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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장 큰 선물 (예수성탄대축일 강론)
   2012/12/26  11:27

예수성탄 대축일

 

 2012 12 25 주교좌 계산성당


 성탄 축하합니다! 오늘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어제 밤에는 왜관에 있는 ‘분도 노인마을’이라는 양로원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습니다. 도지사님과 지역의 몇몇 기관장님들과 함께 했습니다만 평소에 그런 어려운 곳을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서 하느님과 그분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신비입니다. 이것을 ‘육화의 신비’, ‘강생의 신비’라고도 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천상의 자리를 버리고 이 지상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비천한 하나의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말씀처럼 하느님께서 당신 나라에 오셨지만 당신 몸을 누울 자리조차 없어 마구간의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얼마나 큰 자기 낮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어느 방송 프로에 ‘성탄절’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가장 많이 나온 것이 ‘선물’, ‘산타’, ‘눈’, ‘캐럴’이었습니다. 성탄절이 예수님의 생일인데 예수님은 어디로 가고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상의 성탄절입니다. 어제 밤 크리스마스이브에 서울 여의도공원에서는 ‘솔로대첩’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국의 솔로들이 자기 짝을 찾기 위해 모였다고 하는데 별로 성황을 이루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한산도대첩도 아니고 무슨 솔로대첩입니까? 이제 자기 짝을 찾기 어려우니까 무슨 전쟁처럼 하는가 봅니다. 하여튼 이런 것이 성탄절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성탄절을 영어로는 Christmas라고 합니다. Christmas는 Christ와 mass의 합성어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미사’가 됩니다. 그러나 또 이런 해석이 있습니다. ‘미사Missa’라는 말이 ‘보내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Mittere’에서 나왔으니 Christmas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낸다.’, 즉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한다는 말입니다. 하여튼 성탄절이든 Christmas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이라고 하면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말하지 않더라고 ‘사랑’이 생각난다고 하면 성탄절을 바로 알아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탄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 이 땅에 나타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선물입니다. 자신의 귀한 것까지 주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까지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오늘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사랑이며 이 얼마나 엄청난 선물입니까!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또 저물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로서는 교계제도 설정 및 대교구 승격 50주년을 지냈고 두 달 전에는 제2차 교구 시노드를 폐막한 의미 있는 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라 안팎으로는 안보와 민생, 교육과 복지의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둘러싸고 갖가지 논란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와중에 경기가 위축되고 일자리도 줄어들어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금세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밖으로부터는 전쟁과 재난의 소식도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저무는 해를 보내지만 우리 주변에는 희망을 걸어볼 만한 여지조차 없는 이들도 많이 있음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한 일주일 전에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 살림을 맡아 일할 새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그분은 당선 소감에서 화합과 상생의 새 정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념과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그야말로 국민행복의 새로운 정치를 펼칠 것을 기대해 봅니다. 특히 오늘날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경제의 양극화 현상을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분은 우리나라 헌정사상 첫 여성대통령이 될 것이기 때문에 부드러우면서도 깨끗하고 강인한 한국여성의 리더십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가실 것을 기대해 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정치에 왜 이렇게 관심을 많이 가지는가 하면 정치가 인간생활의 전 분야를 관여하고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가 바로 서야 국민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가 정치 쇄신이나 경제 민주화와 같은 긍정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법과 제도상의 개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사랑입니다. 스쳐지나가는 관심이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랑, 멀리 떨어져서 대책을 논의하는 도움보다는 찾아가서 함께 있어 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남아도는 것을 나누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보고 불편을 감수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을 뿐 아니라, 스스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 사셨습니다. 처음 오실 때에 그러하셨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2012년 이 성탄절에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이렇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모시고 우리도 그분처럼 살도록 합시다. 그분이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큰 선물이 되었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도록 합시다.


 은총 가득한 이때에 주님께서 모든 교우들에게 참 사랑을 충만히 부어주시기를, 그리고 그 사랑이 넘쳐나서 우리의 이웃에게 흘러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