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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는 날이 천상 탄생일이 되기를 (성 이윤일 요한 축일미사 강론)
   2024/01/24  13:23

성 이윤일 요한 축일미사

 

2024. 01. 20.(토) 관덕정순교기념관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교구는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10년 장기사목계획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친교의 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친교의 사람이 되고 우리 교회가 친교의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께서는 1867년 1월 21일에 이곳 관덕정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성인의 유해는 처음에는 관덕정 형장 근처에 임시로 묻혔다가 얼마 후 후손들이 비산동 날뫼 뒷산에 모셨습니다. 그 후 후손들이 1912년에 경기도 용인 묵리로 이사 가면서 그리로 다시 모셔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1976년 6월 24일부터는 경기도 안성 미리내 성지의 순교자 묘역에 모셨습니다.

그 후 10년 후인 1986년 12월 20일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께서 당시 수원교구 김남수 주교님과 합의하여 성인의 유해를 미리내 성지에서 우리 교구로 모시고 오셨습니다. 대구에서 순교하신 후 약 120년 만에 다시 대구로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1987년 1월 21일에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께서 성김대건기념관에서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이윤일 요한 성인 순교 12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시면서 성인을 교구 ‘제2주보 성인’으로 선포하셨습니다. 그 후 성인의 유해는 성모당 제대 밑에 모셨다가 4년 후인 1991년 1월 20일에 관덕정 순교기념관을 준공하면서 성인의 유해를 이 성당 제대 밑에 안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4개의 큰 박해가 있었는데 1866년에 일어난 병인박해가 가장 크고 혹독한 박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병인박해는 아들 고종을 등에 업고 대원군이 섭정을 하면서 펼쳤던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시대에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서 300여 년을 지배했던 막부를 몰아내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원군이 7여 년이나 권력을 휘두르는 동안에 수많은 신자들이 신앙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도 그 병인박해의 연장선상에서 순교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구와 한국천주교회가 순교자 현양 운동과 현양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치게 된 것은 병인박해 100주년을 즈음하여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968년 10월 6일에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에 의해서 병인박해 순교자 24위가 복자품에 올랐었는데 이윤일 요한 성인도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한티성지 도보순례도 이즈음에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구는 전 교구민이 모금을 하여 순교자 기념성당인 복자성당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천리 묘지에 계시던 세분의 순교자들의 묘를 이장하여 복자성당 앞 정원에 모셨던 것입니다.

그 후 한국천주교 선교 200주년을 맞이하여 순교자 현양 운동과 사업은 더욱 활기를 띄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4년 5월에 한국 선교 200주년을 맞이하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셨고, 5월 6일에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이 있었습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도 그때 시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올해가 성인께서 시성되신 지 40년이 됩니다.

한국천주교 선교 200주년과 103위 시성식을 맞이하면서 순교자 현양 운동과 사업은 절정을 이루었다고 하겠습니다. 이즈음에 우리 교구는 한티순교성지와 관덕정순교성지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팔공산 한티에 있는 교우촌 일대를 매입하였으며 피정의 집을 지어 개관(1991년 10월 20일)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구 관덕정의 부지(155평)를 매입(1983년)하였고, 이곳에 순교기념관을 지어 봉헌(1991년 1월 20일)하였던 것입니다.

올해로 관덕정순교기념관 개관 33주년이 되는데 지난 33년 동안 매해 성 이윤일 요한제를 실시해 왔습니다. 올해는 오랜만에 어제 저녁에 범어대성당 드망즈홀에서 ‘순교자 현양 음악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성음 앙상블’과 새로 만든 ‘베아타 신포니에타’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올해가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 선종 3주기가 되는데, 이 모든 것이 이 대주교님의 순교자 영성의 결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대주교님을 도와서 한티 피정의 집과 관덕정 순교기념관을 세우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신 김경식 보니파시오 신부님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일(1월 14일)이 구본식 안드레아 신부님 선종 2주기였는데 구본식 신부님도 이곳 관덕정순교기념관장과 영남 교회사 연구소장을 다년간 맡으면서 순교자현양운동과 시복시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박해시대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순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배교자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작년 3월 25일에 포항 흥해본당 청하공소를 새로 지어 봉헌하였습니다. 공소이지만 별칭으로 ‘최해두 회심 경당’이란 이름을 덧붙였습니다. 최해두라는 분은 한국천주교 초창기의 신자였는데, 1801년 신유박해 때 배교를 하고 흥해로 유배를 와서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남긴 ‘자책’이라는 글에 자신이 배교한 것을 뉘우치고 회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분의 아들이 최영수 필립보인데, 교회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다가 기해박해 때 한양에서 순교하였고 지금 한국교회에서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배교를 하였지만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깊은 고뇌와 갈등과 번민 속에서, 그리고 온몸이 떨리는 전율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용감히 순교함으로써 하느님을 증언하고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로마 8,31-39)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35)

그 어떤 것도 그분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순교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많은 순교자들과 성인들의 이런 굳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성인들의 축일은 대개 돌아가신 날로 지냅니다. 그날이 바로 ‘천상 탄생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상 탄생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상 탄생일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라는 시에 손상오 신부님께서 곡을 붙인 노래를 성음 앙상블이 불렀었는데,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귀천이 되고 천상 탄생일이 되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우리가 죽는 날이 천상 탄생일이 되기 위해서는 잘 죽어야 하는데,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과 복자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