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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신도 희년을 맞이하며 (전국 가톨릭 경제인회 피정 미사 강론)
   2017/11/06  13:30

전국 가톨릭 경제인회 피정 미사

 

2017. 11. 03. 한티순교성지

 

전국 가톨릭 경제인회 피정을 이곳 한티순교성지에서 갖게 된 것을 축하드리며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한티성지는 순교자들이 살았고 죽고 묻힌 곳입니다. 이곳에는 37기의 순교자 무덤이 있지만 이름이 밝혀진 무덤은 조가롤로 가족 세 분과 서태순 베드로뿐 대부분 무명 순교자 무덤입니다. 그래도 한티는 완벽한 순교성지라 할 수 있습니다. 순교자가 살았던 곳이든지, 혹은 죽었던 곳이든지, 혹은 묻힌 곳이든지 그 중에 하나만 해당되어도 성지인데, 이곳 한티는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성지인 것입니다.
한티성지는 대구교구의 모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구읍내에는 신자가 전혀 없던 시절,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때 경상도 북부지방에서 숨어살던 신자들이 체포되어 대구에 있는 경상감영 옥에 갇히게 되고 재판을 받게 됨에 따라 그 가족들이 옥바라지하기 위해 따라와 대구 근교인 이곳 한티 산골짜기에 교우촌을 이루고 살 게 된 것입니다. 
박해시절에 샤스땅 신부님이나 다블뤼 신부님, 그리고 최양업 신부님 등이 전국을 다니시면서 사목을 하셨는데 경상도에도 여러 번 다녀가셨을 것입니다. 경상도 담당 사제로 정식으로 발령을 받은 사제는 1885년 칠곡 신나무골에 정착을 하신 김보록 로베르 신부님입니다. 이것이 대구본당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교 사제들이 사목하기 전부터 우리 신자들은 자체적으로 자발적으로 신자공동체를 이루고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전교를 하였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시작도 그랬습니다만, 이것은 한국 교회의 발전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 원동력을, 그 정신을 오늘날 우리들이 계속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가톨릭교회에 교계제도가 있고 성직자들이 지도자가 되어 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평신도들이 수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만, 특별히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의 그런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 큰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내년이 한국 평협 50주년이 되기 때문에 한국 평협의 건의를 지난 추계 주교회의에서 받아들여 이 달 19일부터 내년 11월 11일까지를 ‘평신도 희년’으로 선포되었습니다. 평신도 희년에 평신도로서 그 위치와 사명을 재점검하고, 더 나아가 가톨릭 경제인으로서의 소명과 역할을 다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구대교구는 2011년에 설정 100주년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내년이면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성모당 100주년이 뭐 그리 중요한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대구교구 설정과 초대 주교님의 정신이 성모당 봉헌에 담겨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1911년 4월 23일 아침 8시에 서울에서 경향신문 사장으로 일하고 있던 드망즈 플로리아노 신부님의 사무실에 당시 조선대목구장이신 뮈텔 주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것은 드망즈 신부님에게 대구대목구 주교가 되셨다고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드망즈 주교 일기’ 서문 참조) 
이렇게 주교가 된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은 그 해 6월 26일에 대구에 부임하였는데 성당이라곤 대구본당(현 계산주교좌성당) 하나만 덜렁 있을 뿐, 교구로서 아무 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허허벌판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임 후 처음 맞이하는 주일인 7월 2일에 루르드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교구 주보로 모시고 세 가지를 도와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그것은 주교관 건립과 신학교 건립, 그리고 주교좌성당 증축이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성모님께서 이 세 가지를 도와주신다면 주교관을 위해 예정된 대지 안의 가장 훌륭한 장소에 루르드 동굴과 닮은 동굴을 세워 봉헌하겠다고 서약을 하시게 됩니다. 놀랍게도 그 세 가지가 몇 년 안에 이루어짐에 따라 성모당을 건립하여 1918년 10월 13일에 봉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구본당의 초대회장을 하신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회장님의 역할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서상돈 회장님이 국채보상운동을 제창한 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며칠 전에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유산기록물로 등재되었습니다. 
1911년 7월 5일자 드망즈 주교 일기를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대구 교우들의 우두머리인 서 아오스딩이 주교관과 수녀원 부지로 두 곳의 아주 좋은 대지를 약속했다.”
서상돈 회장님은 남산동 일대의 만 여 평을 교구에 기증하셨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대구교구청과 성모당과 샬트르 수녀원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 대구교구는 ‘100주년 기념 주교좌 범어대성당’을 건립하여 작년 5월 22에 봉헌하였습니다. 100년 전에 안세화 주교님께서 얼마 되지 않는 교구의 자금을 쓰지 않고 신자들의 봉헌과 외국 은인들의 희사로 그 세 가지 사업을 완수하였듯이 범어대성당의 건립도 순수 신자들의 봉헌으로 완성하였던 것입니다. 대성당 건립에 있어서 특별히 가톨릭 경제인 분들의 희사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성당은 다 되었는데 해결되지 않은 것이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파이프 오르간이었습니다. 원래 오르간을 기증하기로 구두로 약속하셨던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몇 년 전에 돌아가심으로써 기증이 취소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기증자가 나타나기를 기도하면서 추진을 하였습니다만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할 때까지 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성당을 봉헌하고 이틀 후에 놀랍게도 기증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100년 전 안세화 주교님은 성모님께 허원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결코 물질적인 걱정 때문에 복음화를 위한 유용한 사업의 기초를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화를 위한 간절한 기도와 굳건한 믿음만 있으면 하느님과 성모님께서 이렇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로마서 9,3) 
바오로 사도께서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육적으로는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며, 동포들을 정말 사랑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아는 가치를 최고로 여기며 사는 사람이다.’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바오로 사도와 같은 이런 신앙과 정신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톨릭 경제인으로 오늘을 살면서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의 그 신앙과 정신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와 이 사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신앙의 정신으로 기쁘게 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