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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음학 박사(연중 제 13주일)
   2012/06/29  14:5

죽음학 박사(연중 제13주일)

마르코복음 5,21-43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의 평균수명은 28살, 15-18세기 프랑스인 평균수명은 25살,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30살 안팎이었다. 19세기 말 서유럽의 평균수명은 37살이었다. 고려시대 귀족은 평균 39살, 임금은 42살이었다. 요즈음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수명은 82살, 여자들의 평균수명은 86살이라 한다. 1960년 우리나라 여자의 평균수명이 53살이었고, 남자의 평균수명은 52살이었다. 40-50년만에 여자는 33년, 남자는 30년을 더 살게 되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2천년 이후 태어난 아기들의 절반은 90살 이상 살 것이고, 100살 이상 살 사람도 10퍼센트가 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장수시대의 고민은 “오래 살되 어떻게 건강하고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 것이냐?”이다. 

 

어느 미국 고등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과과정은 ‘죽음에 관한 책, 시, 음악공부’, ‘장례식장과 묘지방문,’ ‘죽음에 관한 영화, 사진감상과 토론’ 들이다. 미국의 공립 초, 중, 고교에서 런 과목을 가르친 지는 30년이 넘었다. 미국에서 ‘죽음학 자격증’을 딴 사람은 8백 명이 넘는다. 독일에도 죽음에 관한 중고생용 교재가 20여 가지 이상이나 된다. 독일 출신 알폰스 디켄이라는 독일인 소피아 대 명예교수가 지도하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 회원은 일본에서 7천여 명이나 된단다. 일본정부는 2005년부터 4억 엔을 들여 학생들에게 가르칠 죽음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한 시립 복지관이 8년 전에 ‘노인 죽음학교’를 열었다. 수강생들은 가족들에게 줄 자서전과 유언장을 쓰고 영상편지도 만든다. 한림대에도 ‘죽음준비교육’이 개설돼 있다. 되도록 어릴 때부터 죽음을 생각해보고 자기 삶을 보다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사람이 왜 죽는가 하는 물음은 곧 사람은 왜 사는가 하는 물음에 직결된다. 죽음을 아는 것, 그것이 삶을 아는 지름길이다. 제자들이 석가모니에게 “세상에서 제일 놀라운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그는 “세상에서 제일 놀라운 것은 누구나 다 죽는데도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이다” 하고 대답했다. 

 

오늘 첫 독서인 지혜서에 보면, 하느님은 질병이나 죽음을 만들지 않고 살아 있는 이들의 멸망을 원하지 않으며(지혜 1,13) 사람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셨다(지혜 2,23). 첫 인간이 생명의 샘이신 하느님과 관계를 끊었기 때문에 죽음을 자초했다(창세 3,19). 죽음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이 아니라 악마를 통해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이다(지혜 2,24; 로마 5,12). 질병과 죽음은 첫 인간 아담의 기원 죄와 후손들의 범죄 때문에 초래된 벌이다. 

 

하느님은 인류를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고 우리 대신에 속죄 죽음을 당하고 부활하여 죄와 죽음을 이기셨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부활하여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것임을 예고하셨다. 죽음은 우리가 하느님을 얼굴을 맞대고 뵙기 위해 가는 길이다. 죽음을 잘 맞이하는 사람이 일생을 잘 산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지 4년 만에 암이 재발하여 폐로 전이된 자매님이 있었다. 사망선고를 받은 뒤 차근차근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기에게 한 마디라도 좋은 말을 해 준 사람들이나 은혜를 베푼 사람을 빠짐없이 찾아가 자기 죽음을 내색하지 않고 사례하고, 같은 반모임과 레지오 주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식사대접을 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아파트 문 앞에 꽃을 가져다 놓기라도 했다. 아무도 이 자매의 병을 알아채지 못했다. 하느님께 가기 며칠 전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제 발로 병원으로 갔다. 병원 문을 열기 전에 자기가 다니던 그 길과 가로수와 집들을 돌아보며 하느님께 받은 온갖 은혜에 감사드렸다. 남편과 자녀들을 하느님께 맡기고 병원 문을 열고 죽음의 침상이 놓인 병실로 들어가 며칠 뒤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의 품속으로 올라갔다. 이 자매의 헌신적 죽음은 그가 일생 살아온 생활방식의 마지막 귀결이었다. 그가 다니던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봉헌되었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통로까지 꽉 찼고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내가 죽을 때 나는 웃었고, 세상은 울었다.”

 

그 자매는 일생에 단 한 번 지저귄다는 켈트 족의 전설에 나오는 가시나무 새를 닮았다. 그 노래 소리는 이 지구에 사는 어떤 생명체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죽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시나무 새는 엄마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가시나무를 찾아 해매다 마침내 가시나무를 찾으면 가장 길고 뾰쪽한 가시에 자신의 몸을 찌르며 죽어가는 데 고통을 호소하듯 우는 이 새의 그 고혹(蠱惑)적인 노래는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능가한단다. 

 

우리도 늘 하느님을 위해 살고 남에게 베풀다가 가시나무 새처럼 아름답고 고혹적인 노래를 부르며 기꺼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양식으로 삼고 이기심과 악습을 죽이며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는 예수님을 닮으려 애쓰는 것이다. 우리의 한 평생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고 부활하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잘 보내진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쓰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레오나르도 다 빈치).

 

 

 

 

잘 읽히는 책

 

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영식,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요한복음과 바오로 사도 서간

   과 요한 묵시록의 핵심 가르침. 가톨릭출판사 2012년 4월 27일 출간

-----, 말씀의 등불 가해. 주일 복음 묵상?해설(가해). 가톨릭출판사  

   2012년(재판)

-----, 오늘 읽는 요한 묵시록. 바오로딸 2012년 2월 26일 출간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11년 3월 초판 3쇄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역사서)와 후기 예

   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마르코복음, 마태오복음, 루카복

   음, 사도행전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출판사 2009년

-----, 성경과 주요교리. 2006년(2쇄).

-----, 말씀의 등불 나해. 주일 복음 묵상?해설(나해). 2008년.

-----, 말씀의 등불 다해. 주일 복음 묵상?해설(다해).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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