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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섬기는 사람 (2024 부제 사제 서품미사 강론)
   2024/01/11  17:24

2024 부제 사제 서품미사

 

2024. 01. 09.(화) 주교좌 범어대성당

 

오늘 이 미사 중에 일곱 명의 신학생들(김현종 안젤로, 박천주 안드레아, 김성연 사도 요한, 서정우 스테파노, 김견수 이냐시오, 성민석 유스티노, 김민준 아우구스티노)이 부제품을 받고, 여섯 분의 부제님들(조승현 율리아노, 김성록 사도 요한, 박철수 베네딕도, 이진효 살로몬, 전진용 가브리엘, 김창교 루카)이 사제품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크신 은총을 내리시어 참으로 당신 마음에 드는 성직자로 태어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구의 주보이신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서 이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께 전구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 사람들은 오래전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수년 동안 학업과 수련을 동시에 다져오다가 오늘 드디어 부제로, 그리고 사제로 성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서품식이 끝나면 이 사람들은 신분이 달라집니다. 신학생이었다가 부제가 되어 성직자가 되는 것이고, 부제였다가 드디어 사제가 되는 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계급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주님의 자녀요, 똑같은 주님의 종이며, 똑같은 주님의 일꾼인 것입니다.

부제가 되고 사제가 되면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긴 합니다. 사제는 거룩한 직무, 즉 성무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제의 직무는 천사도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사제만이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베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는 일입니다. 일반 신자들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만, 성직자는 더욱 모범적으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올해 4월에는 우리나라에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습니다.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있고, 그것도 치열하게 하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국민의 심복이, 일꾼이 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과연 그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참된 국민의 심복이 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망하여 아예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투표해야 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을 뽑기는 뽑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처지이기도 합니다.

사실 지도자가 되는 것보다 참된 지도자로 사는 것이 어렵고 중요합니다. 사제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 사제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열 분이 넘는 대통령이 계셨지만,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는 분은 별로 없습니다.

조선시대 500년 역사에서 왕이었음에도 왕이라 불리지 않는 왕이 두 사람 있었습니다. 연산군과 광해군입니다. 연산군은 12년간 왕으로 있었고, 광해군은 15년 동안 왕으로 통치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후대의 역사가들이 왕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연산군은 아시다시피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고 폭정을 휘둘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광해군은 좀 억울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세자로서 아버지 선조를 도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애를 썼었고, 왕이 된 후에는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치며 나라를 안정시키고 대동법을 실시하는 등, 백성을 위한 선정을 베풀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인목대비를 유폐시킨 것 등의 몇 가지 잘못을 반대파들이 구실 삼아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서 쫓겨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삼촌을 쫓아내고 정권을 잡은 인조는 정치를 잘했습니까? 작년에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는 TV 드라마가 방영되었습니다. 인조가 반정으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그 앞보다 정치를 잘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반대로 가고 있었습니다. 백성과 나라보다는 자기 목숨 보전만 생각하는, 참으로 지지리도 못난 사람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는 청나라에 볼모로 가는 소현세자의 통역관으로 따라가서 세자만이 아니라 수많은 조선의 포로들을 목숨을 걸고 구해내고 끝까지 돌보았던 한 역관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드라마는 누가 진짜 임금인지, 누가 진짜 충신인지, 누가 정말 나라를 생각하고 누가 백성을 섬기는 사람인지, 그리고 누가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20, 25-28)은 사제서품 때 자주 듣게 되는 말씀입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는 백성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백성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예수님의 이 말씀의 요점은, 백성에게 군림하거나 세도를 부리지 말고 백성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왕직’은 섬기는 것이고 봉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자꾸만 가르치려 들고 다스리려고만 하는 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에 어떤 신부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옛날에 은퇴하신 신부님들 시대는 ‘왕정 시대’였고, 최근에 은퇴하시는 신부님들은 ‘왕자 시대’에 사셨고, 현재는 ‘평민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평민 시대에 살면서 자신이 마치 왕이라도 된 듯이 사는 신부님들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님들이 다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가톨릭교회는 시노드 중에 있습니다. 시노드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온 교회가 고민하고 대화하고 경청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시노드적인 교회가 되지 않으면 앞으로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구는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10년 장기 사목 계획에 따라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친교의 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참으로 친교를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친교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고 만나고 경청하고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성직자부터 시노드적인 사람이 되고, 친교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제가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늘 겸손하게 기도하면서 노력한다면 분명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부제품을 받고, 사제품을 받게 될 이 사람들이 성품성사를 통하여 주님의 더욱 충실한 제자요 목자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다 함께 열심히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