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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던 한 소년 (수취인 불명)
   2012/09/09  5:48

주: 201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 등 4관왕 수상을 한 김기덕 감독을 축하하며 지난 2006년에 그의 영화 '수취인 불명'에 대해 쓴 글을 올려봅니다. ^^*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던 한 소년


   십자가를 안테나로!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던 8살 소년이 있었답니다. 어머니의 피부색이 자신과 다른 것도 싫었고, 영어를 못하는 어머니가 숙제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도 싫었답니다. 그러나 올해 30살이 된 이 소년은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거립니다. 그리고 남에게 칭친을 받을 때는 늘 “모든 게 어머니 덕분”이라고 합니다. 이는 미국의 미식축구리그(NFL)의 결승전인 수퍼볼에서 우승 트로피와 함께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쥔 ‘한국인의 혼’ 한국계 하인스 워드의 이야기입니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는 워드)

 

   하인스 워드는 1976년 3월8일 서울에서 주한 미군이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55)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생후 5개월 만에 미국으로 건너간 워드는 아버지가 결혼 14개월 만에 영어도 서툰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면서 모자의 험한 인생은 시작됐었고 워드도 영어를 할 줄 몰라 양육권을 얻지 못한 어머니 품을 떠나 루이지애나주의 할아버지에게 보내졌습니다. 모자는 워드가 8살이 되는 해 애틀랜타의 작은 마을에 어렵게 정착하는데 어머니는 생존을 위해 하루에 세 가지 일을 했다고 합니다. 접시를 닦고, 호텔 청소를 하고, 잡화점 계산대에서 일했는데 어머니는 하루에 16시간씩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워드는 당시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흑인 친구들하고 놀다가 어머니가 오면 도망가기도 했는데 그것은 자신이 한국계라고 놀림 받는 게 제일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차로 워드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데 친구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을 보고 워드는 재빨리 차 시트 아래도 몸을 숨겼습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면서 어머니 눈에 이슬이 그렁그렁하는 것을 보고 당시 워드는 “나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를 내가 부끄러워하다니...”란 생각이 스쳤다고 합니다. 이후 워드는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도 “그래, 나는 한국인이다. 그게 내 인생이다”는 마음을 굳게 먹게 되었고 지금 워드의 오른쪽 어깨에는 한글로 ‘하인스 워드’란 문신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한국인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고교 시절, 워드는 미식축구는 물론 야구에서도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였는데 미식축구에선 쿼터백을 포함해 모든 공격 위치를 소화했고, 야구에선 1번 타자로 뛰며 타율 4할에 도루 35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고교 졸업 무렵 메이저리그 플로리다 말린스로부터 계약금 2만5000달러의 제안을 받았지만 그는 망설였습니다. 그 돈이면 어머니의 고생을 조금 덜어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워드는 “학업은 계속해야한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대학 진학을 선택하였고 대신 집(애틀란타)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조지아 대학을 택했는데 그것은 어머니를 홀로 두기 싫어서였답니다.


  대학에서도 그는 쿼터백, 러닝백, 와이드리시버를 모두 소화하는 만능 공격수로 통합니다. 고교 시절 주로 쿼터백으로 활약했지만, 대학 1~2학년 때는 주전 러닝백의 부상 공백을 메웠으며 빠른 발 덕분에 와이드리시버로도 뛰었습니다. 특히 워드는 대학 마지막 경기서 쿼터백으로 출전했으면, 리시빙, 러싱, 패싱 공격 3부분에 걸쳐 모두 1000야드를 돌파하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지만 그는 팀 승리를 위해 와이드리시버로 경기를 마쳤으며, 감독은 “워드는 희생을 아는 선수”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한 스포츠전문지는 “하인스 워드를 울리려면 어머니 이야기만 꺼내면 된다”고 썼습니다. 실제 그는 지난 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저는 어머니에게 신뢰의 가치, 정직,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배웠다”며 눈물을 글썽였고 또 워드는 한 인터뷰에서 “제 선수생활은 어머니의 인생과 비슷하다”며 “처음에는 맘대로 안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엔 잘 풀린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김영희씨는 한 스포츠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다. 겸손하라(Be humble)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지금 미식축구의 영웅이 된 한국계 하인스 워드는 어린 나이에 한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또 한국인 어머니를 원망하고 부끄러워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어머니를 자랑스러워하고 모든 영광을 어머니께 돌리는 지혜롭고 겸손한 청년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금년 4월에 어머니와 함께 모국인 한국을 방문하는 하이스 워드는 아직도 이 땅에서 ‘수취인 불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혼혈아들에게 ‘멋진 답장’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참고로 혼혈인에 관한 신문칼럼과 영화 ‘수취인 불명’을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혼혈인과 혼혈민족 / 이덕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이자 ‘한국통사(韓國痛史)’ 등의 저서를 남긴 역사학자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은 ‘몽배금태조전(夢拜金太祖傳)’이란 글을 썼다. “꿈에 금(金·여진족)나라 태조를 보고 절했다”는 뜻이다. 민족주의 사학자였던 그가 왜 ‘묘청(妙淸)의 난’을 유발시켰던 금나라 태조를 보고 절했을까? 그 이유는 “대금국(大金國) 태조 황제는 우리 평주인(平州人) 김준(金俊)의 9세손”으로 같은 민족이란 것이다. 이는 ‘금사(金史)’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여진족은 발해족의 변칭자(變稱者·고쳐서 달리 부르는 것)요, 발해족은 마한족(馬韓族)의 이주자가 많은지라”라는 글처럼 여진족(만주족)이 우리 민족의 한 갈래라는 것이다.


  고려 공민왕 때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지낸 김의(金義)는 술에 취해 횡포를 부리던 명나라 사신 채빈(蔡斌)을 살해하고 북원(北元)으로 달아나는데, 그는 고려사 등에 김야열가(金也列哥)란 이름의 호인(胡人)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개국(開國) 1등 공신이자 청해(靑海) 이씨의 시조인 이지란(李之蘭)도 두란첩목아(豆蘭帖木兒)란 이름의 여진족이었다. 만주족은 한민족처럼 알타이어 계통의 퉁구스(Tungus)계인데, 중국인들이 동쪽 민족을 ‘둥후(東胡)’라고 부른 것을 서양인들이 차음(借音)한 것이다.이런 혼혈·다민족의 국가 전통은 유학자들이 집권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중국으로만 연결시키고 동이족(東夷族) 계열의 만주·몽고족 등을 오랑캐로 내몰면서 현재의 왜곡된 순혈주의(純血主義) 사상을 낳았다. 펄벅재단은 한국에 있는 미국계 혼혈 아메라시안이 5000여 명, 아시아계 혼혈 코시안이 3만여 명으로 추정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 프로풋볼리그(NFL)의 하인스 워드에게 열광하기 전에 혼혈의 역사를 직시해야 일시적인 감정을 넘어서는 공존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비단 세계화 시대여서가 아니라 한민족 전통이 고구려나 발해처럼 다민족 혼혈사회였고, 신라·백제처럼 토착민과 이주민이 어우러진 사회였다. 이런 역사 전통을 복원하면 순혈주의의 폐해는 자연 치유된다. (출처: 조선일보 칼럼)

          

               <영화 '수취인 불명'>


  1970년대 말, 주한 미군부대가 주둔한 그 마을은 전쟁이 만들어낸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물이 흐르지 않는 웅덩이 같은 곳이다. 그곳에는 마을사람들에게 외면당한 채 혼혈아인 창국(양동근 분)과 함께 빨간버스에서 사는 양공주였던 창국이 엄마(방은진 분)가 있고 6. 25전쟁 때 얻은 다리부상이 유일한 자랑거리인 생활력 없는 지흠 아버지, 그리고 난폭하지만 유일하게 창국이 모자를 이해하고 돌봐주는 개눈이 있다. 개눈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창국이 엄마를 대하지만 자기 엄마에게 함부로 구는 창국에게는 분노를 느낀다. 그런데 창국이 엄마는 늘 우체부 아저씨편에 미국에 가서 곧 초청장을 보내주겠다던 창국이 아버지 즉 미군에게 편지를 보내어도 그 편지들은 ‘수취인 불명’이란 우체국 직인이 찍힌 채 되돌아오곤 한다. 그리고 그런 편지를 쓰고 또 미군 아버지로부터 답장을 기다리는 엄마를 창국은 늘 비웃곤 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 한 쪽 눈을 다친 가난한 집의 딸 은옥은 콤플렉스 때문에 폐쇄적인 성격이 되어 순수한 지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아지하고만 사귀다가 ‘결혼하면 눈을 고쳐주겠다’는 미군 제임스의 제의를 못내 받아들인다. 창국은 ''''튀기''''라는 말에 주먹을 휘두르고 엄마에게 발길질을 하는 거친 성격이면서도 나약하고 선량한 친구 지흠에게만은 진한 우정을 보여준다. 개장수 개눈에게 벗어나고 싶지만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지흠은 그들을 도우려할수록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절망하는데...


주: 영화 제목 ‘수취인 불명’에 대한 김기덕 감독의 말: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 길거리에는 주인을 잃은 ‘수취인 불명’이란 우체국직인이 찍힌 편지들이 많았었다. 그 편지들은 대문에 하염없이 꽂혀 있다가 바람에 이리 저리 날려 다니다 논바닥, 시궁창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나는 그 편지들을 볼 때마다 왠지 열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간혹 열어본 적도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 애절한 사연이 많았다. 나는 영화 [수취인 불명]의 주인공 은옥, 지흠, 창국이가 ‘주인이 없이 나뒹굴다가 버려진 편지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시대 자체로 수신되지 않은 아이들’이다. 그냥 버려진 편지 마냥 황량한 들판에서 창국은 완전히 짓밟혔고, 은옥은 반쯤 짓밟혔고, 지흠은 거친 잡초처럼 자라날 것이다. 나는 이 아이들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의미로 [수취인 불명]이란 영화제목을 지었다.

                  <말씀에 접지하기; 이사 49, 15>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cafe.daum.net/ds0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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