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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슬픔 속에서 태어나는 생명(사순 제5주일)
   2008/03/07  8:49

사랑의 슬픔 속에서 태어나는 생명(요한 11,1-45).

 

아기가 태어날 때 두 사람이 운다.

산모는 진통과 산고 때문에 울고,

아기는 어머니의 포근한 품에서 보호받다가

험악한 세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운다.

밀알이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요한 12,24),

모든 생명은 고통과 죽음에서 비롯된다.

또한 고통은 생명을 강인하게 만들어 준다.

초원에 불이 나면, 풀과 나무가 타죽어 버리고

그 잿더미 위에서

이전보다 더 강인하고 풍성한

새 풀과 새 나무가 나오는 법이다.

이처럼 사람도 남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서

자기 몫인 고통을 겪으며

강인한 사람으로 성숙해간다.


오늘 복음(요한 11,1-45)에 보면,

예수님은 사랑하시던 친구 라자로가 죽자

슬피 우시며 그를 소생시키셨다.

이 기적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부활,

그분과 운명을 같이하는 우리의 부활을 예고하는 사건이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아

자기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살던 실존을 버리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다(로마 6,1-11).

우리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에서 태어났듯,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이기심에서 자유롭게 하고

하느님의 생명을 누리도록

십자가 위에서 당신 목숨을 희생하셨다.

아기의 생명이 어머니의 진통과 산고에서 나오듯,

영생도 우리를 사랑하여

고난과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희생에서 비롯된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느님의 자녀들이 태어난 모태라고 해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메시아의 산고’라 한다.

십자가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고향이다.

 

영생을 누리기 위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 때

하느님과 이웃보다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기심을 죽이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살기로 했다.

 

사람은 그 누군가가 베풀어주는 사랑의 힘으로 살아간다.

남들이 힘을 실어줘서 내가 살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기 때문에

그들도 살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하늘의 태양보다 더 찬란한 곳이다.

  타인의 불행에 눈물짓고

  서로 사랑하고 축하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앙드레 지드의 마지막 일기).

 

평생 자진해서 사랑의 고통을 받는 사람만이

영생과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

사랑 속에 고통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 생명을 창조한다.

 

“사랑은 끝없는 슬픔이지만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에서

   지바고가 라라를 떠나보내며 한 말).

 

그러나 사랑의 고통을 거절하는 사람은

이기심의 노예가 된다.

이기심은 사랑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뜻한다.

 

“지옥은 사랑하는 능력을 상실한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나무가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줄 알기에 새 잎을 내듯,

가장 아름다운 것을 버릴 줄 알기에 새 꽃이 피듯,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도 자기를 버려야 한다.

자기를 버릴 때 울지 말자.

우리는 태어날 때 울지, 죽을 때는 울지 않는다.

태어나서는 한평생 고통을 겪지만

죽은 뒤에는 영원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도서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해설(가해)>

                                 가톨릭신문사 2007년 161-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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