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교구장/보좌주교 > 교구장 말씀
제목 마지막 잎새 (위령미사 강론)
   2017/11/08  13:58

위령미사

 

2017. 11. 07. 성직자 묘지

 

위령성월을 맞이하여 오늘 우리는 교구 성직자묘지에서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께 가신 교구의 여러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신 우리의 부모님과 형제 친척들, 특히 연옥영혼들을 기억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가 위령성월을 지내는 이유는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만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우리들의 마지막을 잘 준비하라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계절적으로 11월이 되면 날이 추워지고 나뭇잎들은 낙엽이 되어 떨어집니다. 이것은 다가오는 겨울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이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몸짓이며 자기 비움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을 비워야 새로운 생명의 싹이 트는 것입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마른 잎처럼 몸이 버석버석해지고 아픈 데가 자꾸 생깁니다. 요즘 저도 나이가 듦을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때가 되어간다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슨 때가 되어간다는 말인가 하면, 하느님을 만나러 갈 때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나이 듦을 싫어하고 또 슬퍼하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긴 합니다만,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천상병의 ‘귀천’ 중에서) 
시인은 이렇게 이 세상 삶을 소풍 온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여유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들어 힘이 없고 아픈 데가 자꾸 생기고 하는 것은 이제 더 욕심 부리지 말고 낙엽 떨어지는 나무처럼 다 내려놓고 그분께 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자라면 하느님께 향하여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이 있습니다. 그것을 ‘대신덕’, 혹은 ‘향주덕’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신덕, 망덕, 애덕, 즉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 덕 중에서 ‘망덕’을 우리는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도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들을 많은 사람들한테서 보게 됩니다. 신자라면 늘 천국을 그리워하고 그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은 모습들을 가끔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마련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지혜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3,9)
 
사람이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이 세상 삶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중에 ‘마지막 잎새’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소녀가 병이 들어 누워있는데 창문 너머 담벼락에 붙어있는 담쟁이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담쟁이 잎은 하나 하나 떨어지는데 드디어 마지막 잎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날 밤에는 비바람까지 불었기 때문에 그 마지막 잎새도 떨어졌으리라 생각하고 아침이 되어 언니가 열어준 커튼 사이로 내려다보았는데 놀랍게도 그 마지막 잎은 담벼락에 여전히 매달려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며 그 소녀는 다시 기운을 차리기 시작하였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는데 그것은 아래층에 살던 나이 많은 화가 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비바람 치던 그날 밤 밤새 담벼락에 마지막 잎새를 그리고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한 사람의 생명이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굳은 희망으로 사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오늘 제2독서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로마 5,17.21)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주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