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자와 라자로 (범물본당 20주년 감사미사 강론) |
2022/09/27 16:18 |
범물본당 20주년 감사미사
2022. 09. 25. 연중 제26주일(다해)
범물본당 설립 20주년을 축하드리며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본당에 가득하길 빕니다.
범물성당은 이판석 요셉 신부님께서 지산본당에 계시면서 짓기 시작하여 2002년 9월 6일에 성당이 아직 완공되기 전에 신부님이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삼덕성당에 있던 ‘삼덕유치원’을 이곳에 이전하여 그 맥을 이어가도록 하였고, 그 해 5월 11일에 새 성전을 봉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본당 발전과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신 역대 신부님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역대 회장님들과 교우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오늘은 연중 제26주일이면서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전쟁과 가난과 기후변화로 수많은 이주민과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리아 내전, 미얀마 내전,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내전으로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겠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난민이나 가난과 기후변화로 고향과 고국을 떠나는 난민들을 세계가 끌어안아야 할 것입니다.
대구 시내 종로에 가톨릭근로자회관이 있는데 그곳에는 대구지역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난민들의 쉼터가 있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들도 우리의 이웃사랑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루카16,19-31)은 어떤 부자와 ‘라자로’라는 어느 가난한 사람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부자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라자로라는 가난한 사람은 그 부잣집 대문 앞에 몸이 아파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라자로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습니다. 이어서 부자도 죽었는데 그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라자로라는 가난한 사람은 죽어서 천당에 갔고 부자는 지옥에 갔는데, 왜 이렇게 죽은 뒤의 삶이 달라졌습니까? 부자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도둑질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라자로를 못 살게 굴었습니까? 아닙니다. 라자로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랬다고 하니까 라자로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는 비싼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잘못이냐고 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부도덕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아모스서도 당시 왕실과 일부 지도자들의 향락생활에 대하여 이렇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대접으로 술을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구나.”(아모 6,6)
반면 라자로는 가난할 뿐만 아니라 병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의지하고 희망을 둘 수 있는 분은 하느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진 것을 먹었지, 부자가 던져주거나 나누어 준 것을 먹은 것은 아닙니다. 부자는 자선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죽어서 하느님의 자비를 입지 못한 까닭은 생전에 그가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곳 범물동에 천주교 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유명한 두 분이 계시는데,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회장님과 김익진 프란치스코 선생님이십니다.
서상돈 회장님은 1907년 대구에서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의 창시자로 유명하시지요. 서상돈 회장님은 계산성당 회장을 하셨고 1911년 대구에 천주교 교구청이 들어올 수 있도록 남산동에 만 평이 넘는 땅을 교회에 기증하셨습니다. 그 분의 증손자들이 고 서인석 신부님과 부산교구 원로사제이신 서공석 신부님입니다. 이 두 분은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저희 은사이십니다. 그리고 서인석 신부님의 동생인 툿찡 포교 베네딕토 수녀회 로마총장 서 마오로 수녀님은 증손녀가 됩니다.
그리고 김익진 프란치스코 선생님은 일본강점기 시절에 일본과 중국에 유학을 했고, 어느 날 일본 고서점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구해서 읽고는 깨우침이 있어서 목포 산정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제3회에 입회하여 활동을 했고, 해방 후에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소작농들과 광주교구에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는 대구에 와서 김천 성의여중고 교감, 그리고 경주 근화여중고 교감을 하셨고, 레지오 마리애 직무수첩, 동서의 피안, 내심낙원 등을 번역하셨습니다. 이 분의 둘째 사위가 한국 교회사 강의로 유명하신 김길수 교수님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는데, 이 두 분을 보면 부자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사상을 잘 바꾸지도 않고, 자기 버릇이나 습관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말미에 보면, 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면 믿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 부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토마스라는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우리는 아직 믿음이 약합니다. 우리 힘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약한 우리들이 좋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