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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성사, 살아야 할 신비 (제2차 교구 사제 SINE 피정 미사 강론)
   2019/06/18  10:57

제2차 교구 사제 SINE 피정 미사


2019. 06. 13(목) 한티 영성관


우리는 지금 SINE Koinonia 피정 장엄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 전례와 성경말씀은 성목요일 주님만찬 저녁미사와 같은 내용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체성사와 사제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제1독서로 봉독한 탈출기 12,1-8. 11-14 말씀은 출애급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이 파스카 음식을 어떻게 장만하고 먹을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출애급 사건과 파스카 축제는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전례와 정신을 지배하는 사건이 되고 축제가 됩니다. 
오늘 제2독서인 1코린 11,23-26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저녁에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내 피로 맺은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24-25)
그래서 우리는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이 성찬례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이 성체성사 안에 사제로서의 신원과 정체성이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매일 미사를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전에 마르타 자매가 어떤 신부님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저를 두고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남기신 위대한 사랑의 증표가 성체성사입니다. 그냥 기념으로 남기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들의 양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오전에 강의실에서 빵과 포도주를 차려놓고 마르코 신부님이 성체성사의 세 가지 신비(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 성체성사에 관하여 발표하신 교황권고 ‘사랑의 성사’에 나오는 것으로, ‘성찬례, 믿어야 할 신비’, ‘성찬례, 거행하여야 할 신비’, ‘성찬례, 살아야 할 신비’)에 대해서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빵을 찢고 떼어서 나누어 먹고 포도주도 마셨습니다. 그 시간이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우리는 잠시 자신이 느낀 점에 대해서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 빵을 씹으면서 지난 월요일 독서기도에 나오는,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께서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글이 생각났었습니다. 
“나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나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맹수들을 유인해서 그들이 나의 무덤이 되게 할 뿐 아니라 내가 죽어 아무에게도 폐가 되지 않게 맹수들이 내 몸의 어떤 부분도 남겨두지 말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세상이 내 몸을 볼 수 없을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해 주십시오.”
참으로 리얼하고 생생하게 들리는 성인의 말씀입니다. 아까 빵을 씹으면서 나는 과연 이냐시오 성인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실 성체성사를 믿을 신비요 거행할 신비로 알고 그렇게 하지만, 살아야 할 신비로는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음식은 먹은 대로 몸에 영향을 줍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으면 에너지로 다 소비되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는 살로 갑니다. 질적으로도 좋은 음식을 먹으면 몸에 좋은 영향을 주고 나쁜 음식을 먹으면 몸에 나쁜 영향을 주어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매일 먹고 마시는데 우리는 왜 그리스도화가 잘 되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스스로를 ‘바보’라고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조에서 어떤 신부님이 나누기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신부가 되어 처음으로 아주 시골(천부) 본당신부로 갔는데 신자도 별로 없고 해서 할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봤는데 어느 날 동네를 나갔다가 어느 아주머니가 말하기를, “새로 오신 신부님은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공부를 하시네요. 애들아, 여기 성당 신부님 좀 본 받아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신부님은 그날부터 10년 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대신 책을 주문해서 책을 봤다고 했습니다. 2년 후 신부님이 인사발령이 나서 본당을 떠날 즈음에 그 아주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성당에 나와서 다음 신부님이 교리를 해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똑 같이 살지는 못해도 비슷하게나마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요한 13,1-15)은 세족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겉옷을 벗으시고 손수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수건으로 일일이 닦아주셨습니다.
사랑은 말이나 관념이나 생각이 아닙니다. 사랑은 허리를 굽히는 것이고 이웃의 발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사실 제 자신부터 그게 잘 안 됩니다. 
사실 그렇게 허리를 굽히고 남의 발을 씻어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해만 끼치지 않아도 훌륭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뒷담화만 안 해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서로 생각과 뜻이 맞지 않은 이유로 다투게 되고, 그러다가 사랑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미움과 시기, 더 나아가 해코지까지 해대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되는데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들 서로 잘났고, 최소한 이것만은 밑질 수 없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물러설 줄을 모릅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사랑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위해서 조건 없이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더 이상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고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먼저 존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