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교구장/보좌주교 > 교구장 말씀
제목 믿음은 시작이요 사랑은 완성입니다 (성 이윤일 요한 축일미사 강론)
   2013/01/22  10:42

성 이윤일 요한 축일미사 2013


01. 21(월). 17:00 관덕정

 

 찬미예수님!
 오늘 우리는 스물 두 번 째 맞이하는 성 이윤일 요한제 마지막 날로써  우리 교구 제2주보성인이신 이윤일 요한 성인의 축일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윤일 요한 성인께서는 충청도 홍주(지금의 홍성)에서 태어나 살다가 박해를 피해서 상주 갈골에 와서 살았습니다. 부친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자 다시 문경 여우목(호항리)에 와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공소회장으로서 열심히 전교를 하고 신자들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866년 병인년 11월 18일에 갑자기 들어닥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체포되어 문경 관아에 끌려갔다가 다시 상주 진영으로 가서 심문과 고초를 당하였고 결국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압송되어 감사로부터 재판을 받고 1867년 1월 21일 이곳 관덕정 언덕에서 한실공소의 김예기 회장과 김인기 형제와 함께 참수치명하신 것입니다. 성인께서 돌아가신 바로 오늘이 성인의 축일이 된 것입니다.
 
 이번 이윤일 요한제는 ‘순교자와 함께 신앙의 해를’ 이라는 주제로 9일기도로 보낸 것으로 압니다. 9일 동안 아홉 분의 전국 각지의 성지담당 신부님들이 오셔서 강론을 해주신 것으로 압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지난 10월 11일부터 올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를 ‘신앙의 해’로 선포하셨습니다. 지난 10월 11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며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발행된 지 2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지난 20세기에 하느님께서 우리 지상 교회에 베풀어주신 큰 선물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가르치는 올바른 신앙을 우리가 늘 간직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것을 믿고 따라야지 엉뚱한 사람들의 이설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신앙의 자유가 있어서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일은 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 여러 군데에서 - 법으로는 보장되어 있다고 하지만 ? 탄압과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가 그렇습니다.
 지난 18일부터 이번 주 25일까지가 그리스도인 일치기도 주간입니다. 그래서 지난 18일 저녁에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개신교 대표들과 천주교 대표들이 함께 ‘전국 그리스도인 일치기도회’를 가졌었습니다. 대구에서는 처음 열렸던 행사였습니다. 그 기도회에서 ‘인도교회에서 보내 온 증언’을 어떤 분이 대신 봉독하였는데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그들이 사라 디갈(Sarah Digal)을 찾아왔을 때 그녀는 거기에 없었다. 사라는 다섯 자녀와 시어머니를 수레에 태우고 1km 떨어진 정글로 피신하였다. 그들은 사라가 집에 두고 간 것들을 모두 불태웠다. 액자로 된 예수님 상본, 오리야 말 성경, 세간붙이, 옷가지, 요, 내의 등이었다. 위험이 사라졌다고 확신하고 사라가 조심스럽게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은 사라지고 없었다. 타 다 만 잉걸불과 재와 연기만이 남아 있었다. 이웃들이 와서 사라와 함께 슬퍼하였다. 그녀는 찬찬히 바라보며 자세를 바로 한 다음, 사리를 머리 위로 단단히 올렸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주님, 저희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예수님, 당신만이 거룩하시나이다. 저희를 불행에서 구원하여 주소서. 주님, 저희를 해방시켜 주소서.” 목소리는 떨렸다. 사라의 자녀들도 같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사라는 울면서 하느님께 구원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녀의 이웃과 다른 주변 사람들도 같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이 순수한 인간적 연민의 유대는 그 무엇도 그녀를 하느님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음을 힘차게 드러내었다. “나는 죽겠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사라는 울면서 말했다. 그녀는 참으로 충실하고 용감한 달리트 그리스도인이다.
 
 인도에는 ‘카스트제도’라고 하는 사회계급이 있는데 그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천민 계층을 ‘달리트’라고 합니다. 이 증언에 나오는 ‘사라’라는 자매는 ‘달리트’라는 천민 출신이고 더구나 그리스도교(아마 가톨릭일 것입니다)를 믿는 사람이기에 그런 박해를 받았다고 봅니다. 오늘날 21세기에도 이런 폭력과 박해가 있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현실입니다. 오늘날도 신앙이 세상의 수많은 세력으로부터 위협과 도전을 강하게 받고 있는 신앙의 위기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신앙의 위기 시대에, 무엇보다도 이 신앙의 해에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삶과 생명을 주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하고,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강한 용기와 신념 속에서 신앙을 잘 간직하고 지켜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주님의 은총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9일기도 매일 기도지향이 아홉 가지의 성령의 열매이던데 열매를 다 맺었습니까? 아홉 가지 열매 이름을 다 기억하십니까?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 아홉 가지의 성령의 열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우리 마음 안에 그런 것을 간직하고 있으면 됩니다.
 이번 성 이윤일 요한제의 주제를 ‘순교자와 함께 신앙의 해를’로 해놓고 기도지향을 왜 성령의 열매로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영환 오토 신부님한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믿음은 시작이요 사랑은 완성입니다.’라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안티오키아교회는 초대교회에 있어서 아시아와 유럽 선교의 전초기지 내지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냐시오는 베드로가 세운 안티오키아 교회의 제2대 주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로마 황제의 박해로 로마로 압송되어 맹수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맹수의 밥이 되더라도 이냐시오 주교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이 성녀 아네스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아네스는 아네스의 미모에 사로잡힌 남자들의 어떤 감언이설에도 넘어가지 않고 결국 순교로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자신의 순결을 지켰던 것입니다.
 
 ‘믿음은 시작이요 사랑은 완성입니다.’라는 이냐시오 성인의 말씀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신앙인의 근본이요 시작이며 뿌리라는 것이며, 사랑이 바로 믿음의 완성이요 열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신앙인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으로 살아가고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모신 사람이요 성전을 모신 사람,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 거룩한 것을 모신 사람이며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으로 치장된 이들이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서간 9,2)라고 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은 사랑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은 믿음,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가장 으뜸 열매가 사랑의 열매입니다. 다른 열매들은 사랑의 열매를 잘 맺으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 22-26 말씀을 마지막으로 들어봅시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싸움을 걸지 말고 서로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갈라디아 5, 22-26)
 
 “믿음은 시작이요 사랑은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