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큰바위와 용나무가 된 사람들 (블라인드 사이드) |
2016/07/16 2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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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최근 흑백인종갈등을 심하게 겪고 있는 미국에서 매튜 화이트란 백인 아저씨가 길에서 자기의 짐을 들어준 천시라는 착한 10대 흑인소년의 딱한 사정(병든 엄마를 돌봐야하는 소년 가장)을 SNS를 통해 알려 2주만에 약 1억원의 성금을 모아 천시에게 전해주었다는 미담을 접하고 수년 전에 쓴 글을 올려봅니다.^^*
큰바위와 용나무가 된 사람들
십자가를 안테나로!
얼마 전 KBS- 1TV에 방영된 케냐의 빅마마 이경옥씨와 수단의 슈바이처 고 이태석신부님의 불우한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사랑과 희생의 아름다운 삶을 그린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오래 전에 읽은 '바위와 나무의 사랑'이란 아름다운 예화가 생각났습니다. 부디 험난하고 삭막한 환경 속에서도 단단한 큰바위(경옥과 태석)에 뿌리내린 꿈나무들(케냐의 청각장애자들과 수단의 톤즈 어린이들)이 부디 희망의 꽃을 피우고 또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기를 기원하면서 감동적인 예화 ‘바위와 나무의 사랑’과 역시 아프리카 사람들을 사랑하다 지난 2004년에 선종하신 고 민요셉신부님의 묵상글인 ‘아프리카의 용나무’ 그리고 불우한 이웃에게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실화를 그린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를 차례로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바위와 나무의 사랑>
오랜 풍화작용을 견디다 못한 바위들이 쩍쩍 갈라져 떨어져 내리는 어느 해변의 가파른 절벽에 어느 날 바위틈에서 파란 싹이 돋아났습니다. 그리고 그 싹이 바위에게 말하길
" 나 여기서 살아두 돼?"
" 위험해!! 이곳은 네가 살 곳이 못돼..."
" 늦었어.. 이미 뿌리를 내렸는걸..."
" ......"
" 넓고 넓은 세상을 놔두고 왜 하필 여기로 왔어?"
" 운명이야.. 바람이 날 여기로 데리고 왔어.."
바위의 그 좁은 틈에서도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바위는 나무를 볼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곳에 뿌리를 내렸으면 너는 정말 멋있는 나무가 되었을 텐데.."
"그런 말 하지마.. 난 세상에서 이곳이 젤 좋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무는 고통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물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 나무야, 뿌리를 뻗어! 좀 더 깊이.."
바위도 고통스러웠습니다..나무가 뿌리를 뻗으면 뻗을수록 자신의 균열이 심해졌습니다. 나무와 바위는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았고 이윽고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나무야!! 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 !! "
" 나무야, 난 이곳에서 십억 년을 살았어.. 그런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어. 난 너를 만나기 위해 십억년을 기다렸던 거야.."
"......"
" 네가 오기 전에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네가 오고 나서야 난 기쁨이 뭔지 알았어.."
" 나도 그랬어.. 이곳에 살면서 한 번도 슬퍼하지 않았어.."
그날 밤엔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나무는 바위를 꼭 끌어안고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바위는 나무에게 이렇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 네가 내 가슴에 뿌리를 내린다면 나는 너를 위해 기꺼이 날마다 쪼개지는 바위가 될거야...
(출처: 조진수 / 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
<아프리카의 용나무>
“그렇습니다. 용나무(아프리카의 천년이상된 용혈나무)는 이코드 데 로스 비노스 마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 헤아려보면 나는 참 많은 용나무를 만났습니다. 내가 오늘의 나로 바로 서기까지 나는 참 많은 용나무를 만났습니다. 그를 만나 넉넉해지고 그를 만나 풍요로워지고 그를 만나 강물같은 평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나의 용나무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용나무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나리아 제도에서 찾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 바로 용나무였습니다. 풍요와 지혜의 상징으로서 언제나 카나리아 사람들의 삶의 중심에 있는 용나무가 우리 삶의 중심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너무 닮았습니다. 자신의 몸인 껍질을 내어 놓아 마을 사람들에게 유용한 도구가 되고, 많은 가지와 무성한 잎을 뻗어 넓은 그늘을 만들어 쉼터를 만들어 주는 모습이 어쩌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들을 품에 안으시며 자신의 몸을 내어놓으시는 예수님과 너무 닮았습니다. 또한 ‘용의 피’라고 이야기하는 용나무의 열매에서 나오는 수지가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로 쓰이고 주술 을 물리치는 원료로 사용되는 점이 십자가에서 당신 피를 흘리시며 그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습이며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나도 용나무였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예수님처럼 어느 누구에게라도 넉넉하고 풍요로우며 평화로울 수 있는 그런 용나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멀고도 먼 카나리아제도의 작은 산골인 이곳까지 용나무를 찾아오듯이 나도 용나무를 닮아 용나무처럼 넉넉하고 풍요로우며 평화로운 사람이 되어 누군가가 찾아올 수 있는 그런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용나무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닮은 용나무처럼 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용나무가 되고 역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꼭 필요한 용나무가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온통 좋은 일로만 가득할 것이며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고 민요셉신부님의 ‘아프리카 아프리카 아프리카’중에서)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어린 시절 약물중독에 걸린 엄마와 강제로 헤어진 후, 여러 위탁입양가정을 전전하며 커가던 흑인소년인 ‘마이클 오어’(퀸튼 아론 분). 그의 건장한 체격과 남다른 운동신경을 눈여겨 본 미식축구 코치의 도움으로 백인 사립학교로 전학하게 되지만 이전 학교에서의 성적 미달로 마이클은 그토록 하고 싶은 운동을 시작할 수도 없게 된다. 급기야 그를 돌봐주던 마지막 집에서조차 머물 수 없게 된 마이클. 이제 그에겐 학교, 수업, 운동보다 하루하루 잘 곳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힘든 날들만이 남았다.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 밤, 차가운 날씨에 반팔 셔츠만을 걸친 채 그의 유일한 잠자리인 체육관으로 향하던 ‘마이클’을 발견한 백인 학부모인 ‘리 앤’(산드라 블록 분). 평소 불의를 참지 못하는 확고한 성격의 리 앤은 자신의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흑인 소년인 마이클이 지낼 곳이 없음을 알게 되자 자기 집으로 데려와 하룻밤 잠자리를 내어주고, 함께 추수감사절을 보낸다. 그리고 갈 곳 없는 그를 따뜻하게 보살피는 한편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그를 의심하는 마음도 지우지 못하던 리 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이클의 순수한 심성에 빠져 든 리 앤과 그녀의 가족은 그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한편 리 앤 가족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학교성적까지 향상된 마이클은 본격적으로 미식축구 훈련을 시작하며 놀라운 기량과 실력을 발휘하고, 리 앤은 그의 법적 보호자를 자청하며 마이클의 진짜 가족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주변 백인들의 의심어린 편견과 리 앤 가족은 ‘마이클이 언젠가 집을 떠나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마이클 역시 ‘리 앤 가족도 다른 위탁부모들처럼 자기를 이용할 지 모른다는 의심‘을 가지지만 그들은 가족이란 믿음과 사랑으로 이를 극복한다...
주: ‘블라인드 사이드’(Blind side)는 미식축구에서 쿼터백이 볼 수 없는 ‘사각지대’를 말하며 ‘우리 사회가 눈을 돌리지 못하는 불우하고 어두운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 영화는 실제 미식축구의 영웅인 흑인 마이클 오어의 가족 이야기이다.
<말씀에 접지하기; 1코린 13, 1-3>
(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cafe.daum.net/ds0y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