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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엄마의 옷을 기우며...(엄마)
   2013/02/19  23:8

                                          엄마의 옷을 기우며...

 

  십자가를 안테나로!
  최근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의 든든한 보호조끼가 세탁기의 강력한 세척력에 못이겨 헤어져 구멍이 난데 이어 어제는 자줏빛 상의 어깨부분까지 탈색되고 또 헤어져 구멍이 난 것을 보고 저는 오늘 드디어 작심(?)을 하고 바늘과 실을 준비하여 요양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서툰 바느질을 하는 동안 엄마는 욕창치료를 위해 체위변경을 한 벽을 바라보고 열심히 옛날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 하도 장난을 치고 하니 동네 어르신들이 날 보고 절름발이한테 시집을 보내겠다고 하셨지...근데 결국 내가 상이군인인 네 아버지와 결혼한 것을 보면 그 어르신의 말이 맞네...”

 

   저는 매일 똑같이 듣는 엄마의 옛이야기를 맞장구를 치며 재미있다며 들어드리다가 전에 어디선가 읽은 바느질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라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오히려 들려드렸습니다.
  <한번은 어린 딸이 누워서 한밤중에 자지 않고 열심히 십자수를 놓고 있는 엄마에게 “엄마, 지금 엄마가 열심히 놓고 있는 십자수가 엉망인 것 같아요....”라고 불평을 하자 엄마는 딸에게 “애야, 그건 네가 지금 누워서 십자수를 올려다보니 엉망인 것 같이 보인단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 내가 놓고 있는 이 아름다운 그림을 보렴....”하고 충고를 했대요....>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드리는 저의 목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리는지 엄마는 어느새 눈을 감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제가 더 바느질을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헤진 옷들을 기워드리며 그동안 누워서 엄마의 십자수를 불평한 못난 딸과 같았던 저의 헤진 마음을 같이 깁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것 같아 기뻤습니다. 참고로 지난 2004년 고 민요셉신부님이 부천 상동성당의 마지막 금요강좌에서 마침기도로 바치셨다는 김효순님의 기도시 ‘옷을 기우며...’와 영화 ‘엄마’를 차례로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옷을 기우며... / 김효순>

 

오늘은 분노의 파편으로 뚫어진

옷을 깁고 있습니다

온유하지 못함은 불같이 번져

앞자리까지 태우고 재만 남겼습니다

 

어제는 교만의 가시에 찔리고

그제는 이기심의 모서리에 긁혀

내일 또 무엇으로 내 옷이 헤어지겠습니까

 

어떤 회개의 보랏빛 천으로

바느질을 해야겠습니까

 

자꾸만 초라해지는 내 혼의 누더기

잘못 투성이로 헐고 때 묻었으나

성찰의 조각으로 깁기 위해

저녁마다 기도의 빨래를 합니다

 

이 세상 떠나는 날

부르실 때 입고 당신께 가렵니다

 

새 것은 아니지만

가장 깨끗한 내 영혼의 옷

비로소 차려입고

나 당신께 가려 합니다.

 

 

                                              <영화 ‘엄마’>

 

   땅끝 마을 해남에서도 차를 타고 1시간쯤 들어가야 하는 마을에 살고 있는 우리 엄마(고두심 분)는 나를 낳은 이후로 한번도 차를 타 본적이 없습니다. 차를 타 보기는 커녕, 지나가는 차를 보기만 해도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울럼증이 생긴답니다. 엄마는 마흔 살에 나를 낳은 이후부터 어지럼증이 생겼답니다. 그래서 둘째 오빠 제대할 때도 두 시간이나 걸리는 읍내 버스터미널까지 걸어서 마중 나가고, 큰 언니 결혼식에는 무리해서 택시를 탔다가 동네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포기하고, 결국 혼자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28년 전부터 우리 엄마에게 차는 더 이상 쓸모 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때마다 “나가 늘그막에 너를 날라고 너무 힘을 써버렸당게…”며 허허 웃습니다.

 

   그런 우리 엄마가 생애 첫 모험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렇게 씩씩했던 우리 엄마가 며칠째 머리를 싸매고 누웠습니다. 나흘 앞으로 다가온 내 결혼식에 꼭 와야 할 이유가 있다는데…… 가는 방법이 막막하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엄마를 위해 배를 타고, 가마를 태우고, 열기구를 띄우고, 수면제까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보지만, 결국 엄마가 내 결혼식에 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걸어서랍니다. 68세 늙은 엄마에게 해남 집에서 목포 결혼식장까지의 이백 리 길은 나흘을 꼬박 걸어야 당도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결심을 단단히 한 우리 엄마, 말리는 가족들에게 이런 최후통첩을 했습니다.
  “금지옥엽 내 새끼 시집 간다는디…사부짝 사부짝 걷다 보면 기일 안에 당도하겄제…. 그러고 막둥이 결혼식에는 나가 꼭 가야 할 이유가 있당께…..”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결사 반대를 외치던 가족들도 엄마의 이 한마디에 결국 함께 동행하기로 했답니다. 나흘 뒤에 있을 내 결혼식에 엄마는 무사히 걸어서 도착할 수 있을까요?
  “엄마, 미안해… 엄마가 어떻게 험한 산을 넘으면서까지 목포까지 걸어와… 그러게 힘들게 걸어오면서까지 오겠다는 이유가 뭔지 나한테만이라도 말해주면 안돼? 엄마한테 백분의 일도 못해주는 딸 결혼식,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내 결혼식에 걸어오신 울 엄마는 결혼식중 혼주석에 앉아 조용히 잠을 드시는듯 하늘나라로 가시고야 말았습니다...

 

                                  <말씀에 접지하기; 요한 2, 1-5>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http://cafe.daum.net/ds0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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