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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와의 깊은 만남 (갈멜수녀원 종신서원미사)
   2013/03/22  9:27

 찬미예수님!
 이제 봄이 온 것 같습니다. 산수유에 이어서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피고 이제 목련도 피었습니다.
 그저께 주일날 오전에 교황님 선출 감사미사를 드리러 교구청의 몇몇 신부님들과 함께 승합차를 같이 타고 계산성당으로 가는데 총대리 신부님이 갑자기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봄입니다.”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돌이킬 수 없는 봄이라니요! 봄이 오는 것이 싫다는 말씀입니까?”하고 물었더니 총대리 신부님은 웃으시면서 “그것이 아니고 진짜 봄이 왔다는 말입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이제 완연한 봄이다.’라는 말을 강조하다 보니까 그런 강한 표현이 나온 것 같았는데 하여튼 이제 봄이 온 것 같습니다.
 제가 왜 봄이 왔다는 얘기를 장황하게 하느냐 하면, 지난 겨울이 하도 추웠으니까 이 오래된 수녀원 건물에 사시는 수녀님들은 더 추웠지 않았나 생각되어서 위로해 드리려고 한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그 모든 불편함과 어려움들을 수녀님들은 또 하나의 수도생활로 여기시고 잘 이겨내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작년 9월에 대구 가르멜 여자 수도원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여 감사미사를 드렸었습니다. 50주년을 즈음해서 오늘날 성소가 귀한 이 시대에 몇 명의 입회자들이 있었고 또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성면의 데레사 수녀님의 종신서원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고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종신서원을 하시는 성면의 데레사 수녀님에게 먼저 축하를 드리며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대구 가르멜 여자 수도원 회원 모든 분들에게도 축하를 드리며 더욱 깊은 친교와 나눔과 성장이 있기를 빕니다.
 
 성면의 데레사 수녀님은 종신서원을 준비하면서 지난 달 ‘주님 봉헌축일’에 저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거기에 의하면 수녀님은 ‘좋으신 하느님의 선물로 부모님께 신앙을 물려받고, 약 10년 전부터 나로부터의 내적 자유를 찾아 나선 동시에 고요한 그분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며 만유 위의 하느님께 이 사막을 걸어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하면서 성소의 길을 걷기 시작하신 것 같습니다.
 수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보다 앞서 가르멜 재속회원이 되신 부모님 두 분과, 일곱 형제자매들이 이루던 가정 공동체를 떠나와 이곳 대구 가르멜에 입회한 이후의 여정은 훨씬 단순했지만 단단한 자아의 첫 허물을 벗고 껍질을 깨트리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양성기간을 홀로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것은 외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불과했고 그 시간들을 통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고 놀라운 신앙의 선물을 받았기에 지금 이 순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데레사 수녀님은 지난 6년 동안을 막내로 지내면서 그리고 홀로 양성기간을 보내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요 선물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은 수녀원 ‘입회를 앞두고 찾아 뵌, 지금은 돌아가신 한 은퇴사제’께서 하신 말씀, 즉 “그리스도를 만나야 돼.”라고 하신 말씀이 늘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아마도 제가 생각하기엔 한 3년 전에 돌아가신 김경식 보니파시오 몬시뇰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일반 신앙생활이든 수도생활이든 주님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전임 교황이신 베네딕토 16세께서 올해를 ‘신앙의 해’로 선포하신 이유도 주님을 만나는 이 소중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만났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기도를 통해서 만나기도 하고 말씀을 읽고 듣고 혹은 묵상하면서 만나기도 하고 성체를 통하여 만나기도 하고 또 사람들과의 만남과 친교와 나눔을 통해서, 혹은 대자연을 통해서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갈수록 깊고 진한 만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때에 신앙의 기쁨과 신앙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되고, 그런 체험을 한 사람은 기쁘게 살 뿐만 아니라 어떤 유혹이나 시련이 온다 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수도생활은 주님과의 그런 깊은 만남을 통한 자기 봉헌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년 가을인가 ‘사랑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영국 런던 노팅힐에 있는 어느 가르멜 수녀원의 생활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한 3년 전에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것과 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사랑의 침묵’이라는 이 영화에는 몇몇 수녀님들이 인터뷰하는 내용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솔직하면서도 인간적이고 또 신앙적이어서 좋았습니다.
 그 영화에서 어떤 수녀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가르멜은 자기를 바치는 삶입니다. 그러지 않고 가르멜의 전례나 무슨 사도직이 좋아서 산다면 오래 가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대축일입니다.
 성 요셉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성가정의 가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감탄할만한 협력과 침묵으로 하느님의 구속사업에 큰 공헌을 하신 분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성 요셉이 얼마만큼 하느님의 신뢰를 받는지를 체험으로 알고 있다. 묵상기도에 전념하는 사람은 특별한 신심을 갖고 성 요셉을 공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자서전 6).
 제가 이 강론이 끝나면 종신서원 하실 수녀님한테 몇 가지 질문을 할 것입니다. 그 마지막 질문이 이것입니다.
 “자매는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항구히 기도하고 보속하며 동정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하느님만을 위하여 살기를 원합니까?”
 이렇게 사신 분이 바로 요셉 성인이시고 소화 데레사 성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일상의 보잘 것 없고 지루한 일까지도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하심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던 것입니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14일 새벽에 새로운 교황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나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전임 교황님 베네딕토 16세의 사임과 새 교황님 선출 과정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 이름대로 그리고 당신께서 지금까지 살아오신 대로 소박하고 검소하며 영성적인 목자로서 세계 교회를 잘 이끌어 가시리라 기대하고 참으로 이 시대와 우리 교회에 필요한 분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세속주의와 쾌락주의, 물질만능주의가 넘쳐나고 세계 곳곳에서 끝임없는 반목과 분쟁이 일어나는 이 시대에 영적 지도자로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해 열심히 기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오늘 종신서원을 하시는 성면의 데레사 수녀님께 다시 한 번 축하를 드리고, 수녀님께서 소화 데레사의 순결함과 단순함을, 그리고 대 데레사의 열정을, 요셉 성인의 그 성실함을,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겸손과 믿음을 본받아서 참으로 우리 주 하느님과 하나 되는 축복된 수도생활을 잘 해나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