개된 다음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일본은 히로시마에 원폭이 터지기 이전까지도 완전히 패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군부도 심지어 백성까지도 무조건적인 항복 또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든 항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육군은 전투할 수 있는 사단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었고, 해군은 바다로부터 쳐들어올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수천의 가미가제 항공기를 갖추고 있었다. 일본 군부는 하나의 방어책으로 조국과 천황을 위하여 자결을 받아들일 것을 계속적으로 훈시하였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두 가지 방법을 모색하였다. 전략적인 폭격이냐 아니면 상륙작전이냐. 그리고 세 번째 방법으로는 부드럽게 항복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한편 포츠담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은 일본 군부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 군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가급적 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한 방안으로 핵폭탄 투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 포츠담 회담에서 나온 의견으로 천황 히로히토의 안전을 보장하기로 합의를 본 연합국은 뉴멕시코에서 핵폭탄 투하를 실험하였다.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가한 관계자들은 히틀러가 싫어 망명한 사람들(주로 유태인)이 대부분이었다. 핵폭탄을 투하할 비행사에게 일본 현지 사정을 파악할 수 있는 훈련이 행해졌고 B-29로 핵폭탄을 투여할 만반의 계획이 세워졌다.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투하되기 전 일본 내각은 평화냐 전쟁이냐의 문제로 논란이 일었다. 내각의 결정이 평화를 택하는 방안으로 결정되지 않았고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투하되었다. 일본은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중순, 전쟁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연합군 대표에 의해 태평양 지역을 관할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스탈린의 소련군은 독일이 항복한 이후 3개월 만에 극동 지역의 전쟁에 개입하였다. 만주와 한국에 주둔하던 일본 군대가 미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철수하자 붉은 군대는 재빨리 힘의 공백이 생긴 지역을 치고 들어갔다.

 

  그리하여 한국은 38선으로 나누어지고 사할린제도는 일본 정부가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으로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소련이 점유해 버렸다. 태평양에서의 전쟁에 소련의 역할은 극히 미미하였다. 그러나 종전을 처리하는 협상 테이블에 앉은 소련의 요구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엉뚱하였다.(주: 피터 짐머만은 바로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였다.) 소련의 스탈린과 미국의 트루먼이 앉은 포츠담 선언에서 스탈린은 먼저 38도선을 일본에 적용하여 그 나눠진 북쪽을 소련이 통치하겠다고 제안하였다. 트루먼은 노(No!)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스탈린은 그러면 한반도를 38도선으로 분단하여 그 북쪽을 소련이 통치하겠다고 재차 요구하였다. 트루먼은 예스(Yes!)라고 응답하였다. 사실 소련은 전쟁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일본 영토 가운데 가장 풍요로운 공업지대인 북해도의 삿뽀로를 차지하는 것이 핵폭탄으로 만신창이가 된 오사카 이남의 남쪽을 가지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여겨 38도선을 나누어 북쪽을 자신의 소유로 하고 싶었는데 미국으로부터 거절당한 것이다. 만약 일본을 38도선으로 나누자는 소련의 제안대로 합의가 이루어졌더라면 지금 일본은 남일본과 북일본으로 나뉘어졌을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져 대치 상태를 유지해 온 것과 같이, 일본도 남일본, 북일본으로 남북한 옆에서 같이 대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가정으로 끝날 일이지만, 만일 트루먼이 한반도를 38도선으로 분할하자는 소련의 제안까지도 거부했더라면 오늘의 한반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사실 한반도가 38도선으로 분할될 그 시점에 한반도의 반대편에 위치한 패전국 독일은 연합군에 의해 동서로 나눠지면서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패전국도 아닌데 남북으로 갈라지고, 패전국인 일본은 남북으로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참 알 수 없는 역사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흘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0주년이 되는 그 해 1995년 8월에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르는데 큰 공헌을 한 트루먼 대통령의 미국에 살고 있던 나에게 피터 짐머만의 사설은 정말 충격적인 보고서였고 가슴을 쓰라리게 하였습니다. 왜 하필이면 우리나라가...?

 

   대희년인 2000년 1월 26일, 조명 불빛이 은은하게 비치기에 더욱 더 운치 있는 아름다운 통일독일 베를린의 밤, 나는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섰습니다. 브란덴부르크문 그 꼭대기에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가 어딘가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듯 활기찬 기상이 완연한 브란덴부르크문을 바라보면서 나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떠올립니다. 그러다가 나는 왜 이 밤에 이렇게 브란덴부르크문에 서 있는가 하고 물음을 던집니다. 왜? 머나먼 이국 독일 땅에 그것도 베를린에, 하물며 브란덴부르크문에 왜 나는 서 있는가? 예전 서독 쪽의 6 · 17 거리와 동독 쪽의 운터 덴 린덴 거리가 만나는 중심에 있는 브란덴부르크문. 지금은 통일독일의 상징이지만 예전에는 베를린 장벽의 중심으로 동독과 서독을 갈라놓았던 분단의 상징이었습니다.

 

   불현듯 어떤 외침이 들렸습니다. 아니 그것은 고함소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 굳게 닫혀 있어 드나드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었던 예리고성을 향하여 "와-"하고 부르짖던 그 함성(여호 6,1~20a), 마침내 그 두텁던 예리고성을 허물어 버린 그 고함소리가 분명히 들렸습니다. 1945년 8월 2일 이후로 굳게 닫혀 있었던 그 두터운 베를린 장벽이 조금씩조금씩 허물어지더니 마침내 44년이나 묵고, 묵었던 그 무거운 체증이 1989년 11월 9일 그 날에 마침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그 드높은 함성으로! 아 그때 그 함성, 물밀 듯이 몰려와 울부짖듯 외치던 그 함성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1989년 11월 9일의 그 역사적 사건을!

 

   그러자 깊은 영상 속에 하나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분단의 벽, 한 맺힌 우리 민족의 분단의 벽이 허물어져 내려앉는 그 찬란함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1945년 소련의 스탈린과 미국의 트루먼이 테이블에 앉아 너무도 쉽게 갈라 버린 그 분단의 벽이, 6 · 25라고 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50년도 넘게 철통처럼 굳게 닫혀 있던 그 분단의 벽이,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분단의 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문에 서서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우리 민족의 두터운 분단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문득 밤새 걸어왔던 6 .17 거리를 되돌아보았습니다. 바로 거기 그 자리에 하나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그 동상의 인물은 두 손을 나팔 모양으로 입을 감싼 채 어딘가를 향하여, 아니 누군가를 향하여 외치는 나팔수의 표정이었습니다. 아니 그가 바라고 외치는 곳은 다름 아닌 브란덴부르크문 저 너머의 또 다른 세계, 동쪽의 세상이었습니다. 그렇게 6 · 17 거리의 끝자락에서 운터 덴 린덴 거리를 연결하는 브란덴부르크문 저 너머의 동베를린을 향하여 서 있는 하나의 동상을 일상의 신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동상에 적혀 있는 작품의 주제는 이름하여 였습니다. 우리말로는 '외침'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탑돌이 하는 마음으로 동상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곤 동상에 적혀 있는 글귀를 있는 그대로 옮겨보았습니다:

 ICH GEHE DURCH DIE WELT UND RUFE: FRIEDE, FRIEDE, FRIEDE

 

1889년에 태어나 1981년에 세상을 떠난 게하르트 마르크스가 「DER RUFER」라는 주제로 작품화한 동상에 1304년에 태어나서 1374년에 세상을 떠난 프란치스꼬 페트라르카의 글이 독일말로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 글귀를 우리말로 풀어보았습니다.

 나는 세상을 향해(나아가) 외친다: 평화! 평화! 평화!

 

   마치 엘리엇이 『황무지』의 다섯 번째 시, <천둥이 한 말>의 마지막 끝맺음에서 산스크리트어로 "Shantih, shantih, shantih"(평화, 평화, 평화)라고 외쳤던 것처럼 서쪽 사람들은 브란덴부르크문 저 너머 동쪽의 황무지(?)를 향하여 "평화, 평화, 평화"를 소리 높여 외쳤던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끊임없이 외치고 외친 결과 견고하기만 하던 예리고성이 무너져 내렸던 것처럼 그렇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민족의 비애인 분단의 장벽이 하루 빨리 무너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그렇게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브란덴부르크문에 서서 ….

 

   브란덴부르크문. 그것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서쪽에서 이어져 오는 6 ·17 거리가 맞은 편 동쪽에서 마중나오는 운터 덴 린덴 거리와 만나면서 남북으로 이어진 브란덴부르크문과 하나가 됩니다. 그렇게 브란덴부르크문은 동서남북이 만나는 십자가 형상입니다. 그렇습니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만나는 분단과 통일이라는 도식에서 나는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브란덴부르크문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를 만나 평화를 외쳤습니다.

그렇게 베를린을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통일을 보았습니다.

                                                         

                            (고 민요셉신부님의 ‘하느님의 결혼식’ 중에서)

 

                                                     
                                              <영화 ‘베를린’>

 

   거대한 국제적 음모가 숨겨진 운명의 도시 베를린. 그 곳에 상주하는 대한민국의 국정원 요원인 진수(한석규 분)는 불법무기거래장소를 감찰하던 중 국적불명, 지문마저 감지되지 않는 일명 ‘고스트’ 비밀요원인 북한의 첩보원인 종성(하정우 분)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국정원팀들과 도청, 감시를 하며 뒤를 쫓던 진수는 그 배후에 숨겨진 엄청난 국제적 음모를 알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진다.

 

   한편 베를린에서 거물(?)이 되어가는 종성을 제거하고 베를린을 장악하기 위해 파견된 북한군 장성의 아들인 명수(류승범 분)는 종성의 아내 정희(전지현 분)를 반역자로 몰아가며 이를 빌미로 그들의 숨통을 조이고 또 그들의 모든 것에 위협을 가한다. 그러자 북한에서 영웅칭호를 받았던 종성은 명수의 협박 속에서 아내 정희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녀를 미행하게 되지만 그녀가 미대사관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말씀에 접지하기; 에페 2, 14-17 >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http://cafe.daum.net/ds0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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