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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의 희망 그 자체 (예수부활대축일미사 강론)
   2013/04/02  17:30

예수부활 대축일

2013년 3월 31일 19:00 삼덕 젊은이 성당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부활 축하합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탄절은 크리스마스라 해서 좀 아는 것 같은데 부활절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영원한 탄생일입니다. 모든 축일 중의 축일이요, 모든 주일 중의 주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일’이 뭐지요? ‘주님의 날’을 줄여서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주일은 하루 일을 쉬면서 주님께 감사드리고 미사나 예배를 드리는 날인 것입니다. 그 주님의 날이 구약에서는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날을 ‘안식일’이라고 하지요. 지금도 유대교에서는 안식일을 토요일에 지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날이 토요일이었는데 일요일로 바뀐 이유가 바로 예수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 첫 구절(요한 20, 1)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 보니...”
 어제 밤에 읽었던 루카복음에는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주간 첫날이 무슨 요일입니까? 일요일입니다. 달력을 보세요. ‘일 월 화 수 목 금 토’로 끝나지요. 일요일이 주말이 아닙니다. 주간 첫날입니다.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시고 일요일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는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에’라고 나옵니다. 안식일 다음날이 무슨 요일입니까?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이 토요일이니까 일요일이지요.
 그런데 마리아 막달레나와 여자들이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무덤에는 왜 갔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나, 안 하셨나를 확인하러 갔습니까? 아닙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손에 무엇을 들고 갔다고 합니다. 무엇을 들고 갔습니까? 향유입니다. 향유를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드리러 갔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전에 당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몇 번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향유를 발라드리려면 돌아가신 다음 날인 토요일에 가면 될 텐데 그날에는 안 가고 왜 그 다음 날, 즉 일요일에 갔습니까? 토요일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는 일을 할 수 없고 성전이나 회당 말고는 어디를 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 초대교회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마다 빈 무덤을 참배하였고 일요일마다 신자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주일미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이 주일미사의 원천이 된 것이고 주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부활의 의미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신자면 상식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누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해보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당시의 부활 사건을 지금 와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성서상으로 나타난 역사적인 증거를 몇 가지 댈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여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났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자 중에서도 대통령도 나왔고 총리도 나왔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여자들의 법적인 지위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여인들이 어떤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법적인 효력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4개 복음서 모두가 한결같이 여인들이 빈 무덤과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목격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달리 말해서 주님의 부활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실대로 기술한 것이라는 겁니다.
 
 두 번째 증거는 빈 무덤입니다. 무덤이 비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비었느냐는 데에는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라고 하고, 유대인 지도자들은 경비병들이 자고 있는 사이에 제자들이 와서 훔쳐갔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나중에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잠자고 있으면서 훔쳐가는 것은 어떻게 봤느냐?’ 하고 되묻습니다.
 하여튼 예수님께서 묻혔던 무덤은 비어있었고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 빈 무덤을 일요일 마다 순례하면서 참배를 하고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세 번째가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제자들의 변화된 삶과 힘찬 증거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악당들에게 체포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자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걸었던 희망이 사라졌고 그들의 꿈이 깨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도 예수님처럼 될까봐 두려워서 다 도망쳐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그 제자들이 거리에 나타나서 떠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는 그분을 만났다.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시다.”
 예수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선포는 어떠한 박해도, 어떠한 죽음도 개의치 않고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서 초대교회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놀라운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나쁘게 물들기는 쉬운데 선하게 변화되기는 어렵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여러 번 만났기 때문에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이상으로 볼 때 주님의 부활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금 와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행복하다”(요한 20, 29)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믿음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라면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즉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수난 받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희망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우리들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