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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머무르라"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종신서원 미사 강론)
   2014/02/13  17:40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종신서원 미사 


2014. 02. 10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오늘 종신서원 하시는 다섯 분의 수녀님들, 축하드리며 주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오늘이 성녀 스콜라스티카 축일입니다.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주보성인이신 스콜라스티카 성녀와 사부이신 베네딕도 성인께서 오늘 종신토록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하는 우리 수녀님들을 위하여 특별히 하느님의 은총을 빌어주시기를 빕니다.

 베네딕도 성인과 스콜라스티카 성녀께서는 사후에까지 수많은 세월 동안 수많은 수도자들에게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기로 허원하는 사람들이 어떤 정신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쳤고 또 몸으로 보여주었던 분들입니다.

 오늘 이 두 분 성인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우리 수녀님들을 위하여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한 2년 전인가 ‘사랑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영국 런던 노팅힐에 있는 어느 가르멜 수녀원의 생활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그 전에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것과 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위대한 침묵’에서는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데 반해 이 영화에는 몇몇 수녀님들이 인터뷰하는 내용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영화에서 수녀님 한 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가르멜은 자기를 바치는 삶입니다. 그러지 않고 가르멜의 전례나 무슨 사도직이 좋아서 산다면 오래 가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가르멜이든 분도회든 관상수도회든 활동수도회든 수도생활의 본질은 자신을 바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어느 수도회의 전례나 사도직이 좋아서 산다면 본질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도자의 생명이 오래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수도자는 자신을 하느님께 바쳤기 때문에 이제 자신은 없고 하느님의 뜻만 있습니다. 종신서원을 한다는 것은 종신토록 하느님의 뜻만을 쫓아 살아가는 완전한 봉헌생활을 하겠다는 뜻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15,1-10)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언과 같은 간곡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처럼 오늘 복음말씀에 ‘머무르라.’는 말씀이 무려 열한번이나 나옵니다. 성직자든 수도자든 일생을 하느님께 바치려고 하는 사람이 예수님 안에 머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 머물지 않고서 뭔가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서원하시는 수녀님들은 수도생활의 기본은 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주님 안에 머무는 것이며 주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작년 3월에 우리 교회에 해성처럼 나타나신 분이 계십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작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2013년 올해의 인물’로 그분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남성 패션잡지 에스콰이어는 지난해 옷을 제일 잘 입은 인물로 그분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분이 옷을 특별히 잘 입는 것도 아닌데, 아마도 옷보다도 그분의 언행이나 그 내면을 본 것 같습니다. 그분이 다름 아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십니다. 그분이 교황으로 선출된 지 아직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께 열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그분께 놀라워하며 존경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지금 교회 안팎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13세기에 아시씨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랬듯이 예수님을 참으로 닮은 한 사람의 변화된 삶이 이토록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제대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고 우리도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연초에 ‘교황님의 열 가지의 새해 결심’이라는 것이 인터넷에 뜬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황님의 새해 결심이라기보다는 지난해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새겨들었으면 하는 말씀 열 가지를 어떤 사람이 간추려 놓은 것 같습니다. 

 열 가지 중에서 첫 번째가 “험담하지 마십시오. Don’t gossip.”입니다. 이 말씀은 지난여름에 교황님께서 신학생들과 수련수녀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동체생활에 대하여 하신 말씀 중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말씀이 “기쁘게 사십시오. Be happy.”라는 말씀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수녀님들에게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합니다. “제발 오이지 얼굴 좀 하지 마세요. 찌그러진 얼굴살을 펴고 기쁨으로 사세요. 신앙은 본디 기쁜 겁니다.”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한 수도자는 늘 기뻐하며 삽니다.

 교황님께서는 지난 2월 2일 봉헌생활의 날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이들의 삶은 세상을 더 정의롭게 하고, 형제애가 넘치도록 하는 누룩과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정결과 청빈과 순명의 정신을 사는 봉헌생활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증거하는 이들이며 하느님 백성을 위한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황님께서는 수녀님 없는 병원, 복지시설, 학교, 교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수녀님의 존재와 그 역할이 우리 교회와 이 세상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 스스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는 내년 2015년을 ‘봉헌생활의 해’로 지내기로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올해 11월 21일부터 내년 11월 21일까지를 ‘봉헌생활의 해’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수도자교령 반포 50주년을 맞이해서 선포한 것으로, 오늘날 성소자가 줄어드는 현상 앞에서 ‘성소의 활성화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고 봉헌생활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종신서원 하시려는 수녀님들은 물론이고, 이미 종신서원을 하신 수녀님들도 진정한 봉헌생활의 의미를 다시 마음에 새기며 주님 뜻대로, 그리고 자신이 서원한 대로 자신을 바치는 삶을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어제 연중 제5주일 복음(마태 5,13-16)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어떤 느낌이 듭니까? 저는 좀 송구스럽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세상 소금으로, 그리고 빛으로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런데 소금은 녹지 않고서는 제 맛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빛도 자신을 태우지 않으면 빛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4위의 시복이 결정되었다는 보도가 어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8월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곧 시복될 124위 중에는 대구의 순교자 20위가 계십니다. 순교자들이야말로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순교자들의 후손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종신서원 하시는 수녀님들께 축하와 함께 주님의 축복을 빌며 수도자로서 진정한 봉헌의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